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중앙시장 골목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깥 찬공기는 온데간데없다. 시장 특유의 활기가 몸을 감싸며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골목 초입에서는 갓 튀겨낸 닭강정의 달콤한 향이 밀려오고, 조금만 걸어가면 젓갈 냄새가 휘돌아 코끝을 찌른다. 곳곳에서 들리는 상인들의 목청 높은 외침이 파도처럼 번져나가고, 그 사이로 흥정하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길바닥엔 방금 씻어낸 듯한 물기가 반짝이고, 좌판 위에는 겨울 햇빛을 머금은 생선 비늘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려면 어깨를 여러 번 맞부딪혀야 할 정도로 시장은 인파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뜨끈한 어묵 국물을 들이켜며 잠깐 걸음을 멈추고, 또 누군가는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한 걸음 한 걸음이 느려진다. 23일 주말 오후, 그렇게 시장 전체가 끊임없이 살아움직였다.

▲속초중앙시장발 디딜 틈조차 없는 장터의 골목. 시장은 소리와 체온으로 가득 차,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 진재중
"여기 오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술빵 가게 앞, 김이 퍼지는 찜기 옆에서 설악산을 들렸다가 왔다는 김남숙(48세)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줄을 서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여기 오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서울에선 이런 소리와 냄새, 붐빔이 다 사라졌잖아요. 사람 많아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게 좋아요."
그녀의 말은 시장의 공기와 섞여, 묘하게 실감 났다. 시장이 주는 생동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온도,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는 듯했다.

▲긴 줄 사이로 퍼지는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우며,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진재중
"기다릴 만한 시장이죠"
술빵 가게 앞은 중앙시장의 '정점'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손마다 봉투를 들고 나온 이들은 따끈한 술빵을 바로 꺼내 한 입씩 베어 문다. 줄은 시장 입구까지 이어져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대학생 김현준(24)씨는 "여긴 기다릴 만한 시장이에요. 술빵이든 닭강정이든 맛이 다 살아 있어요. 줄 서는 것도 여행의 일부죠"라고 말했다.
그가 줄에 서 있는 동안, 찜기에서 퍼져 나오는 술빵의 폭신한 향은 사람들 사이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옛날 술빵’이라 불리는, 곡기를 달래주던 전통 빵을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들. ⓒ 진재중
"사람이 많아야 시장이죠"
10년째 이곳에서 오징어 순대를 팔고 있다는 상인 임종길(58)씨는 갓 튀긴 순대를 가판에 올리며 말했다.
"사람이 많아야 시장입니다. 요즘은 외지 손님이 많아서 이렇게 살아나는 거죠. 특히 주말이면 길이 막혀서 손님이 줄을 못 들어올 정도예요."
그의 말처럼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시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임씨의 좌판 앞에는 오징어로 만든 다양한 순대가 바다 냄새를 풍기며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지나가던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속초를 대표하는 오징어를 활용해 다양한 순대, 재료를 손질하고 속을 채우는 과정마다 정성이 느껴지고, 주변에는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 진재중
시장은 하나의 '살아 있는 풍경'
시장 한복판에서는 좌판 위의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한 편의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붉은 양념 게장, 윤기가 흐르는 생선, 금방 튀겨낸 튀김의 황금빛, 갓 만든 어묵의 담백한 흰색. 색과 냄새와 소리가 서로 엉켜 시장만의 '인파의 물결'을 만든다.
과즐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시식을 즐기고 저마다 손에 먹을 것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어떤 엄마는 카메라를 들고 아이의 추억을 담으려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골목마다 가게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지나가는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진다. 상인과 손님은 하나처럼 어우러지고, 끊임없이 튀김과 구이를 만들어내는 상인은 연주자처럼, 그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은 관객처럼 마주한다.
이를 지켜보던 한 학생은 튀김과 순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럽고, 그래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며 미소를 지었다.

▲손님들이 튀김, 순대 등 각종 먹거리를 만드는 상인들의 손길을 눈여겨보며 푹 빠진 모습. 장인의 손놀림과 음식 냄새가 어우러져 골목 전체에 생동감이 흐른다. ⓒ 진재중
겨울 속초를 데우는 중앙시장의 심장박동
속초 중앙시장은 도시의 심장처럼 끊임없이 살아 숨 쉬었다. 인파가 지나가면 찜기에서 피어오른 김이 사라지고, 곧이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다시 활기를 만든다. 사람들 덕분에 시장은 언제나 살아 있었다.
요즘 경제 이야기를 꺼내면 한숨이 먼저 나오지만, 이 골목만큼은 달랐다.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견디며, 골목은 따뜻한 생명력으로 가득 찼다.
속초 중앙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었다. 소리와 냄새, 사람들의 체온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늦가을 설악산 단풍이 붉게 물든 모습보다도, 시장 골목의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요즘 어려운 경기 이야기가 무색할 만큼, 골목마다 온기가 가득한 시장 풍경.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과 웃음 속에서 겨울을 견디며, 활기와 생명력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낸다.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