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공천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씨(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아내)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일부 언론들이 김건희씨 측 입장을 검증 없이 보도하는 행태가 지속되면서, 김건희씨의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의 비리 의혹 방어하기 급급한 김씨는 불리한 정황이 나오면 입장을 번복하는 행태를 이어왔는데, 언론들이 이에 대한 판단조차 게을리한다는 지적이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 부인 김건희씨는 지난 8월 주가조작과 명태균씨 여론조사 무상 제공,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언론 입장문과 법률 대리인 발언 등을 통해, 본인 입장을 꾸준히 밝히면서 일종의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김씨가 내는 입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이다.
<오마이뉴스>가 국내 104개 언론사 기사가 저장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통해 살펴본 결과,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김건희씨 측의 입장'을 기사 제목에 반영한 언론 보도(검색어 기준: '김건희측', '김건희여사측', '김씨측'이 기사 제목에 포함)는 136건으로 나타났다. 주요 언론사별로 보면 YTN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머니투데이> 10건, <동아일보> 5건, <파이낸셜뉴스> 7건, <아시아경제> 6건, <경향신문> 4건, KBS 2건, SBS 1건 등으로 나타났다. MBC와 <조선일보>, <한겨레> 등은 1건도 없었다.
기사 제목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김건희씨 입장을 특검 입장과 함께 내면서 김씨와 특검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형태의 기사 제목 배치다. 김건희측 "특검이 불륜 프레임" 특검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하나"(11월 13일, 동아일보), 김건희측 "특검이 불륜 프레임" 특검 "사실무근"(11월 13일, 헤럴드경제)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는 김건희씨 입장만 담긴 기사 제목으로, 김건희 측, 대한변협 진정..."고지 없는 특검 조사 중계 위법"(10월 20일, YTN), 김건희 측 "적당히 해라" '경복궁 용상' 사진 유포자 경고(10월 26일, 디지털타임스), 어지럽고 불안증세 악화 김건희 측 "보석해 달라"(11월 5일, 문화일보), 김건희 측 "전성배로부터 두 차례 샤넬 가방 선물 받아" 청탁 의혹은 부인(11월 5일, 세계일보) 등이 이에 속한다.
김씨의 입장문을 '단독'이나 '속보'로 처리한 언론사들도 있다. 지난 11월 5일 김건희씨가 샤넬백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 입장문을 내자 <동아일보>는 이를 '단독' 기사(김건희측 "여론 광풍에 과도한 비난 두려워 혐의 부인했던 것")로 보도했다. <머니투데이>([속보]김건희 측 "금품수수 관련 청탁 전달안돼 호의 수준 언급에 불과")와 <한국경제>([속보] 김건희측 "공직자 배우자로서 신중히 처신했어야 깊이 반성"), YTN([속보] 김건희 측 "통일교 측 샤넬 가방 받은 사실 인정") 등은 '속보 경쟁'까지 하면서 김씨의 입장을 실어날랐다. 기사 내용 역시,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아낸 스트레이트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8월 김건희씨는 구속기소 직전까지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씨로부터 샤넬백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성배씨가 법정에서 샤넬백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김씨는 지난 11월 5일 "전씨로부터 두 차례 가방 선물을 받았다"면서 기존 입장이 '거짓말'이었음을 시인했다.
김씨는 이 입장문을 내면서 "반성한다"고 했지만, 법조계 등에선 '반성'보다는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입장 변경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씨가 샤넬백 수수를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언론들이 김씨 입장을 가감없이 보도하는 것은 범죄 피고인에 불과한 김건희씨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오보'의 위험성까지 떠안은 행태라는 지적이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특정인의 발언을 인용보도할 수는 있지만, 특정인이 해왔던 발언들이 신뢰도가 낮거나, 말을 자주 바꾼다면, 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언론들이 그 사람의 말을 받아써주면 그 자체로 공신력을 얻게 되고, 대중들도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정보원 효과라고 하는데, 나중에는 언론들이 김씨의 동조자가 되는 꼴이 될 수 있는 거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김건희씨 관련 언론들의 보도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냥 경마식 보도로 받아쓰기 쉬우니까 그렇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어찌보면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가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또,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김건희씨 입장을 보도하더라도, 그에 대한 배경적 사실과 비평이 충분히 이뤄지고, 과거 발언과의 차이점도 함께 짚어줘야 대중들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가령 '김건희씨는 과거에 이런 말을 했다가 번복했다'는 등의 내용도 함께 담아내야 한다"면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인데,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신뢰도가 있다고 전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