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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11년이 지났지만 트라우마가 남은 것도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

2025년 11월 19일, 제주지방법원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재판장은 세월호 생존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 순간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시작된 참사가 11년이 지난 오늘, 제주법원 201호 법정에서 비로소 "생존 피해자의 권리"라는 언어로 다시 정의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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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에 따르면, 제주에 사는 세월호 생존자 15명은 참사 직후 국가가 만든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배·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신청 기간이 법 시행일로부터 6개월 남짓에 불과해, 피해자들은 자신의 병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신청서를 써야 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공황, 불면, 대인관계 단절, 직장·학업 중단 같은 장기 후유장애는 신청 당시 제대로 드러나지도, 평가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배·보상 심의위원회는 불완전한 진단서를 기준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금액을 산정했다.

그 후로도 생존자들은 계속 무너져 갔다. 세월호 일반인 생존자 김동수씨를 비롯해 많은 생존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았음에도 생계와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국가는 구조 실패가 명백한 참사임을 인정하면서도, 생존자 배상 문제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세월호 생존자 국가배상 소송이 열렸던 제주법원 대법정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세월호 생존자 국가배상 소송이 열렸던 제주법원 대법정 ⓒ 최정규

[1심의 문장] "배상금 받았으니, 재판상 화해 끝"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은 2015년 배·보상 이후에도 삶이 전혀 회복되지 않자, 참사 7년이 지난 2021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른 배·보상이 불완전했고, 이후 더 심각해진 후유장애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소송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리는 간단하면서도 냉정했다. 생존자들이 배상금을 받을 때 서명한 "보상 수령 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서약서와 이미 일부 보상·치료비를 지급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추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보호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즉, 더 이상 법적 다툼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쉽게 말해 1심 판결은 '이미 합의했으니 지금 더 아프더라도 법정에서 다툴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2021년 발표한 '세월호 참사 배·보상 기준과 추진과정의 적정성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세월호 배·보상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직권재심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행정부와 법원은 이를 사실상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항소심이 바꾼 첫 번째] "재판상 화해는 후발손해까지 지우지 못한다"

이번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선고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른 배·보상과 그에 수반된 재판상 화해 효력은 '당시 예측·평가 가능한 손해'에 한정된다. 참사 직후에는 손해 범위 자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모든 손해'를 포괄적으로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

이후 재검진과 정신감정을 통해 확인된 장기 트라우마·후유장애는 '예측 불가능한 후발손해'에 해당하며, 그것도 중대한 손해로 인정된다. 따라서 재판상 화해 효력은 이 후발손해에는 미치지 않는다.

이 논리는 이미 대법원이 여러 사건에서 인정한 '후발손해' 법리의 연장선에 있다. 대법원은 상해 사건 등에서 불법행위 당시 예견하기 어려웠던 손해가 뒤늦게 현실화되거나 확대된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며, 소멸시효도 그 시점부터 기산된다고 봐 왔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법리를 세월호 특별법과 재판상 화해 조항에 직접 적용한 사례다. 국가가 만든 보상제도와 서약서가 장기간에 걸쳐 드러나는 정신적 피해까지 봉인하는 '면책 장치'가 될 수 없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항소심이 바꾼 것 두 번째] "국가에 유리한 해석은 더 이상 안 통한다"

항소심은 동시에 소멸시효 항변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손해가 "종전 후유장애 이후 새로 발생했거나 예측을 넘어 지속·악화된 손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기 때문에 2021년 4월 소송 제기 당시에는 누구도 시효가 경과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보았다.

이 역시 후발손해 판례의 연장이다. '사건이 있었던 날'이 아니라 '손해가 현실화된 날'을 기준으로 시효를 계산하는 해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트라우마나 정신질환에 특히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재판부가 국가의 책임제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많은 재난·참사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 과실, 선사의 책임, 제3자의 행위 등을 이유로 국가 책임을 제한해왔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생존 피해자의 장기적 트라우마에 관해서는 이러한 '책임 깎기'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항소심은 "재판상 화해로 다 끝났다"는 1심, "시효도 지났다"는 국가의 항변, "설령 책임이 있어도 좀 깎아야 한다"는 전형적 논리를 동시에 부정한 셈이다.

사참위 보고와 행정부, 이번 판결의 삼각 구도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4월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4월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참위는 2021년 보고서에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배·보상 신청 기간이 법 시행 후 6개월로 지나치게 짧아, 피해자들이 자신의 병증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신청이 이뤄졌다는 점, 둘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행동장애는 원칙적으로 사건 후 18개월 이후 진단하는 것이 적정함에도, 그 이전 진단을 기준으로 보상이 결정됐다는 점, 셋째, 행정당국이 "지금 신청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이익을 본다"는 식으로 사실상 신청을 독려·압박한 정황이 있다는 점이다.

