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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대학 11월 프로그램의 대바늘 뜨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직 초보라 실 한 줄을 떠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이 참 좋다.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실이 조용히 밀려나가고, 그 사이로 내 마음이 한 코씩 쌓여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이 쓸 모자나 목도리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목도리를 떠볼까 하는 생각부터 했다. 아마도 그때였다. 아주 오래전, 나의 초등학생 시절의 한 장면이 예고 없이 떠올랐다.
불쑥 찾아온 오래된 기억

▲뜨개 수업을 통해 시작한 아이들 미니 목도리수업 첫 주에 뜬 미니 목도리(왼쪽). 또 뜨기 시작한 두 번째 미니 목도리(오른쪽). 다음 수업 시간에 마무리 되기를 바래보며. ⓒ 이현숙
그 기억은 엄마가 내게 떠주셨던 뜨개 코트의 촉감과 함께 다가왔다. 진한 자주색에 보라색 그러데이션이 섞인 털 코트. 지금 생각하면 꽤 고운 색인데, 어린 나는 그 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기 싫어했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어 코트가 더 이상 맞지 않았을 때, 동생에게 물려주며 '이제 벗어났다'고 안도하던 순간까지 또렷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엄마 표정이 유난히 생생했다. 엄마는 그 코트를 입혀주며 한 번도 들뜨지도 않았고, 특별히 칭찬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금빛 단추를 잠가주고, 아주 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미소가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대바늘을 들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지금, 그 미소가 비로소 마음에 닿았다. 엄마가 무슨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옷을, 자신의 아이가 정확한 사이즈로 잘 입어주는 그 순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겉으로는 드러내기 어려운, 속에서 천천히 차오르는 벅참, 나는 그 벅참을 이제야 손끝으로 느끼고 있었다.
코트에 대해 엄마에게 묻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생각하며 눈물이 불쑥 차올랐다. 수업 중이라 다들 바늘을 움직이는 조용한 공간이었기에 울 수는 없었지만, 한숨처럼 길게 들어 마신 공기 속에서 그 감정이 은근히 밀려왔다.
'아, 그때 엄마의 마음은 이런 거였구나.'
머리로만 알던 감정을,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그 코트엔 엄마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뜨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마음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초보라 한 코 한 단을 떠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시간 자체가 사랑의 모양이 되어가는 듯했다. 내가 떠보겠다고 결심한 목도리도 사실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 목도리를 잊더라도, 내가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을 떠올리고 사랑을 실어 나르던 그 '시간의 축적'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수업 중에 용기 내어 이 이야기를 나누자, 앞자리 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엄마 목도리를 한 번 떠드려 보세요. 다만 색은 꼭 여쭤보셔야 해요. 마음에 안 드시면 안 쓰실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들 사이에 작은 웃음이 퍼졌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주 큰 울림이 번졌다. 문득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많이 듣던 말이었지만, 이렇게 손끝에서 실감난 건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떠준 그 옷이 내리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내려보낼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뜨개의 의미를,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어린 나는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만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코트 속에 엄마의 새벽, 엄마의 손,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을 알게 된 지금, 뜨개 수업이 새삼 귀하게 느껴졌다.
대바늘 사이에서 처음 실감한 내리사랑

▲엄마를 위한 뜨개 선물 준비실과 바늘은 준비 되었는데, 엄마가 이 색상을 마음에 들어 하실지가 관건이다. ⓒ 이현숙
현관 앞에서 아이 목도리를 한번 둘러주며 조용히 미소 지을 날. 그날의 엄마처럼 아무 말 없이, 다만 마음속에 뜨겁게 차오르는 벅참 하나만 품고 아이를 바라보게 될 날이 기대된다. 그 순간이 아주 멀지 않은 곳에서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바늘 사이를 지나가는 실 한 가닥 한 가닥은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그리고 나에게서 내 아이들로 흘러가는 '사랑의 방향'을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털코트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그 코트를 뜨며 보내셨을 그 시간과 마음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마음을 다시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코 한 코를 천천히 떠내고 있다.
부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이 마음이 전달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