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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붕어빵을 먹은 콘텐츠가 있다. 2017년 SBS <양세형의 숏터뷰>의 한 에피소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붕어빵을 한 입 먹더니 "이건 내 입맛을 버렸다"고 말했다. 워낙 혹평으로 유명한 셰프라 크게 놀랄 반응은 아니었다. 내 눈길을 잡은 것은 댓글이었다.

"차가운 겨울 길거리에 서서 먹어야 진짜다", "눅눅해서 그렇다, 에어프라이어에 데워줬어야 한다", "팥이 익숙하지 않은 거다, 슈크림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마치 전통 음식인 김치나 불고기가 혹평을 받은 듯, 한국인들은 붕어빵의 명예를 되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 동네 '붕어빵 맛집' 찾는 사람들

 무던한 매력의 붕어빵
무던한 매력의 붕어빵 ⓒ 오마이뉴스

붕어빵 얘기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스무 살 무렵 함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언니다. 그녀는 커피를 내릴 때마다 "붕어빵 먹고 싶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곤 했다. 당장 가게 앞에 붕어빵 파는 노점상이 있는데도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매코미'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것을 위해 김포에서 서울 효창공원까지 왕복 두 시간을 들여 사온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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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코미' 붕어빵은 볶음김치에 당면과 채소까지 섞어 김치만두를 연상케 한다고 한다. 그 말 이후 붕어빵은 내게 단순한 길거리 간식이 아니었다. 10년쯤 지나 박명수가 진행하는 유튜브 '할명수'에 그 집이 등장했다. 서울 3대 붕어빵 맛집이 됐다. 이 기사를 준비하며 알게 된 소식을 언니에게도 전했다.

"맞아, 저 맛이야!"

그녀의 메시지 답장에 추억이 녹아있었다. 강산이 변해도 골목을 지키고 있는 붕어빵의 은근한 힘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붕어빵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정확히는 붕어빵이 아니라 도미빵(타이야끼)다. 붕어빵의 유래가 일본에서 비싸서 사먹기 어려웠던 도미를 본떠 만든 틀이라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이 도미빵 디저트는 노점상이 아니라 아울렛 한 구역에 자리 잡은 고급 디저트였다.

 붕어빵
붕어빵 ⓒ Unsplash

당시 기준 하나에 3천원이나 했다. 큰 맘 먹고 산 크로와상 타이야끼는 금빛을 띤 도미빵이었다. 길거리에서만 보던 구수한 붕어빵과는 다소 다른 자태에 당황스러웠다. 한 입 베어물었다. 페이스트리 결의 바삭함과 설탕 코팅이 입에 진하게 남는다. 이것이 혹시 크로플의 원조는 아닐까.

지금도 생각나는 진한 맛이지만, 두 번 다시 그 가게를 찾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겐 금칠한 도미빵보다는 길거리에서 무심하게 사먹는 붕어빵이 더 익숙한가보다. 한때는 이런 '이색 붕어빵'을 위해 먼 길을 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길거리에서도 다양한 변형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 앱만 검색해도 우리 동네 '붕어빵 맛집'이 줄줄이 뜬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이색 토핑 가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동네 상가 거리 앞에는 팥, 슈크림, 초코슈크림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한다. 꼬리까지 속이 꽉 찼다는 증언도 있다.

나가기 귀찮은 날엔 냉동 붕어빵을 사서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는다. 이제는 바삭함을 되살리는 기술도 충분하다. 때문에 이제는 카페에서 인스턴트 붕어빵을 파는 풍경도 흔하다.

3개 천원 시절은 멀어져만 가지만... 붕어빵이 늘 반가운 이유

 겨울철 늘 그 자리에 있는 붕어빵.
겨울철 늘 그 자리에 있는 붕어빵. ⓒ 오마이뉴스

그렇다면 왜 붕어빵은 유독 이토록 다양한 형태로 확장됐을까. 초코맛 델리만쥬나 메추리알 계란빵은 아직 흔치 않다. 반죽 속에 무언가를 넣는 구조는 비슷한데, 왜 붕어빵만 이처럼 파생 제품이 많은 걸까.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각종 레시피를 직접 비교해봤다. 찾아보니 핵심은 '반죽'이었다.

델리만쥬 반죽은 물·달걀·설탕 비중이 높아 케이크처럼 부풀고, 크림류처럼 녹는 재료에 최적화돼 있다. 반면 붕어빵 반죽은 팬케이크나 와플처럼 비교적 단단하고 균일하다. 물 함량이 낮아 흐르지 않고, 팥처럼 무게감 있는 재료도 잘 버틴다. 붕어빵은 '틀만 붕어 모양이면 된다'는 관대함 덕분에 온갖 재료를 품어낼 수 있다. 무던하면서도 그릇이 넓은 디저트다.

이런 유연함 덕분에 붕어빵의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추억의 노점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붕어빵·군고구마·호떡 등이 포함된 '통신 및 방문·노점 판매업' 종사자는 2019년 하반기 대비 약 3만 명 감소했다. 재료 원가가 꾸준히 오르고, 세금과 영업 신고 문제도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샵인샵' 형태가 늘었다. 국수집과 붕어빵, 탕후루와 붕어빵처럼 쉽게 연결해본 적 없는 업종이 시즌 장사를 위해 공간을 나눠 운영하는 방식이다. 시에서 마련한 컨테이너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3개 천원 시절은 옛 이야기가 되어간다. 물가, 임대료, 세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붕어빵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는 특유의 덤덤함으로 어떤 상황도 품는다. 디저트의 유행이 바뀌어도 늘 그 자리를 지킨다. 요즘의 나는 그런 붕어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때는 뚜렷한 개성으로 군중을 압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러 상황과 변수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해 겨울 마음이 추워질 때 사람들이 찾는 존재가 그런 것 아닐까. 어릴 때는 그저 맛있게 먹는 길거리 간식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겨울마다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붕어빵에게 반가움을 느낀다.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그 덕분에, 우리의 겨울은 좀 더 무던하다.

#붕어빵#팥붕어빵#슈크림붕어빵#붕세권#팥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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