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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올해 첫 영하권 추위가 예고 되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날이면 10여 년 전 한 줄기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있던 그때가 생각난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남편의 도전은 무리한 욕심만은 아니었다. 더 잘살아 보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섣부른 도전이었고 혹독한 세상으로의 초대였다. 결국 봄날의 희망은 벚꽃잎처럼 산산이 흩어졌고 우리 앞에는 거대한 동장군만 버티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기가 싫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덮어 썼다. 오전 9시가 되면 금융기관의 독촉 전화가 시작되었다. 문자나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법적 절차를 예고하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그 편지는 차분한 말투로 우리 가족을 두렵게 했다. 집어삼켰다. 결국 살고 있던 집 전세금을 빼서 급한 불을 끄고 낡은 18평 시댁 빌라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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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상황을 이겨내려고 했다. 시부모님께서는 함께 벌어 갚자며 힘내자고 하셨다. 하지만 희망은 그리 쉽게 오는 게 아니었다. 가장 힘을 내야 할 남편은 자꾸 진흙탕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져 올려놓으면 다시 빠지고 빠져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못나게도 시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시아버님의 낙천적인 마음가짐이 문제를 회피하는 남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점점 마음이 삐뚤어져 갔다.

마음이 추운 날일수록 든든히 먹는다

필자가 차려낸 소박한 밥상 시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상을 흉내낸 필자의 밥상
필자가 차려낸 소박한 밥상시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상을 흉내낸 필자의 밥상 ⓒ 우재인

그날은 시어머님이 안 계셨다. 나머지 가족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내가 저녁을 차렸다. 몸이 힘든 건축 노동일을 하고 돌아오신 아버님께는 밥을 가득 퍼 담았고, 내 밥그릇은 반 공기만 펐다. 희망이 없는 나날이라 입맛도 없었다. 그 마음을 아셨는지 시아버님은 본인 밥공기의 밥을 덜어서 내 밥그릇에 올려주셨다.

"많이 먹어."

당시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남편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시길 바랐는데, 늘 '많이 먹어'라고만 하시니 조금 미운 감정도 생겼다.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주신 밥을 남편 밥그릇으로 다시 옮겼다. 식사는 아이들의 종알거림만 있고 어른의 대화는 일절 없이 마무리 되었다. 식후 아버님은 바람 쐬러 외출하셨고, 사고로 그날 돌아가셨다. 결국 '많이 먹어'라는 말이 유언이 되었다.

시아버님은 추운 겨울 새벽 일을 나가실 때면, 전날 끓여둔 국을 데워 밥 한 술 말아 드셨다. 자식, 손주 깰까 봐 TV도 소리 없이 보셨고 현관문도 조심히 열고 나가셨다. 아버님에게 몸과 마음의 추위를 떨궈버릴 힘은 '든든한 한 끼'였을 것이다.

정말 눈 뜨기 싫을 정도로 괴로울 때도 억지로 일어났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시아버님처럼 국 한 그릇에 밥 한 술 말아 먹었다. 먹고 나면 그래도 살고 싶어졌다. 따뜻한 국물이 온몸에 퍼지면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따뜻한 밥에 담긴 가족의 사랑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났다.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새벽 시장에 간다

시어머님은 종종 새벽에 버스를 타셨다. 큰 역전 시장에 가셔서 장을 봐오셨다. 돌아오실 때는 갈치가 든 아이스박스와 얼갈이 두 단을 낑낑대며 들고 오셨다.

"이 크고 싱싱한 걸 2만 원에 이만큼 주더라."

오동통한 갈치를 소분하는 손에서 기쁨이 느껴질 정도였다.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으며 뿌듯해하시는 모습이 아직 선명하게 떠오른다. 집 앞에도 시장이 있는데, 버스로 20분 거리의 역전 시장을 가시는 이유를 여쭤보았다.

"가서 보면 정신이 확 든다. 새벽부터 열심히 움직이는 상인들 보면 나도 살아야지 싶다."

어머님은 힘들어 하는 며느리에게 그리 말씀하셨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찬 바람이 불면 소박하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차려낸 시어머님의 밥상이 그립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치구이, 젓가락이 제일 먼저 가는 김치전, 시래기 가득한 칼칼한 감자탕, 신선하게 입맛 당기는 꼬막무침까지 시어머님으로 인해 며느리가 좋아하게 된 음식이다.

시아버님 허망하게 돌아가시고 어머님도 힘드셨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걱정할까 봐 매번 '엄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은 분가해 살고 있지만, 그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사랑법을 배웠다.

젊을 때는 잘 몰랐다. 내 나이 마흔이 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성숙해 보니 알 것 같다. "밥심으로 살자"는 그 말의 의미를 말이다. 얼었던 몸을 깨우고 일으켜 살다 보면 내 마음에도 봄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여러 가지 일로 힘들고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의 글이 뜨끈한 국에 말아 먹는 한 수저가 되길 바란다.

#가족사랑#한끼식사#전통시장#겨울밥상#어려운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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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글을 흩뿌리는 시민 기자.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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