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 정석희 회장을 뵀다. 몇 년 전부터 말씀하셨던 민간인희생자에 대한 위로와 상생과 해원, 용서와 앞으로의 희망 등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위령탑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말씀이었다. 여러가지를 생각했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저는 군수로서, 전직 경찰관으로서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억울한 분들의 위로 위령, 화해와 상생을 담아낼 수 있는 위령탑이 이쯤에서는 이제 세워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추모사하는 가세로 태안군수제75주기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제17회 태안군합동추모제가 지난 15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된 가운데 가세로 태안군수가 유족들 앞에서 추모공원 조성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 김동이
지난 15일, 제75주기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제17회 태안군합동추모제가 열린 태안군청 대강당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원들이 품어 온 숙원사업인 추모공원 건립을 약속한 가세로 태안군수의 추모사는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가 군수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대승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과감한 도약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내년도에 예산에 여건이 있다면, 우리가 용역과 부지선정을 해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겠다"며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전재옥 의장에게 당부의 눈길도 보냈다.
"늘 빚진 것처럼 어깨가 무겁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도 한 가 군수는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수년 전부터 군수로 취임한 이후 이 자리에 서왔다. 부득이 한번은 빠졌지만, 앞으로도 기꺼이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제게 주어진 숙제, 군민들의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이 사안을) 풀어내도록 하겠다"고 추진의지를 거듭 밝혔다.

▲초헌관으로 나선 정석희 태안유족회장제75주기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제17회 태안군합동추모제가 지난 15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정석희 태안유족회장이 초헌관으로 나서 잔을 올리고 있다. ⓒ 김동이
이에 정석희 태안유족회장도 화답했다. 정 회장은 "군수께서 유족, 내외빈 앞에서 약속을 했는데, 그 생각을 평소에도 늘 말씀하셨지만 여러 여건이 형성되지 않아 미뤄진 감이 없잖아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낼 수 있도록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해줬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박수로 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추모제에 앞서 만난 태안군 조용현 행정지원과장도 추모공원 추진의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민간인희생자들이 희생당한 태안읍) 사기실재 자리를 추모공원 적지로 보고, 곧 토지주를 만나 협의할 예정"이라고 의지를 전했고, 강희권 유족회 상임이사도 "조만간 정석희 유족회장과 함께 토지주를 만날 예정"이라며 추모공원 조성 추진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음을 암시했다.
내년 1월 15일 이원면 집단희생사건 국가 손해배상 선고 등 잇따라 진실화해위원회와 법원의 결정이 나오고 있다. 내년도에 추모공원이 조성된다면 진화위와 태안군의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민간인희생자에 대한 추모 및 위령사업 등의 효율적 지원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고 해당 업무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군수의 책무가 지난 2018년 12월 조례제정 이후 8년 만에 적극 이행되는 셈이다.
태안유족회가 합동추모제가 열린 태안군청 대강당에 내건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추모공원 조성은 태안군을 평화와 인권의 선진지로 만듭니다!'는 현수막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전쟁 75주기, 열일곱번째 민간인희생자 태안군합동추모제

▲헌화하는 참석자들제75주기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제17회 태안군합동추모제가 지난 15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 김동이
이번 제17회 추모제에는 가세로 군수를 비롯해 전재옥 태안군의회의장과 김기두, 김영인, 김진권 의원, 윤희신·정광섭 충남도의원 등 내빈과 충남유족회를 비롯한 각지의 유족대표들이 원근을 마다않고 발길해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특히, 우익단체인 자유총연맹 태안군지회에서는 추모화환을 보내 위로 했고, 정혜심 태안경찰서장도 직접 참석은 못했지만 추모사와 추모화환을 보내 유족들의 마음을 달랬다.
1부 합동위령제에서는 강희권 유족회 상임이사의 사회로 박민교 유족회부회장의 개제선언에 이어 정석희 유족회장의 초헌, 함정만 유족회이사의 축문봉독, 가세로 군수의 아헌, 전재옥 의장의 종헌 순으로 합동위령제가 엄숙히 거행됐다.
2부 합동추모식에서는 국민의례와 묵념, 추모노래 회장인사, 추모사,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인사말에 나선 정석희 유족회장은 "75년 전 이승만의 백만 학살과 얼마 전 수많은 국민이 수거 대상이 될 뻔했던 아찔했던 윤석열의 계엄령이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상시적 억압이 가능한 국가보안법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는 나치 학살의 피해자인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언제 어디서나 평범하지 않은 악마의 얼굴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추모사에 나선 가세로 군수는 "지금까지 해를 거르지 않고 치러져 열일곱 번째가 된 합동추모제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해와 상생을 일구어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승화시켜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의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누군가의 삶에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진실이라도 더 밝혀내야 한다"면서 "이 억울한 죽음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만 이제라도 진상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도록 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책무일 것"이라고 숙제를 던졌다.
덧붙여 "더딘 걸음이었지만 이제 역사가 위로하기 시작했고, 진실과 화해라는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렸던 이 한마디를 위해 여기까지 흘러왔다"면서 "이제는 70여 년 간 벗지 못한 상복을 벗고 더 큰 사랑과 용서로 승화시켜 해원과 상생이 태안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두 손 단단히 맞잡고 나아가자"고 당부의 말도 전했다.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태안유족회원들과 내외빈제75주기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제17회 태안군합동추모제가 지난 15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 김동이
이날 추모제에 앞서 <태안신문>은 지난 2023년과 올해까지 두차례에 걸쳐 제주4.3평화공원과 전남 화순군을 비롯한 전국의 민간인희생자 추모시설을 찾아 벤치마킹하며 태안군평화공원 조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에 태안군에서도 태안군평화공원 조성 추진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번 추모제에서와 같이 군수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추모공원 조성 약속을 천명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합동추모제 이후 강희권 상임이사는 "오늘 추모제에서 군수께서 직접 추모공원 조성을 약속한 것에 대해 유족들은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약속한 바와 같이 추모공원이 하루빨리 조성되길 기대하며, 현재 진행 중인 이원면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판결도 조속히 마무리돼 억울한 삶을 살아온 유족들이 위로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