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허리 높이의 두 줄이 무대를 팽팽히 가른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핀 조명 두 줄기는 어둠 속 땡땡한 줄에 초점을 맞춘다. 아래 줄에는 빛이 나는 검은 옷이 걸려 있다. 살결의 무용수가 나와 아주 천천히 탐색하며 그것을 입는다. 밝은 색에서 검은색으로 옮겨가는 짧고도 긴 시간에 맞춰 객석의 호흡도 멈춘다.

초반엔 어떤 무대 장치도 튀지 않는다. 대신 핀 조명과 두 줄이 공간을 직선으로 설계하고,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는 후반부에 등장할 '빈 탑'의 공간을 예고할 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링이 하나둘 등장하는데, 서로의 균형을 시험하며 겹겹이 쌓이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는 원환의 탑이 무대 전체를 장식한다. 등장하는 오브제와 무용수의 표현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숨어 있을까. 무대와 객석의 시간은 잠시 느린 속도로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올려 세우는 손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작동하는 힘'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는 그것을 필자와 나눈 지난 인터뷰를 통해 '믿음'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믿음이 몸을 어떻게 작동시키며,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 주목했다. 그 과정은 반복과 실패, 균열과 회복의 반복된 리듬으로 구현된다. 팔꿈치와 손목의 각도가 아주 미세하게 바뀔 때마다 균형은 다시 계산된다. 물체가 한 겹씩 쌓아 올라가면 손목과 발목이 미세하게 떨림을 감지한다. 그 미세한 흔들림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작동임을 천천히 납득시킨다.

AD
두 무용수의 대비되는 의상도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한쪽은 유광의 검정으로 빛을 강하게 반사하지만, 다른 쪽은 피부색에 가까운 담박한 톤으로 조도를 흡수한다. 같은 동작이라도 두 질감의 차이에서 전혀 다른 결로 번역된다. 구조물 곁에서 반사되는 광선이 몸의 윤곽을 끊었다 붙인다. 커튼콜 순간, 거대한 원환 구조물이 배경으로 남고 두 사람이 그 앞에서 숨을 고른다. 이 장면은 "무너진 뒤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다른 장면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이 이목을 끌었다. 고무줄에 매단 야광 공이 중심축이 되는. 원이 그려지고, 거의 암전에 가까운 배경에는 공의 궤적과 그림자만 남는다. 빛의 잔광이 선을 그린다. 그림자는 한 박자 늦게 그 선을 확대해 화면을 채운다. 안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선과 원의 어휘로 번역해 보여주고, 관객은 그 잔광 속에서 몸의 균형이 어떻게 다시 계산되는지 조용히 목격한다. 객석은 그 떨림을 '아직 남아 있는 어떤 것'의 증거로 감지한다. 이 장면은 <체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압축한다. 믿음은 부서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잔향을 말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탑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오브제 하나가 공중에 '남아 있는' 듯 미세하게 흔들리는데, 그것은 무너짐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신념의 잔류, 혹은 집단 무의식에 스며든 '얼'의 접속처럼 보인다.

균형·붕괴·여운의 세 단계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민희정 안무가의 〈체화〉공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체화>의 호흡은 크게 세 갈래로 흐른다. 첫째, 몸과 사물이 같은 속도로 호흡하며 균형을 배우는 도입. 둘째, 리듬이 조금씩 찢어지며 붕괴가 찾아오는 중동(中動). 셋째, 무너진 자리에서 남는 여운을 길게 듣게 하는 수습이다.

여기에 음악과 조명은 서두르지 않는다. 빈 시간과 정적을 과감히 남겨 관객의 호흡을 붙잡는다. 무대가 갑자기 지워진다. 그때 객석의 기억이 빈칸을 채운다. 우리는 개인의 장면들을 소환한다. 문지방을 밟지 않던 발.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던 밤. 물 그릇 앞에서 누군가를 위해 중얼거리던 기도의 잔상. 신앙의 이름이 무엇이든, 삶을 지탱해 온 원초적 힘이 우리 몸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관객 스스로 더듬게 하는 장치들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붕괴 이후의 처리다. 많은 작품이 클라이맥스에서 정서를 터뜨리지만, <체화>는 그 반대편을 택한다.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진 뒤 남는 공허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공허에 빛을 비춘다. 정적은 일종의 휴지부로 길게 늘어나며 관객의 호흡을 길게 끌고 간다. 그 사이사이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나 조명의 미묘한 지연이 긴장을 한 번씩 풀어준다. 작품의 정서는 과장되지 않은 채 현재형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관찰자로 물러선 안무

<체화>가 응시하는 '한국성'은 박물관 유리관 속 기호가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밤하늘의 달, 길가의 돌무더기. 사소한 사물에 스민 신성함과 그 앞에서 반복되는 의례적 몸짓이다. 이것들이 오늘의 우리 몸을 규정해 왔다고, 작품은 말 없이 증명한다.

