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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학원비 때문에 학원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었어요. 너무 마음 아픈 일입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는 한 사설학원 선생은 최근 겪고 있는 '뜻밖의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엔 한두 명에 불과했던 그만 두는 아이들이 이제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학원을 떠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며 교실 분위기마저 달라지고 있었다.

사설학원은 학생들이 납부하는 학원비로 운영된다. 이 비용은 결국 학부모에게 직접 부담으로 돌아간다. 학원비는 지역, 학원마다 다르지만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 대체로 월 25만~30만 원 수준으로, 1년이면 약 300만 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학원 측은 처음 한두 달 정도는 미납을 기다려주지만, 연체가 길어지면 원장이 먼저 학부모에게 연락해 상황을 확인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해당 학생을 맡은 담당 선생이 다시 전화를 걸어 납부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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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모든 상황을 아이들은 모를 리 없다는 점이다. 최근 학원에서는 이런 대화가 종종 들린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전화 왔어요? 저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린 마음에, 아이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느낀다. 학원 선생은 "학원비는 사실 어른들의 문제지만, 정작 상처를 받는 건 아이들"이라며 "눈치 보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너무 뚜렷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듣는 장면을 AI가 그린 그림
교실에서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듣는 장면을 AI가 그린 그림 ⓒ 진재중

학원은 공부방이자 '돌봄 공간'... 하지만 돈 없으면 이용 못 한다

요즘 맞벌이 가정에게 학원은 단순한 '사교육 기관'이 아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시간, 아이들은 안전하게 머물며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사실상의 돌봄 시설로 학원을 이용한다. 도심의 학교 앞과 아파트 단지 주변에 학원이 즐비하게 늘어선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공간이 이제는 "돈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토로한다.

"집에서는 아이 혼자 두기 불안하고, 학교의 돌봄교실과 방과후 수업은 늘 자리 부족해요. 결국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게 되는데… 가정,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방과후 수업의 한계가 만든 사교육 의존의 현실

방과후 수업은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운영되지만 학교 규모와 예산에 따라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달라진다. 작은 학교는 프로그램 종류가 제한되고, 큰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도 경쟁률이 높아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예산 격차까지 더해져 무료 운영을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유료 수업이 증가해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는 곳도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린이가 원하지 않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선택할 경우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를 배회하는 학생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과후 수업은 담임교사의 관리 범위를 벗어나 있어 학생들을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애로사항을 전했다.

기자는 학원 선생의 말을 들으며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매달 내야 하는 '월사금'이 있었다, 월사금은 다달이 내던 수업료였고 스승에게 감사의 뜻으로 다달이 바치던 돈이었다. 그 시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해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녔고, 교실에는 결석한 학생들로 빈자리가 종종 보였다. 특히 예민한 아이들은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결석을 반복하곤 했다. 그때 담임선생은 결석한 학생의 집을 직접 찾아가 사정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월사금을 대신 내주며 아이를 다시 학교로 이끌었다. 교실은 단순한 학습 공간을 넘어, 선생이 부모처럼 아이들을 돌보던 따뜻한 정이 깃든 곳이었다.

이후 경제가 나아지고 의무교육이 정착되면서 초등학생이 돈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1979년에는 서울 등 6대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육성회비까지 폐지되며 학교 교육의 금전적 부담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과거의 문제는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학원 안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요?

 옛날 초라한 시골학교 모습이지만 따뜻함과 훈훈한 정서가 흐르는 교정을 AI가 그림
옛날 초라한 시골학교 모습이지만 따뜻함과 훈훈한 정서가 흐르는 교정을 AI가 그림 ⓒ 진재중

대한민국 교육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는 의무교육이지만, 현실에서 아이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일부 학교 선생님들도 인정한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금, 아이는 학교가 끝나도 갈 곳이 필요하다. 돌봄교실은 포화 상태, 지역마다 격차가 크다. 결국 학원은 '공부와 돌봄' 기능을 하는 필수 인프라가 되었다. 문제는 이 필수 공간이 경제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닫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원비가 연체되면 부모에게 독촉 전화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 가난이 가장 먼저 아이의 자존감을 흔드는 셈이다. 부모의 경제 사정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지만, 결국 가장 깊이 상처받는 이들은 아이들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학원의 사정이 아니다. 돌봄의 공백,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균형, 경제 양극화가 만들어낸 현장의 목소리다. 학원은 학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는 공간이 되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가정의 부담으로 쌓이고 있다.

그 결과, 학교가 끝난 뒤 이뤄지는 교육은 다시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 양극화의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일부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나는 돈이 없어서 못 배우는 아이'라는 상처가 남을까 걱정된다.

#학원#방과후교육#학원비#월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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