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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4 17:43최종 업데이트 25.11.25 08:57

'사랑'의 단면이 궁금한 당신에게

[책이 나왔습니다] <금혼식/깊은 사랑>을 번역하며

<빨간 머리 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필자 또한 원서나 번역서가 아닌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만화로 접하며 들은 주제가에 익숙했다. 책으로든 만화 영화로든 접해보거나 작품에 대해 들어보았다면 주인공 소녀, 앤의 당차고 밝은 성격, 솔직함과 유머가 깃든 성장 과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처음 출간된 이 작품의 후광이 워낙 커서인지 사람들은 보통 다른 작품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빨간 머리 앤>이라는 작품이 첫 출간 후 100년이 넘도록 워낙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기에 오히려 다른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의 그늘에 가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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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는 이후 수많은 단편은 물론 시와 논픽션 등 여러 장르를 쓴 다작가이다. 몽고메리는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나 2년 후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자연히 캐번디시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10살부터 시를 쓸 정도로 문학적 감성이 뛰어났다.

히트작 주인공 앤처럼 그녀 또한 교사로 일했고 아동 문학가 및 전기, 단편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상당히 그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로 구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동서의 비중이 높고 인기를 누렸지만 성인이 즐길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나 일기 등도 있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허브 정원의 비밀>이 소년과 어른의 우정과 사랑을 아우른 아동서였다면 새로 번역된 <금혼식/깊은 사랑>은 결이 다르다. 청소년 및 성인이 읽었을 때 생각해 보거나 공감할 만한 요소가 꽤 들어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우정에 가까운 사랑과 존중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어른과 어른의 사랑, 성장 소설이면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독자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금혼식>은 고아가 되었지만 한 노부부의 사랑으로 자라난 청년이 독립한 후 15년 만에 돌아온 장면으로 시작한다. 따뜻한 환영을 기대했던 러벨이라는 청년은 다 쓰러져가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웃으로부터 노부부가 보호시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러벨은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계획을 세운다. 그의 언행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묘한 감정과 함께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책표지
책표지 ⓒ 북도슨트

두 번째 이야기 <깊은 사랑>은 제목처럼 역시 사랑이 소재다. 원제는 'A Redeeming Sacrifice(구원을 위한 희생)'이다. 절대자의 인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한 남녀의 눈부신 사랑과 이별, 선택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우주와 닮았다. 빅뱅의 순간처럼 점에서 시작해서 찬란하게 빛나지만 결국 블랙홀에 빠지거나 소멸하는 별의 운명처럼 말이다.

여기서는 소위 나쁜 남자(폴)가 등장하고 순진하고 아름다운 여인(조안)도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결혼 전에 겪었던 연애사와 유사한 설정이 있어서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은 일생일대의 위기에 놓여 선택을 해야 하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폴은 조안을 사랑했다. 폴은 진정 뒤로 물러나 그만의 사랑인 조안의 상냥함과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기꺼이 양보할 만큼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가? 과연 가난에 시달리고 치욕스러울지 모를 삶에서 조안을 구해낼 만큼 그의 사랑이 대단한가? 그는 자신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는가?'

읽는 도중이나 읽은 후에 역시 독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비교하며 타인과 격렬한 토론이나 자문자답을 할 수도 있다. 그중 하나는 아마 이런 질문일 것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떠나야 하는가, 끝까지 남아서 쟁취해야 하는가.'

북도슨트 한잔 시리즈의 스무 번째 작품이자 몽고메리 단편 두 번째 번역서로 적은 양이지만 역시 큰 부담 없이 읽고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주사위의 확률은 언뜻 6분의 1이다. 하지만 사랑의 주사위는 어떨까. 사람에 다른 숫자가 무한하게 나오고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던져도 매번 다르다. 무한 루프 속에서 우리는 매일, 사랑을 만나고 주사위를 던지듯 모험하며 선택한다.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하지만 결국 구원의 대상을 보며 자신을 구원하길 꿈꾼다. 그 과정이 늘 행복할 수는 없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와 후회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랑을 감내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의 여러 단면과 선택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읽을 만한 소설 <금혼식/깊은 사랑>을 추천한다. 인스턴트 같은 관계와 이기적인 사랑에 지친 이들, 기적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어린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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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슨트#단편소설#몽고메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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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 (annie3) 내방

안녕하세요. 저는 공부하는 번역가로 살고 있는 인정하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소망도 있답니다. 작은 글을 통해 소소하게나마 감동과 유익한 정보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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