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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애국청년회(이하 민애청)는 2025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를 진행한 바있습니다. 이 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자세하게 알려질 계기가 더 필요하다는 의지를 모아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프로젝트 '목소리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 언론 기사에서는 알 수 없었던 피해자들의 아픔과 진실을 찾고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양심수 후원회가 함께합니다. 해당 기사는 1부)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의 진실과 2부) 피해자의 아픔과 목소리로 발행됩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목소리들이 강경대기념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목소리들이 강경대기념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 김태중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김호씨에게 2018년 8월 9일 새벽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보안수사대가 그의 자택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집 안에는 아내와 세 자녀가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 탓에 속옷 차림이었던 김호씨. 수사관들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를 강압적으로 제압하려 했다.

"아이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가장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수사관들이 다가오길래 책상을 뒤집어엎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제가 죽기 살기로 저항하니까 그제야 그들도 주춤하더군요. 결국 아이들이 더 충격을 받을까 봐 제 발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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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씨가 끌려간 곳은 서울 신정동의 대공분실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2층 단독주택. 마당에는 개를 키우고 있어 영락없는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그 안은 1980년대의 공포가 고스란히 박제된 공간이었다. 좁은 밀실, 돌아가는 감시 카메라. 그곳에서 수사관은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김호씨는 눈을 똑바로 뜨고 책상을 뒤엎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수사관은 김호씨 눈도 못 마주치고 방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보안수사관에게는 당당했지만 김호씨는 당시 가족들이 겪은 아픔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김호씨는 증언 중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최근 김호씨가 증언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들이 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캡처본이었다. 사진 속에는 케이스가 처참하게 부서진 컴퓨터 본체가 담겨 있었다. 2018년 압수수색 당시, 수사관들이 난폭하게 다루다 파손한 아들의 컴퓨터였다.

"아들이 사진을 보내며 그러더군요. '아빠, 그때 경찰이 내 방 들어와서 컴퓨터 만지다가 다 뽀개놨잖아.' 그때 아들이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서 저를 위로합니다. 저희 딸도 사실은 외고를 갔는데 제가 법정 구속 되면서 외고를 포기했어요. 경제적인 문제였죠. 사업도 제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7개월 간 구속이 되면서 책임자가 사라져 15년 동안 쌓아올린 성과가 한번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사업이 무너진 아픔을 느낄 새없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쉬지않고 건설 일용직 일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김호씨가 보안수사대에 끌려간 후 양심수 후원회 회원들과 신정동 대공분실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며 "우리가 여기에 왔다"고 울부짖으며 알리기도 했다. 김호씨는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가족과 자신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조작된 증거. 그러나 실행자들은 무혐의

 보안수사대와 검찰이 구속 근거로 제시한 문자. 그러나 공안 당국도 이 문자가 김호 씨가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한다.
보안수사대와 검찰이 구속 근거로 제시한 문자. 그러나 공안 당국도 이 문자가 김호 씨가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한다. ⓒ 김태중

김호 씨를 구속으로 몰고 간 결정적 사유는 '증거 인멸 시도'였다. 김호씨가 대공분실 조사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의 핸드폰을 몰래 이용하여, 외부에 '증거를 없애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밀폐된 조사실에서, 앞에는 수사관이 앉아 있고 카메라도 돌아가는데, 제가 어떻게 그 사람 핸드폰을 뺏어서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문자를 보냅니까? 수사관 동의 하에 가족에게 주변 변호사와 양심수후원회 쪽에 제가 잡혀온 사실을 알리는 문자를 보낸 걸 증거인멸 시도로 몰아가려 했던 거죠. 일단 구속은 시켜야하는데 제 핸드폰을 압수했는데도 아무런 혐의점이 안 나오니,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해 아예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겁니다."

김호씨는 이들을 고발했다. 조작의 실행자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조작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김호씨를 구속으로 몰고갔던 조작을 단순한 실수였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관을 비롯해 이를 근거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당시 검사까지 공소권 없음으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호씨"만약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원한다면 검사가 증거조작으로 부당하게 구속영장을 남용한 내 사건을 빌미로 검찰개혁에 고삐를 당길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김호씨는 국가보안법과만 싸운건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이 그를 '국정원 프락치'라고 몰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통일부에 신고하고 국정원과 접촉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저는 제 꿈인 '평양 인공지능 센터' 건립을 위해 제도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국정원조차 저를 '통제 안 되는 놈'이라고 골치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편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뒤에서 '프락치'라며 손가락질하더군요. 북한과 경제사업하면서 지켜본, 소위 나를 감시하고 관리하려 했던 국정원은 간첩을 잡는 조직이 아니며 국보법도 간첩을 잡는 법이 절대로 아닙니다. 북한정보를 요구하며 2014년까지 저를 감시해온 이실장, 권이사, 최이사, 난 그들의 얼굴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자신들과의 관계를 비밀로 할 것을 협박하며 누설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 체결을 2014년 여름에 강요 체결하였습니다. 그 중에 이실장은 심지어 박두호 탈북공작을 저에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는 저는 일만하게 해달라고 은자의 심정으로 피해갔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김호씨에게 지령을 내렸다는 김일성종합대학 IT전문가 박두호는 탈북공작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김호씨에게 지령을 내리는 공작원일 수 없었다. 당시 그들은 김호씨의 옛 인맥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호 씨는 "죽으면 죽었지 그럴 수 없었던 저는 더욱 그들과 멀리하고 살아왔습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소위 프락치 문제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쥐죽은 듯이 살지 않고 오히려 진영논리를 거부하고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을 조작했던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이를 방관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니까 이런 공격을 받는 것이라고.

