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아침, 용담호반길 초입에서 신기한 고양이 형상을 본 들뜬 기분으로 계속 걷는다(관련 기사 :
걷다 만난 고양이 모습의 마이산, 귀여워서 자꾸 보게 되네요). 계곡이 깊어 큰골이라고 이름 붙은 골짜기로 접어들었는데 작은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걷는 방향 쪽으로 화살 표시가 된 팻말에 '황골마을 입구'라고 쓰여 있다. 여기 웬 마을이? 이 아무것도 없는 호숫가 이설도로에 마을이 있다니 호기심이 인다.
이 길은 지방도도, 마을길도 아닌 감춰져 있는 길이다. 용담댐 건설로 마을들이 모두 물에 잠긴 후 수몰민의 산소 성묘나 수몰 지역의 기억을 위해 수자원공사가 개설한 이설도로다. 처음엔 임도처럼 길만 겨우 낸 형태였다가 나중에 사고 방지를 위해 가드레일이나 반사경 등이 갖춰진 게 다다. 거대 호수를 가둔 산 중턱에 난 길이라 산허리를 끼고 골짜기를 돌아가고 경사 구간도 있어 찻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도보객에겐 최고로 멋진 호반길이 되어 주고 있다. 청량한 고원 호수와 산과 계곡의 천연 자연을 보여주는 숨겨진 선물 같은 길이다. 이 길에 어떤 사연이 숨었는지, 어떻게 생겨난 길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연 풍광에 빠져 걷고 있었다. 길에서 어느 한 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큰골 끝까지 깊숙이 들어가니 정면에 우뚝 솟은 감투봉이 마주보이는 계곡 옆으로 넓게 울타리를 친 별장 주택이 나타난다.
"와! 경치 좋은 곳은 이미 다 차지가 있네"
모두 한 마디씩 하며 지나간다. 큰골을 돌아나가는 길 위로 웅장한 쉰질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어른 50명이 팔을 벌리고 서야 할 정도로 큰 바위라고 '쉰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골짝 끝을 돌아 나가는 길의 계곡물이 너무 맑다. 청정 계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계곡에 돌을 계단식으로 정리해 놓아 깔끔하게 정비까지 돼 있다. 이 깊은 골짝의 계곡까지 이렇게 잘 정비돼 있다는게 신기하다.
인적 없는 길을 주변의 자연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며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6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부부가 마주 걸어오고 있다. 국토종주 원칙대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요 밑에 집에 삽니다. 보셨을지 모르지만 저희 부부 성을 따서 이름 붙인 집입니다."
"지나오면서 봤습니다."
"저는 수몰민입니다. 제 고향인 황골마을이 저쪽에 있었는데 전부 수몰됐습니다.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이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한삼희씨와 잠깐 새 대화에 사연 많은 아픔이 밀려온다. 듣고 보니 아까 오면서 보았던 '황골마을' 이정표는 지금 실재하는 마을이 아닌 추억 속 마을이었다.
"아, 황골마을 이정표를 봤습니다."
"네, 마을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럼 지금은 갈 수 없는 마을의 이정표군요."
"네, 갈 순 없어도 안 잊히게 하려고 제가 설치했습니다."
아, 더 말을 잇지 못할 것 같다. 그 이정표는 기억에만 남은 옛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문 같다.
수몰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문

▲황골마을 이정표큰골 깊이 들어가자 황골마을로 안내하는 듯 한 이정표가 눈에 띈다. 면사무소 등 옆의 거리 표지판도 한삼희씨가 세운 것이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상상으로라도 그 문을 열고 사라진 황골마을 속으로 나도 같이 들어가 보고 싶다. 용담댐 건설로 사라진, 오랜 역사를 가진 68개 자연마을들을 대신해 상전면 끝자락에 터 잡았던 한 작은 황골마을의 수몰 전의 옛 삶을 추적해 본다. 한삼희씨를 통해 채집하고 지역 자료를 참고해 재구성한 황골마을(행정명 항동마을 또는 항골마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황골마을은 용담호 상류 쪽에 50가구 250여 명이 단출하나 단란하게 살았던 마을이다. 마을 앞은 금강이 넓게 흐르고 있었다. 강폭이 200m나 됐다. 마을 사람들은 강 가운데만 70m 길이의 섶다리를 놓았다. 섶다리가 불어난 물에 쓸려가지 않게 장마 전에 뜯어 두었다가 추석 전에 다시 놓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많이 와 섶다리가 쓸려내려가는 일도 많았다.
시골 마을마다 아이들이 많았던 옛 풍경도 그려진다. 마을 학생들은 섶다리로 70m를 건너고, 유속이 느린 강변의 나머지 130m는 풍덩풍덩 빠져가며 강을 건너 십리(4km) 거리의 상전초등학교에 다녔다. 겨울철이 혹독하게 춥던 시절이라 섶다리가 쓸려가 맨발로 강을 건널 때면 종아리가 얼어 갈라졌다.