무속·미신·얼·한·신명 같은 무형의 기운도 다르지 않다. 도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몸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등장한다. 안무가는 한 걸음 물러선 관찰자다. 관객은 방관자에서 주체로 이동한다. 무대의 빈 공간에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서서히 스며든다. 안무 노트 한 귀퉁이에 깃든 사적인 기억도 닻이 된다.

"새벽마다 물을 떠 놓고 달을 보며 기도하던 할머니, 생일마다 팥밥을 먹던 식탁, 장례를 다녀오고는 소금을 듬뿍 뿌리던 손, 이가 빠지면 아파트 창밖으로 이를 던지던 어린 날의 몸짓."

이 장면들은 특정 교리의 소유물이 아닌 생활의 믿음을 환기한다. 합리와 비합리를 넘나들며 우리를 사물·공간·이웃과 연결하던 감각이 몸의 습관으로 남아 있고, 작품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이 힘을 받아왔고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묻는다.

돌탑이라는 메타포에 남겨진 질문

돌탑은 '정신의 물질화'다. 이 작품에서 그 상징은 철제 원환으로 만든 조형물로 구현된다. 서로 다른 크기의 링이 겹겹이 쌓인다. 움직이는 탑이 된다. 원환 사이로 새는 빛과 그림자는 또 하나의 탑을 바닥에 세운다. 관객의 시선은 그 주위를 따라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

필자는 지난 12일 이 공연을 보면서 산길을 떠올린다. 우리는 누구의 지시도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돌을 집어 올린다. 행운을 빌거나 길을 표시하려는 실용을 넘어, 불확실한 세계에 아주 작은 질서를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 돌은 흔적이 된다. 내가 여기를 다녀갔다는 영역 표시랄까. 다음 이를 기다리게 하는 신호로도. 의례의 규칙도 완성의 기준도 느슨하지만, 바로 그 느슨함이 더 많은 몸을 끌어들인다.

믿음은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고 반복적인 몸짓에서 시작된다. 서로 다른 크기의 링들이 겹겹이 쌓이며 움직이는 탑을 이룬다. 한국적 몸짓의 리듬이 구조물의 곡선에 스며들고, 원환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과 그림자가 또 하나의 탑을 바닥에 세운다. 반복되는 쌓기 행위와 축적된 시간이 사물을 신성으로 바꾸는 과정을 가시화 한다.

실체 없음의 체현이자 실체의 흔적 등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오늘의 우리 사회가 신념과 제도 사이에서 겪는 긴장을 은근히 비춘다. 공동체의 약속된 믿음이 정형화·제도화로 무겁게 유지 되다가도, 한 순간의 전환으로 쉽게 해체될 수 있다는 사실로 비유된다. 작품은 이를 거창한 담론 대신 세밀한 물성의 조작, 무게 중심의 이동, 호흡의 길이를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거대한 명제 없이도 설득력이 생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춤의 수사학이 아니라 신념의 역학이다. 준비 과정에서 민 안무가는 이렇게 말했다.

"몸의 습관과 사물의 선으로 믿음의 작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업은 교리의 해설이 아니라 '살아온 몸'의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에 가깝다. 마지막 장면에서 돌은 더 이상 쌓이지 않고, 무용수의 호흡만이 객석을 스친다. 그 호흡이 천천히 흉골을 두드리는 순간, 비로소 깨닫는다. 이 춤은 결말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위한 '발판'이라는 것을. 오늘 남겨둔 빈칸들은 다음 번 확장에서 또 다른 리듬과 형상으로 채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무용 창작자들의 예술적 성장과 터닝포인트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인데, 창작 초연을 지원하는 '스테이지1'과 그 초연작을 1시간 분량으로 완성시키는 '스테이지2'로 나뉜다. 올해'스테이지1'에는 5월 공모를 통해 김영찬, 정찬일, 박유라, 민희정이 선정됐다.


#무용#민희정#체화#대학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대학로에서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