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떠난다는 것은 길 위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자기 자신과의 만남만이 아니라, 길 위의 모든 것에 깃든 한울, 즉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 우주 즉 한울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만나는 것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시천주(侍天主- 한울님은 내 몸 안에 계시다는 동학사상) )는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으므로.
2027년 해월 선사 탄생 200주년을 준비하며 나선 동학순례길 기초조사는 수운 최제우 대선사와 해월 최시형 선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행로로, 천도교 사회문화관(관장 최인경)이 주관하고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장소마다 동학 전문 연구자 신춘호 박사와 최인경 관장의 깊이 있는 해설과 강연이 덧이어졌다.
천도교 사회문화관 최인경 관장은 해월 최시형 선사의 직계 후손이다. 그는 순례단에게 '천도교와 동학은 다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최관장은 일반 사람들은 천도교는 심오하고 어려운 종교이고 동학은 사회 운동이라 생각하지만 '천도교가 동학이고, 동학이 천도교'라고 말한다.
천도교가 동학의 핵심 사상이라면 동학은 그 핵심 사상을 실천하는 실천 강령이기에 일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관장은 '동학농민혁명' 이라는 명칭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동학혁명에는 농민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 한 혁명이기에 '동학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동학'과 '동학혁명'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동학이 근본 뿌리이고 동학혁명, 6.10 만세 운동 3.1운동, 빛의 혁명은 시대마다 뻗어 나온 줄기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월 선생 동상동상은 횡성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순례길 시작은 경주 황성공원에 자리한 해월 선사 동상에서부터다. 해월 선생이 경주시 황오동에서 탄생했기에 경주 시내에 자리한 황성공원에 동상을 건립했다 한다.

▲해월 동상 앞해월 동상 앞에서 신춘호 박사가 해설을 겸한 강연을 하고 있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동상은 오른손은 세상을 향해 들고, 왼손에는 책을 든 해월 선사의 모습이다. 동상 왼편에 수운 선생 신원(伸冤)을 위해 가졌던 보은취회의 정경이 새겨져 있다. 1893년 3월 11일 시작된 보은취회는 수운 선생 신원을 넘어 척양척왜를 전면에 드러낸 평화적 집회로 동학혁명의 전단계적 의의를 지닌다.

▲용담정용담정 전경 ⓒ 천도교 사회문화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일대는 민족 종교 '동학'의 발상지이다. 용담(龍潭)은 동학천도교 제 1의 성지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가 태어나고,"사람마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셨으니 (시천주(侍天主) 사람이 곧 한울(인내천(人乃天)"임을 깨달아 천도교를 창시하고 세상에 가르침을 편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5년 성역화 작업을 통해 용담정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용담교용담교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 ⓒ 천도교 사회문화관
풍광이 몹시 빼어난 계곡 옆에 자리해 오르고 내리는 길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용담정에 올라 잠시 호흡을 고르며 주변의 모든 것에 깃든 한울님과 조우할 수 있다.

▲해월 어록비신광면 냇가 건너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신광면 신광온천 앞 마을을 가로지는 냇물가에 해월 최시형 선생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비문 글씨는 신광중학교 2학년 학생이 쓴 것으로 신광면 일대 주민과 천도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세운비로 의미를 지닌다. 어록은 평이한 말씀이지만 동학 사상 실천 강령으로 깊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다음은 어록비 내용 일부다.
사람을 대할 때에 어제나 어린아이 같이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데 들어가리라.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오,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
(중략)
말은 행할 것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한 것을 돌아보아, 말과 행동을 한결같이 하라.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기면 마음과 한울이 서로 떨어지고, 마음과 한울이 서로 떨어지면 비록 해가 다하고 세상이 꺼질지라도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만물이 시천주(侍天主) 아님이 없으니 능히 이 이치를 알면 살생은 그치 아니해도 자연히 금해지리라.
(중략)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가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치리라-대인접물 중에서
해월 선생 고향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이 비를 세움
단기 4331년 9월 20일
며느리에게 '저기 한울님이 앉아 계시다'하며 밥상을 받을 때면 절을 하며 공손하게 상을 받았다던 해월 선생의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해월 최시형 선생 옛집터 검곡저수지 두 물이 합수하는 곳 100여 미터 길은 산속에 최시형 선생이 머물던 옛집터가 있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해월 최시형 옛집터 검곡은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 389-12에 자리한다. 해월 선생이 서른 세 살 되던 해인 1859년부터 관의 눈길을 피해 도망을 다니기 시작한 1864년까지 살던 곳이라 한다.
북구 신광면 마북리라는 마을 안쪽 깊은 산속에 자리한 산간 마을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골짜기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서 100미터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집터가 나오는데 '천도교 교조 해월 최시형 옛집터 가는 길'이라는 표식이 세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들린 흥해 손봉조 집터는 경북 포항시 흥해읍 매산리 645에 자리한다. 손봉조 집터는 동학 조직인 접조직을 최초로 시행한 지역으로 의미를 지닌다. 접주제란 동학교도가 많이 늘어나고 분포 지역이 넓어져 지역을 효율적으로 지도 관리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다.
1862년 12월 제자 손봉조의 집에서 각처 제자들을 모아 접주를 임명했다. 당시 임명된 접주들은 다음과 같다. 경주부서 백사길, 강원보, 영덕 오명철, 영해 박하선, 대구 청도와 경기도 일대 김주서, 청하 이민순, 연일 김이서, 안동 이무중, 단양 민사엽, 영양 황재민, 영천 김선달, 신영 하치욱, 고성 성한서, 울산 서군효, 경주본부 이내겸, 장기 최중희로 교세가 경상도 전역과 충청도까지 넓게 퍼진 것을 알 수 있다.
2027년이면 해월 최시형 선사 탄신 200주년 이라고 한다. 중앙총회와 경주시는 물론 포항시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터 복구, 해월 최시형 순례길 조성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옛집터 순례길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 옛집터를 찾아 걷고 있는 순례자들 ⓒ 천도교 사회문화관
해월 선생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흔적 속에서 그 길을 걸은 모든 이들의 숨결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 순간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는 진정한 순례의 길일 것이다.
"그대, 순례길을 걸으며 만물에 깃든 한울님을 만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