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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 초겨울과 씨름하고 있다. 넉넉하게 샅바를 잡고 시간을 끄는 사이, 김장철이 다가왔다. 아내가 준비하고 아이들이 찾아와 북적이며 김장을 했다. 김치를 얼마나 먹는다고 이 소란을 피울까. 해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김장이라도 해야 아이들이 오고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에서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수고 했고, 온 가족이 즐거워했다. 김장이 끝났으니 가을 마무리 여행을 가야 했다. 가을 여행지 중 하나를 선택했다. 따스한 남쪽 나라 보성, 고단했던 아내를 위함이다.

서해안 어리굴젓을 찾아가고, 부석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가는 가을 여행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보성의 율포항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300km를 가라 한다. 아내를 태우고 율포로 출발했다. 언제나 즐거운 운전이기에 부담 없는 여행이다. 율포를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도 바람이 좋고 풍경이 넉넉해서다. 늦가을의 서늘함을 떨쳐내고 훈훈한 남도바람을 찾아서다. 율포 해수탕의 즐거움, 꽤 오래전부터 찾았던 가을 여행이다. 따스함과 푸근함이 가득한 해수탕을 즐기고, 허름한 펜션에 자리를 푼다. 싱싱한 회 한 점에 소주 한잔, 율포 여행의 전부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남도에서 만난 가을 남도에도 가을은 깊어졌다. 아직도 남아 있는 꽃이 있고, 푸른 밭이 있어도 계절은 가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남도에서 만난 가을남도에도 가을은 깊어졌다. 아직도 남아 있는 꽃이 있고, 푸른 밭이 있어도 계절은 가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박희종

보성 율포에서 득량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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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을 통해 벌교로 향하는 길, 다시 봐도 즐거운 길이다. 율포에서 하루를 보내고 득량만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바닷물이 흐르고 왼쪽 골짜기마다 이웃들이 살아간다. 따스함과 정이 넘칠 것 같은 동네,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한몫을 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남도 사람들, 여기엔 득량만의 따스한 바람도 있다. 아직도 꽃이 피고, 보랏빛 감자꽃이 남아 있다. 서늘한 동네에서 찾아온 객은 깜짝 놀랐다. 따스한 바람이 찾아왔고, 바다가 따라온다. 여기에 갖가지 꽃이 남아있고 들판은 푸르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군인들의 양식을 구해 먹여 이름을 얻었다는 득량, 한없이 넘치는 매력이 있다. 잔잔한 바닷물이 고여있고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여기서 한 계절이라도 살아봤으면. 순식간에 살고 싶은 터전이 된다. 자그마한 동네, 득량은 신선했다. 득량역을 중심으로 조성해 놓은 도심은 이채로웠다. 갖가지 그림과 설치물은 오래 전의 기억이다. 오래 전의 도심이 조성되어 있고, 역에는 다양한 공간으로 발길을 잡는다.

득량에 이런 아름다운 공간이 있을 줄이야. 오래 전의 풍금이 놓여있고 갖가지 옷들이 걸려있다.
누구나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숨겨져 있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찾아간 득량만, 잔잔함과 신선함을 주었다. 이런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니. 이순신 장군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본다. 득량에서의 한가함과 신선함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한다.

득량에서 만난 추억 자그마한 고을 득량, 갖가지 추억을 전해주는 마을이었다. 현재가 있고 과거가 있으며 삶이 있는 따스함이었다. 바다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곳, 무한한 추억을 살려주는 고장이었다.
득량에서 만난 추억자그마한 고을 득량, 갖가지 추억을 전해주는 마을이었다. 현재가 있고 과거가 있으며 삶이 있는 따스함이었다. 바다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곳, 무한한 추억을 살려주는 고장이었다. ⓒ 박희종

시원함 속에 찾아 나선 곳은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다. 해마다 찾아오는 길이지만 언제나 신선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벌교의 축제, 꼬막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신선하면서도 짭조름한 꼬막, 일 년을 기다려온 남도의 맛이다. 벌교시내가 들썩인다. 세상의 이야기꾼들이 다 모였다. 귀가 솔깃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시장에서 만난 것은 대봉감이다. 어느 노부부가 앉아 감을 팔고 있다. 한 상자를 구입하자 흐뭇해하는 할머니, 다정함과 따스함에 얼른 돈을 건넸다. 오래 전의 추억을 찾고 싶어 구입한 감이다. 시장을 돌아 찾아 나선 곳은 벌교의 백미, 꼬막 정식이다. 서해안에 어리굴젓이 있다면 벌교에는 꼬막이 있다.