힘들게 강을 건너고 나서도 강변 따라 학교 가는 길은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강바람이 불어재꼈다. 그래도 결석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마을은 작아도 유난히 교육열이 높아 더 큰 마을들보다 학생 수가 많았다. 마을 어른들은 비가 와 물이 불거나 추운날 어린 학생들이 하교할 때면 미리 강 어귀에 나가 기다렸다가 업고 강을 건넜다.
삶이 어려워 마을 주민들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했다고 한다. 겨울철엔 어른들은 길쌈을 해 진안읍 장까지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녔다. 아이들은 겨울방학 때면 나무하러 다녔다. 마을 주민들은 농업 용수를 대기 위해 아랫 마을의 대구평마을과 공동으로 금강물을 가두는 보막이를 했다. 오랜 역사의 황골보다. 보 안은 물살이 약해 보 안으로 들어가서 강을 건넜는데, 잘못 보 밑으로 휩쓸려 들어가 죽는 사고도 있었다. 보 수위가 높아지면 돌아서 12km를 걸어 학교에 가야 했다.

▲용담호반길과 쉰질바위수려한 용담호반길의 큰골 끝까지 들어가자 쉰질바위 봉우리(왼쪽 상단)가 나타난다. 바위 뒤쪽의 등산로로 올라가면 호수와 주변의 일품 전망을 볼 수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마을 사람들은 한 마음이었다. 애경사에 같이 슬퍼하고 기뻐했고, 서로 일해 주었고, 서로를 빌어주었다.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는 매일 집집마다 다니면서 잘되게 도와달라고 사물놀이를 했다. 마을엔 300년 이상 된 세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었다. 정월대보름엔 당산제가 열렸다. 한 해가 질 때면 청년들은 모여서 달집피우기 마무리불을 했다.
강은 마을의 일부였다. 당시엔 마을 분이 만든 나룻배가 있었다. 가을에 보리 한 말을 주면 자유이용권처럼 탈 수 있었다. 넓은 강변에선 별의별 놀이가 다 벌어졌다. 씨름, 연날리기 등으로 놀다 물로 도망가기도 하고 수영도 했다. 옛날엔 강에 고기가 많았다. 학생들은 학교 갔다오다 "고기 잡을까?" 하면 책보를 놓고 손으로 고기를 잡았다. 잡은 고기는 크기 별로 분류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학생 수대로 나눠 집에 가져갔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고향'
아이들은 남의 오이밭에 들어가 서리도 하고, 복숭아, 배, 자두를 주인 몰래 따먹기도 했다. 주인은 알아도 용서해 주었다.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키우는 마을의 보배였다. 그 아이들이 커서 객지에 나가 일하면 고향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고향을 위해 객지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객지 자식들은 설날이 되면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고, 마을을 위해 돈을 내 놓았다. 그 기금으로 마을 공동 경비도 쓰고, 마을 어른들은 봄 가을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삶이 만들어졌다. 그 삶들을 만들었던 68개 마을이 수면 아래 잠겼다.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은 내내 아픔이 되었다. 마을 사람을 애써 수소문해 보지만 "누구네 돌아가셨어"라는 소식만 가슴을 때린다.
한삼희씨는 더 아프지 않으려고 부친의 논이 있던 자리에 집을 지었다. 처음 들어올 땐 오지 소리를 들었다. 여우와 삵은 빈번하게 나타났고 독사가 집 경내에 살기도 했다. 고향은 물 속에 잠겼지만 지척인 이곳에 다시 고향을 개척했다. 아직 전기는 안 들어오지만 자가 발전 시스템도 갖췄다. 진안군과 산림청에 수 없이 요청해 길에 가드레일과 반사경도 설치하고 사방댐도 놓았다. 그에겐 고향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이곳만은 지키고 싶었다. 더 이상 안전사고나 거리낌이 없는 곳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큰골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깊은 골짜기가 잘 정비돼 있고 산뜻한 길가의 필요한 곳마다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그래서 그 때의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싶었다. 집 밖의 주변과 계곡과 길을 수시로 정비하며 그는 지금도 기다린다. 그들이 올 이 길에 CCTV와 가로등도 설치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고향의 추억과 그리움을 나누는 번듯한 고향 집이 되어 그들을 맞이하고 싶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행복하고 생기가 돈다. 현직이 있어 내내 거주는 못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이면 반드시 집에 온다.
그가 써 붙여 논 '황골마을' 이정표는 그냥 지나는 사람에겐 작디 작은 하나의 표시에 불과하지만 그에겐 삶의 전부가 응집된 것이다. 그의 어릴 때의 꿈이고, 그리운 사람들이 이정표를 따라 찾아올 곳이다. 다시 돌아가고픈 추억이고, 지금까지 삶을 일군 원동력이며, 끝내 죽어서라도 가고 싶은 고향이다.
그 길은 아름다운 추억을 담았고, 다시는 잃지 않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이 길을 지켜온 한 분으로 인해 죽도교에서 용평대교 사이 10km의 용담호반길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걸었다. 이 길을 걷다 만난 벚꽃 터널길은 4월 벚꽃 필 때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벚꽃터널길사람들이 몰라 한적하고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가 빽빽한 약 1km 길이의 용담호반길 벚꽃길은 봄마다 최고의 벚꽃 터널을 이룬다. ⓒ (사)사람길걷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