"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런 일이?" 지겹도록 들은 질문

김호 대표의 구속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남북 경제협력은 물론 남북 관계 자체의 싹을 자른 사건이었다. 그와 10년간 호흡을 맞췄던 북측 파트너는 김일성종합대학의 박두호 연구소장이었다.

"박두호 소장은 나진의 가난한 어촌 출신입니다. 오로지 수학적 재능 하나로 평양에 입성한, 북한 과학계의 신화 같은 존재죠. 그런 사람을 한국 공안당국이 하루아침에 '대남 사이버 테러리스트', '공작원'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나중에 이 사건이 북한 사회에 준 충격이 엄청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자랑하는 서울대 최고 교수를 지령을 내리는 간첩이라고 조작해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면, 우리가 북한을 믿고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 이후 북측 파트너들은 모두 잠적했고, 세계 3위 수준을 인증받았던 안면인식 기술 사업은 공중분해 됐습니다."

김호씨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아니 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런 일이 벌어진거죠? 라는 질문이었다. 김호 씨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국정원이 대북 제재나 한미 동맹 정국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발전을 이루자는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 4개월 여 지난 때였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나 9.19남북군사합의서가 발표되기 한 달 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호씨가 만났던 국정원 직원들은 10여 년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소위 통합진보당 사건 등에 깊게 연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이 간첩 조작 사건 등을 통해 정세에 적극 개입해온 이력을 본다면 당시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으려고 '남북경협사업이 사실은 북한의 사이버테러 창구였다'는 레토릭을 만들어 대북제재나 한미동맹 강화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김호씨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말을 보탰다.

"사실 문재인 정부 시기를 지금 와서 돌아보면 말로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두 차례의 정상회담도 진행했죠. 그렇지만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발전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미동맹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첨단무기 도입과 적대적 군비증강이었고 한미 군사 훈련을 지속한 것이었고요. 여러 소식을 통해 제 문제에 대해 당시 조국 민정수석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죠. 제 사건이 단순히 간첩조작사건이 아니라 남북경제협력과도 연관된 사건이니 이게 불거질수록 남북관계와 대북적챙에는 악영향이 끼쳤을텐데요. 왜 그랬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당사자들만 알겠죠. 그렇지만 이 일로 인해 남북관계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어요. 저를 문재인 정부 1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라고 소개하던데 문재인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말보다 실행자들을 처벌해야하지 않을까요?

김호씨는 국가보안법 간첩조작 사건을 마녀사냥에 비유한다. 당시 정부 담당자들은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었고 김호씨 사건은 소수 만의 문제로 치부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 당시 180석의 의석과 대통령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마녀사냥은 여러 명에게 하지 않아요. 단 한 명만 마녀사냥하면 나머지는 공포에 떨며 숨죽여 살게되죠. 제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당한 건 저 하나지만 이제 누가 남북관계를 위해 남북경제협력 사업 시도라도 하겠습니까? 합법적으로 승인받은 사업까지 옭아매는데 말이에요. 그렇기 떄문에 이건 소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값싸게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국민들을 억압할 수 있는거죠. 국가보안법은 절대 사문화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당시 국가보안법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권의 칼로 쓰였다. 그러다 정권이 궁지에 몰리자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종북 반국가단체 척결'을 이유로 계엄을 선포한다. 반국가단체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사상적으로 뒷받침되는 개념이다. 국민 전체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했다.조작 수사 실행자들에 대한 처벌이다.

"김건호·박정배 수사관, 담당 검사 그리고 이를 방관한 당시 문재인 정부 담당자들.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처벌받지 않으면 반드시 반복됩니다. 지난 시기 윤석열 정권에서 벌어지는 공안 통치는 그때 뿌리 뽑지 못한 독초가 자라난 것입니다. 단순히 국가보안법이 나쁘다, 없애자 이런 말보다 실행자들을 처벌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을 남북이 함께 규명하는 데 호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뢰 회복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라며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남북 공동 조사도 제안했다.

2018년 8월 구속된 김호씨는 이후 구속 만기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2022년 1월 1심에서 4년 선고를 받고 갑작스레 법정 구속이 되었다. 이후 2023년 3월 항소심에서 무죄, 2024년 1월 대법원 최종 무죄를 받게 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새긴 상처, 생계문제, 책임자 처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현재 김호 씨는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노동 현장의 땀이 위선적인 정치판보다 훨씬 깨끗하다"고 말한다. 강경대 열사의 친구였던 20대 청년은, 이제 중년이 되어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던지는 돌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체제를 깰 수 있을까? 목소리들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프로젝트 '목소리들' 두번째 이야기, <북침교육 조작 사건 피해자 강성호 선생님>은 국가보안법 제정일인 12월 1일 오전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진행됩니다.


#국가보안법#김호#문재인정부#보안수사대#남북경협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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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목소리들'

김태중 (ktj6288)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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