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25 전쟁 유엔 참전국 후손 교류캠프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6·25 전쟁 22개 참전국과 국내외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될 감사의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 2025.6.8 ⓒ 연합뉴스
서울시가 지난 6월 광화문 광장에 6.25 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전국 22개국에서 석재를 기증 받아, 참전한 순서에 따라 22개 돌 기둥에 국가명을 새기겠다는 것이다. 돌기둥은 'ㄴ' 자 모양으로 만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형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군 의장대가 '받들어총' 자세로 경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 총 모양 조형물을 세우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발상은 정치적 기획이고, 권력의 언어이며, 지금 한국 정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위험한 징후다. 광화문은 민주주의가 움텄던 자리다. 2002년 미선·효순 촛불, 2008년 광우병 촛불,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까지. 이 광장은 시민이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모아 냈던 공간이다. 그런데 그 자리 한복판에, 시민의 손이 아니라 군인의 총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도열하듯 서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꼭 '받들어총' 형태여야 할까
서울시는 "참전국에 대한 감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총'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감사는 언제든 더 세련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총을 세우는 방식이야말로 감사라는 감정에 군사주의적 기호를 덧칠한 것에 가깝다. 이 조형물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고, 권위와 명령의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며, '받들어 총'이라는 행위가 갖는 통제의 문화까지 끌어온다.
오세훈 시장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말하지만, 이 조형물이 광화문광장에 주는 메시지는 전쟁의 참혹함이나 평화의 소중함이 아니다. 필자에게 그 메시지는 이렇게 다가온다.
'이 광장은 시민의 광장이 아니라, 국가의 위계와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도시의 상징은 시민의 합의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광화문은 '국가와 시민이 만나는 자리'이고, 그 자리에서 시민은 국가에 질문하며 민주주의를 갱신해 왔다. 광화문광장은 말하는 광장, 질문하는 광장, 걷는 광장, 시민의 평등이 숨 쉬는 광장이다.
그런 광장에 '총'이 도열하는 건 도시의 자유를 위협하는 상징적 폭력이다. 총을 세운다는 것은 광장을 향해 위압감, 우월적 권력, 군기의 상징을 들이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질서의 재배치다. 시민과의 대화 없이 권력이 마음대로 광장을 재해석하는 전형적인 '공간 정치'다.
공간을 다루는 지도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서울시가 지난 2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6·25 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상징 공간인 '감사의 정원'이 들어선다고 밝혔다. ⓒ 서울시 제공
한국 정치에는 여전히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있다. 명령과 도열, 힘과 위계, 군기와 상징, 국가주의적 미학. 이 네 가지가 하나로 묶여 광장 한복판에 놓인다. 이것은 "참전국에 대한 감사"라는 말로 희석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상징은 너무 명확하고, 너무 거칠다.
민주주의는 상징에 예민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심해야 한다. 정치적 공간을 다루는 지도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서울시는 무겁고 거친 상징을 시민에게 억지로 들이밀고 있다. 이것은 행정력의 오만이며, 도시를 정치 무대로 사용하는 권력의 자기 과시다.
우리는 광장에 총을 세우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곳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세우고, 노동자의 눈물을 세우고, 평화를 향한 약속을 세우고, 역사를 향한 책임을 세우고 싶다. 광화문은 받들어총 자세의 상징물로 가득 차는 순간 더 이상 시민의 광장이 될 수 없다.
오세훈 시장에게 요구한다. 정치적 상징 실험을 멈추고, 광장 본연의 주인을 존중하라. 광화문은 당신의 정치적 야심을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다. 광화문은 시민의 공간이다. 광장이 총이 아닌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