고실고실한 하얀 쌀밥에 어리굴젓이 얹혀있다. 가끔은 깨소금이 얹여 있는 짭조름한 맛, 서해안의 가을이었다. 벌교에서 만난 꼬막의 가을, 언뜻 포기하기 힘들다. 꼬막이 곁들여진 갖가지 음식이 나왔다. 어느 것부터 먹어야 할까? 흐뭇함에 고개를 끄떡이며 돌아보는 밥상, 역시 남도의 밥상이었다.

꼬막이 숨어 있는 된장국에 꼬막무침이 나왔고, 삶은 꼬막에 꼬막전이 나왔다. 갖가지 야채와 곁들여진 꼬막부침과 어우러진 하얀 쌀밥은 넉넉했다. 자그마한 늙은 위를 탓하며 숟가락을 놓은 점심상은 내내 포기할 수 없는 남도의 맛이었다. 벌교에 왔으니 '태백산맥 문학관'을 지나 칠 수 없다.

따스한 양지에 자리 잡은 문학관은 포근했다. 지리산의 넉넉함과 따스함을 전해주는 삶의 모습이었다. 수년째 찾아오지만 또 새로운 발걸음이다.어떻게 이런 글을 남겼을까?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작가의 자취에 숙연해진다. 한 해 겨울을 읽고 또 읽었던 조정래의 문학, <태백산맥>이 있었고 <한강>이 있었으며 <아리랑>이 있었다. 따스함과 진지함을 주었던 문학의 위대함을 알게 한 작가였다.

늦가을 지는 해를 맞이하며 돌아선 벌교 여행, 내년엔 봄에도 찾아볼 작정이다. 벌교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만난 절집은 송광사였다.

송광사의 가을 송광사의 가을은 대단했다. 아름다운 단풍과 어우러진 절집, 사람과 함께하는 엄숙함이었다. 맑은 물과 어우러진 절집 풍경이 깊은 가을을 알려준다.
송광사의 가을송광사의 가을은 대단했다. 아름다운 단풍과 어우러진 절집, 사람과 함께하는 엄숙함이었다. 맑은 물과 어우러진 절집 풍경이 깊은 가을을 알려준다. ⓒ 박희종

송광사를 지나 늦가을 속으로

가을이라고 뚜렷한 단풍놀이도 하지 못했다. 아내와 찾은 송광사는 대단했다. 따스하게 물든 단풍이 있고 절집이 주는 엄숙함이 있었다. 언젠가 손녀와 찾은 절집, 손녀는 서슴없이 절을 했다. 무엇을 빌었느냐는 말에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했다. 아내와 함께 들어선 대웅보전, 근엄함과 친근함이 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는 절이다.

무상무념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인사, 이렇게 살아감이 감사하다는 인사다.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음에 감사함이다. 고희의 청춘이 300km를 운전하며 오고 간다. 아무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는 여행길이다. 언제 이런 세월이 되었으며 언제까지 가능할까? 세월은 이 자리로 성큼 데려다 놓았다.

늦가을이 초겨울로 가는 계절, 내 삶의 계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가을이라고 우겨볼까도 생각하지만 어림없음은 잘 알고 있다. 얼른 절집을 벗어나자 말없이 물든 단풍이 가득이다. 조용한 골짜기를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진 한 장의 낙엽,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얼른 절집을 벗어나자 앙상한 벚나무가 보인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가 보다. 따스한 남쪽이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계절을 피해 갈 재간이 있다던가? 1박 2일의 짧은 남도여행은 즐거웠다. 볼거리와 먹거리를 실컷 맛보았으며 이 해를 마무리하는 가슴은 따스했다. 율포의 해수탕과 득량만의 아름다움 그리고 벌교 꼬막의 가을 맛은 일품이었다. 조정래의 위대함과 따스함에 흠뻑 젖어 찾은 송광사는 또 대단했다. 삶의 기억해 보고 되뇌어 보는 남도 여행길, 여기엔 삶의 그림자가 가득한 가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되고 난 후, 일정한 시일이 지나면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가을#여행#남도#보성#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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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늙을 줄 몰랐다

박희종 (ko4246) 내방

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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