사참위는 이 같은 문제를 토대로 배·보상판단에 대한 직권재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해수부)와 배·보상심의위는 "중대·명백한 하자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이번 제주 항소심 판결은 사참위가 지적한 문제를 법리의 언어로 재확인한 사례다. 즉, 행정부가 외면했던 권고를 사법부가 '후발손해·재판상 화해 효력 제한·소멸시효'라는 법적 도구를 통해 다시 끌어올린 셈이다.

"보상 = 화해 = 끝", 패러다임의 균열

사실 이런 싸움은 세월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긴급조치, 고문, 간첩조작 사건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도 비슷한 벽에 수없이 부딪혀 왔다. 과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 역시 세월호피해지원법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해당 법에 따른 보상금 결정에 동의하면, 그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때문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뒤늦게 국가배상청구를 하려 해도, "이미 화해가 성립했으니 더 이상 소송할 수 없다"는 벽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2018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 부분을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2020년과 2023년 대법원은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제주 항소심은 바로 이 민주화보상법·국가폭력 판례 라인과 세월호·재난 피해를 연결하는 첫 고리로 읽을 수 있다. 즉, '국가가 만든 보상제도에 한 번 동의했다면 이후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말라'는 발상을 법원이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인해 국가폭력 피해자, 재심 무죄를 받은 이들,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도 "당시 보상은 보상대로, 그 이후 드러난 정신적 후유장애와 2차 피해는 별개의 손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한층 강화됐다.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제21대 대선 공약 촉구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1대 대통령 후보들은 생명안전사회 건설 약속하라!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제21대 대선 공약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와 법 제도 정비, 사회 시스템 개혁 등 정책 과제를 대통령 후보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제21대 대선 공약 촉구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1대 대통령 후보들은 생명안전사회 건설 약속하라!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제21대 대선 공약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와 법 제도 정비, 사회 시스템 개혁 등 정책 과제를 대통령 후보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 이정민

[가습기살균제 피해와의 접점]
후발손해+국가책임+특별법 보상의 삼각형

202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환경부가 유해성 심사를 불충분하게 하고도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해, 사실상 안전성을 보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그 결과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같은 해 6월, 대법원은 이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국가 책임을 물은 첫 최종 판례로 기록됐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도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일부 피해자는 이미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상당액 받았다는 이유로 해당 부분의 위자료 청구가 기각됐다. 나머지 원고에게 인정된 위자료도 300만 원~500만 원 수준에 그쳤다. 즉, 가습기 사건에서도 세월호와 비슷한 구조가 반복된 셈이다.

국가가 만든 특별법·구제제도에 따른 금전 지급을 근거로 "추가 청구를 제한"하는 논리와 뒤늦게 드러나는 후발손해 및 장기 후유장애 문제를 고려할 때, 이번 제주 세월호 항소심 판결은 이 구조 속에서 중요한 기준선을 제시한다.

특별법에 따른 보상·구제급여를 받았어도 이후 드러난 정신적 손해·후발손해에 대해서는 추가 소송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된다. 특히 가습기 피해자들처럼 질환이 수년 뒤에야 진단되거나 판정 기준 변경으로 새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번 판결의 논리가 직접적으로 인용될 수 있다.

"당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말의 법적 의미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이 합창 공연을 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이 합창 공연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재판정에서 국가가 이기는 판결은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 끝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피해자들은 그 한 줄을 듣고도, 왜 자신이 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법정을 나서곤 한다. 이번 제주 항소심은 정반대였다. 1심에서 "이미 화해했으니 더는 다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생존자들에게, 항소심 재판부는 "그 화해는 당신들의 모든 미래를 포기시키는 장치가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선고가 끝난 뒤 재판부는 "여러분은 잘못이 없다.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것도 여러분 탓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지난 11년 동안 생존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향해졌던 질문, "왜 아직도 그 얘기를 하냐", "이제 좀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 "보상도 받았으면서"에 대해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이다.

이 답변은 세월호 생존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간첩조작으로 고문을 당하고, 민주화보상금 한 번으로 인생 전체가 보상된 것처럼 취급된 국가폭력 피해자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가족을 잃고 기업과 국가의 책임 다툼 속에서 '지원금' 몇 줄로 정리되었던 피해자들, 각종 재난·참사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래도 살았잖아"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수많은 생존자들에게도 이번 판결은 같은 메시지를 건넨다.

"당신들은 잘못이 없다."
"국가가 당신들의 상처를 너무 쉽게 끝냈다고 말해온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판결이 다른 법정과 국회, 여러 특별법과 보상제도 속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이다.

오늘 제주지법 201호에서 시작된 이 한 줄의 변화가, 국가폭력·재난·독성 물질 피해 전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즉각 이 판결에 대한 상고 포기 의지를 밝혀야 한다. 상고 등으로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 가해를 하지 않고, 판결에 대한 존중과 피해회복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해양수산부 등 관련 기관은 이번 판결의 무게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세월호#생존자#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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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뒷이야기 :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백브리핑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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