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가 수십 년 연구한 기술, 해우소에는 이미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무중력 속에서도 작동하는 우주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연구해 왔다. 빌 게이츠는 '혁신 화장실(Reinvented Toilet)' 프로젝트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며 물을 쓰지 않는 화장실 기술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찾고자 하는 미래형 화장실의 원리, 즉 무수(無水)·분리·자원화라는 세 가지 핵심 철학은 놀랍게도 이미 수백 년 전 우리나라 사찰의 해우소(解憂所)에 존재했다. 해우소는 물을 한 방울도 쓰지 않고도 대변은 아래로 떨어져 자연 발효되어 퇴비가 되고, 소변은 따로 흘러 액비가 되는 완전한 자연 순환 시스템이었다. 21세기의 첨단 과학이 지금 막 도달한 이 원리를 우리 선조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 화장실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한국 사찰의 전통적 화장실인 ‘해우소(解憂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러스트. 물을 쓰지 않고 대·소변을 분리해 자연 속에서 순환시키는 해우소의 철학은 NASA와 세계가 찾고 있는 미래형 화장실 기술(무수·분리·자원화)의 원형과 동일하다. 이 전통의 지혜에서 착안해 개발된 순환형 화장실 ‘토리(土利)’는 한국이 SDG6 Sanitation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 한무영
1970년대, 이미 경험했던 '순환의 지혜'
나는 1970년대 서울공대(공릉동)에 다닐 때, 봄이면 캠퍼스에 스며들던 특유의 분뇨 냄새를 기억한다. 그 냄새는 밭에 뿌릴 비료를 모으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던, '순환'의 향기였다. 먹골에서 지낼 때는 '먹골배'의 달고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서울의 여대생들과 배밭에서 미팅을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 비밀은 바로 사람의 배설물을 농토로 되돌리는 지혜였다. 우리의 삶과 자연은 순환의 고리 안에 있었다.
토리, 한국의 해우소 철학을 현대 기술로 재탄생시키다
이 전통적 지혜를 현대 공학으로 재해석한 것이 내가 개발한 친환경 순환형 화장실 토리(土利)이다. 토리는 흙(土)을 이롭게(利) 하는 화장실이라는 뜻으로, 한국적 순환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토리 화장실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 소변은 액비로, 대변은 퇴비로 재사용
- 태양광·풍력을 활용한 에너지 자립형 구조
- 세면대 물은 빗물로 공급
- 거의 물을 사용하지 않는 무수(無水) 화장실
이 기술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서울 노원구 천수텃밭, 마포 노을공원 등에서 실증 연구를 통해 비료 효과, 사용자 만족도, 유지 관리 효율성을 입증했다.

▲토리(土利) 한국 전통 철학을 현대 공학으로 재구성한 순환형 화장실토리(土利) 화장실의 구조도. 대변과 소변을 물 없이 분리하고, 태양광·풍력으로 에너지를 자가 공급하며, 세면대 물은 빗물을 활용하는 ‘무수·분리·순환형’ 화장실 모델이다. 대변은 퇴비화되고, 소변은 액비로 재활용되며, 모든 배설물은 오염원이 아닌 ‘자원’으로 다시 자연에 돌려보내는 시스템이다. 이 기술은 한국의 전통적 해우소 철학을 현대 공학과 IT로 되살린 것으로, 201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리빙 노우 원 비하인드(Leaving No One Behind) 세계정상회의에서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수상했다. ⓒ 한무영
세계가 인정한 한국형 화장실 혁신
2019년 2월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리빙 노우 원 비하인드(Leaving No One Behind) 세계정상회의에서 기자의 연구실에서 출품한 토리 프로젝트는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수상했다.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한국의 전통 해우소 철학을 기반으로 한 물 절약·자원화·순환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토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한국의 철학이 품고 있는 미래였다.
SDG6의 절반은 위생시설,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UN의 SDG6(깨끗한 물과 위생)의 절반은 위생시설(Sanitation)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전 세계가 아직 해답을 내놓지 못한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확신한다. 한국은 이 위생시설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 세계 어디에도 없던 해우소라는 순환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토리는 그 철학을 현대 기술로 되살린 사례다. 미래 화장실은 첨단이지만, 그 뿌리는 우리의 전통에 있다. 전통을 잇는 기술이 세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결론, 미래는 다시 순환으로 돌아간다
NASA도, 빌 게이츠도, 국제개발은행도 모두 물 없는 분리형 화장실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 종착점은 이미 한국의 해우소가 보여주고 있었다. 미래는 결국 순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순환을 이해하는 나라가 지구의 물과 생태계를 지킬 수 있다.
토리는 한국이 세계에 선물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미래적인 화장실 기술이다. 물은 돌고 돈다. 화장실도 다시 순환으로 돌아가야 한다. 순환이 회복될 때 물이 살아난다. 물이 살아날 때 인류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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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ink24.kr/DEaCvFG 덧붙이는 글 | 토리 화장실은 앞으로 개발도상국의 위생 문제 해결, SDG6 달성, 도시 물순환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 편(6탄)은 화장실 시리즈의 에필로그로 ‘금기·순환·물’의 철학을 정리하며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 다시 빗물과 기후위기 이야기로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