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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비영리·공익법인 제도가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의 다리를 자르거나 늘려서 죽였다는 신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들이 공익 활동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들은 이제 문제 제기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입법을 위한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1월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YWCA연합회와 재단법인 동천, 이학영 국회부의장, 국회시민정치포럼이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는 단순한 학술 토론을 넘어 입법 촉구를 위한 절실한 목소리가 이어진 자리였다.

"100년 넘은 조직도 규제 앞에선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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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의 핵심은 '입법의 시급성'이었다. 좌장을 맡은 재단법인 동천 유욱 이사장은 "수십 년째 같은 문제를 논의했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단순한 토론회가 아닌, 입법을 끝까지 관철할 '비영리·공익법인 법제포럼'과 같은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한국YWCA연합회 조은영 회장은 폐회사에서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 침대에서 죽었다"며 "시민사회가 규제라는 침대에 묶여 죽을 수는 없다. 이제는 논의가 아니라 실천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단법인 동천 유욱 이사장(왼쪽)과 한국YWCA연합회 조은영 회장은 논의를 넘어 행동할 때임을 강조했다.
재단법인 동천 유욱 이사장(왼쪽)과 한국YWCA연합회 조은영 회장은 논의를 넘어 행동할 때임을 강조했다. ⓒ 한국YWCA연합회
발제자들은 현행 법제도가 공익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것은 민법상 '허가주의'다.

한국YWCA연합회 박동순 국장은 실제 조직 재구조화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박 국장은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지자체 공무원마다 해석이 달라 수년간 허가가 지연됐다"며 "목적 사업을 소관 부처 입맛에 맞춰 잘라내야 하는 현실은 말 그대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였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정관 하나를 바꾸기 위해 10개 부처의 허가를 받아오라는 요구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장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19세기 유물 '허가주의' 폐지하고 통합관리 기구 만들어야"

법률 전문가들은 현행 민법이 19세기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송호영 교수는 "주무관청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되는 '허가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법인 설립을 인정하는 '인가주의'나 '준칙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한 민법에 법인의 합병과 분할에 관한 규정이 전무한 입법 공백 상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규제는 많지만 정작 체계적인 관리는 없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재단법인 동천 이희숙 상임변호사는 '공익위원회'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부처별로 흩어진 관리 감독 권한을 국무총리 산하의 독립된 합의제 행정기관인 공익위원회를 만들어 일원화해야 한다"며 "규제가 아닌 지원 중심의 통합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부금품법'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는 "현행 기부금품법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통제하던 '기부금품 모집 취체 규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 변호사는 기부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거나 비용 규정을 어기면 무조건 형사 처벌하는 현행법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며 기부 문화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국YWCA연합회 박동순 국장,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정명희 대표,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류홍번 운영위원장, 사단법인 시민 김소연 정책위원장,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송호영 교수, 법무법인 더함 정순문 변호사, 국무총리비서실 오광영 시민사회비서관, 재단법인 동천 이희숙 상임변호사,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국YWCA연합회 박동순 국장,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정명희 대표,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류홍번 운영위원장, 사단법인 시민 김소연 정책위원장,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송호영 교수, 법무법인 더함 정순문 변호사, 국무총리비서실 오광영 시민사회비서관, 재단법인 동천 이희숙 상임변호사,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 ⓒ 한국YWCA연합회

"정부 의지 부족... 시민사회가 적극적인 입법 전략 짜야"

세제와 실무 행정의 개선 요구도 빗발쳤다.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는 공익법인에 대한 지방세 감면 확대와 과도한 사후관리 완화를 주문했고, 한국공익법인협회 김일석 상임이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식 보유 한도(5%) 규제와 가산세 폭탄 문제를 지적했다.

법무법인 더함 정순문 변호사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의 비현실적인 등록 요건을 꼬집었다. 정 변호사는 "회원 100명 이상이라는 요건은 인구 소멸 시대와 소규모 활동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며 "활동가 인건비 지원이 불가능한 현행 보조금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정명희 대표는 "매년 반복되는 공익법인 지정·재지정 절차에서 무의미한 '가짜 서류'를 만드느라 활동가들이 소진되고 있다"며 행정 절차의 간소화를 호소했다.

토론에 나선 국무총리비서실 오광영 시민사회비서관은 "시민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제안된 내용들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총리실 차원에서 입법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참가자들은 법제화 추진을 미뤄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참가자들은 법제화 추진을 미뤄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 한국YWCA연합회

참석자들은 정부 주도의 비영리·공익법인 제도 개선 가능성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류홍번 운영위원장은 "역대 정부마다 시민사회 정책을 폈지만 입법 타이밍을 놓치거나 전략 부재로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민법 개정과 공익위원회 설치, 기부금품법 폐지 등을 관철할 수 있도록 정권 초기부터 정교한 입법 전략과 연대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시민 김소연 정책위원장 역시 "현 정부는 국정과제 외에 오랫동안 누적된 제도개선 과제에는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며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단순히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법안 발의와 통과를 위해 국회와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분석'의 시간을 끝내고 '입법 운동'이라는 행동의 시간으로 넘어가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진행 모습.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진행 모습. ⓒ 한국YWCA연합회

"정관 변경 허가를 받으러 갔더니 주무관이 그러더군요. 이 사업은 여성가족부, 저 사업은 행정안전부 소관이니 10개 부처를 다 돌면서 허가를 받아오라고요."

토론회에서는 낡은 제도로 인해 현장 활동가들이 겪는 황당하고도 고통스러운 디테일들이 쏟아졌다. 단순히 행정이 불편하다는 수준을 넘어, 공익 활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증언들이다.

오락가락하는 '고무줄 행정'에 100년 역사 조직도 휘청

한국YWCA연합회 박동순 국장은 최근 5년간 진행한 조직 재구조화 과정을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큰 장벽은 주무관청의 '칸막이 행정'과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이었다.

박 국장은 "어떤 지자체는 법인 설립을 위한 기본재산이 1000만 원이면 된다고 합의해놓고, 막상 창립총회 당일이 되자 갑자기 기준을 2000만 원으로 올려버렸다"며 당시의 황당함을 토로했다. 그는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모든 협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3년 내내 반복됐다"며 "100년 역사를 가진 조직도 이런데, 작은 단체들은 오죽하겠나"라고 혀를 찼다.

"심사 위해 소설 쓴다… '가짜 서류' 양산하는 공시 제도"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정명희 대표는 공익법인 지정·재지정 절차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정 대표는 "재지정을 받으려면 향후 5년 치 사업 계획과 예산안을 아주 디테일하게 제출해야 한다"며 "당장 내년 후원금 규모도 예측하기 힘든 비영리 조직에게 5년 뒤 계획을 내놓으라는 건 사실상 '소설'을 쓰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어쩔 수 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서를 만드는 '가짜 서류' 작업에 내몰린다고 고백했다. 정 대표는 "무의미한 서류 작업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공익 활동은 뒷전이 되고 활동가들은 소진된다"고 말했다.

행정 절차의 허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대표는 "국세청과 행안부로 접수 창구가 이원화되어 있어, 담당 공무원조차 절차를 헷갈려한다"며 "재지정 시기를 놓치면 한 해 기부금 전체에 대한 세제 혜택이 날아가는 구조라 활동가들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영리·공익법인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정진영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침대#비영리·공익법인제도개선토론회#한국YWCA연합회#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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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impact) 내방

임팩트저널리스트 입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개인과 단체의 활동을 발굴하고 분석하여 널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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