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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말하지 않으면, 물은 썩는다

저명한 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에서 배설문화를 인류학적으로 정면에서 다룬 선구자—는 내 책 <똥이랑, 물이랑>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금기는 금기를 대상화하는 실체를 부패하게 만든다. 섹스를 금기시하면 섹스와 관련된 곳은 썩게 마련이다. '똥'을 입에 담지 않으면 똥이 제대로 썩지 못한다."

이 말은 사실 '물 이야기'다. 우리가 똥을 금기시하는 순간, 똥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오히려 물과 생태계를 썩게 만든다. 똥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물을 살리기 시작한다. 금기를 깨지 않는 문명은 썩고, 금기를 넘은 문명만이 순환을 회복한다.

산골 계곡이 썩은 이유

내가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산골 계곡은 맑았다. 물고기가 뛰어올라 반짝였고, 손을 담그면 시린 기운이 돌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계곡은 급격히 썩기 시작했다. 거품이 일고 물은 뿌옇게 변했다. 사람들은 공장을 찾았다. 그러나 공장은 없었다. 문제는 새로 들어선 팬션과 주택의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지하수를 퍼 올려 변기에 붓고, 그 오염된 물을 그대로 계곡으로 흘려보냈던 것이다. 깨끗한 물을 '오염수'로 가장 빠르게 바꾸는 기술이 바로 수세식 화장실이다. 하천을 죽이는 범인은 공장이 아니라 화장실의 철학이었다.

아프리카 도시에서도 반복되는 장면

아프리카도 개발이 진행되면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새 호텔과 상업시설이 들어서지만, 주변 마을은 더 심각한 물 부족과 오염에 시달린다. 왜일까? 호텔은 깨끗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세식 화장실을 운영한다. 그러나 도시에는 하수처리 기반이 없다. 대변·소변·오수가 섞인 물은 그대로 지하수와 하천으로 스며든다. 그 물을 마신 아이들이 병에 걸린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오해 때문이다.
"화장실은 물로 씻어야 한다"는 집단적 착각.

이 착각이 지구 곳곳에서 물을 죽이고 있다.

세계는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NASA는 무중력에서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 연구비를 투입했다. 빌 게이츠는 '혁신 화장실(Reinvented Toilet)' 개발을 위해 대변이 담긴 비커를 연단에서 직접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안에는 매년 50만 명의 아이를 죽이는 병원균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전 세계 과학자에게 말했다. "물 없는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

그러나 국제개발기구(WASH) 프로젝트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쓰고도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부재, 즉 금기를 깨지 못한 데 있다.

미래의 화장실은 가장 오래된 지혜로 돌아간다

NASA, 빌 게이츠, 세계은행이 모두 찾는 해답은 결국 동일하다.

- 물을 쓰지 말 것
- 대변과 소변을 분리할 것
- 배설물을 비료로 되돌릴 것

놀랍게도 이 세 가지는 수백 년 전 한국 사찰의 해우소에 이미 있었다. 우리가 버렸던 해답을
이제 전 세계가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순환의 철학은 새로 발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되살리면 된다.

나는 왜 "똥 이야기"를 하는가

나는 빗물박사로 불렸고, 지금도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교수님, 요즘은 똥박사 같아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똥을 말해야 물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잠시 웃다가, 이내 진지해진다. 금기를 깨야 순환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빗물박사가 ‘똥박사’가 된 이유 한국 사람들은 화투에서 ‘비광’과 ‘똥광’을 최고 패로 친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비의 가치, 똥의 가치를 잊고 살았다. 비는 생명을 살리고, 똥은 순환을 완성한다. 둘을 금기시하는 순간, 물과 생태계의 순환도 함께 멈춘다. 이번 연재에서 빗물박사가 ‘똥박사’로 확장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빗물박사가 ‘똥박사’가 된 이유한국 사람들은 화투에서 ‘비광’과 ‘똥광’을 최고 패로 친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비의 가치, 똥의 가치를 잊고 살았다. 비는 생명을 살리고, 똥은 순환을 완성한다. 둘을 금기시하는 순간, 물과 생태계의 순환도 함께 멈춘다. 이번 연재에서 빗물박사가 ‘똥박사’로 확장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무영

연재를 마치며 — 금기를 넘어야 순환이 산다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쓴 6편의 연재는 '화장실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물, 생태계, 문명 전체를 향해 있었다. 화장실 한 칸의 철학이 하천의 운명, 지하수의 미래, 인류의 건강을 결정한다.

물은 우리를 살리지만, 우리는 물을 죽여 왔다.
이제 금기를 넘어야 한다.
금기를 넘어야 순환이 산다.
순환이 살아야 물이 산다.
물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덧붙이는 글 | 이번 특별 연재는 세계 화장실의 날(UN World Toilet Day)을 맞아,
그동안 외면해 온 ‘배설’의 문제를 자연·물·문명의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금기를 넘어 똥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 아니라,
물을 되살리고 생태계의 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세계 화장실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전 세계 35억 명이 아직도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한 날이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물 이야기’로 돌아갈 것이다.
빗물, 물모이, 물절약, 하천 회복,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물순환 철학에 대해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연재가
더 좋은 물, 더 좋은 위생, 더 건강한 지구를 위한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세계화장실의날#똥박사#빗물박사#화장실#해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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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오마이 물모이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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