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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5 13:24최종 업데이트 25.11.15 13:24

제목을 짓는다는 일

짧아야 하고, 또 너무 짧아도 안 되는 제목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년간 방송으로 말하던 사람이 이제 글로 아이에게 말을 겁니다. 전환의 길목에서, 여전히 세상에 말을 걸고 있는 중입니다.
출간을 준비 중인 출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책 제목이 조금 긴 것 같습니다. 한 번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였지만 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제목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 책을 소개할 때 먼저 부르는 이름이며, 온라인에서 검색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너무 길면 사람들은 숨이 차고, 너무 짧으면 의미가 충분히 닿지 않는다. 제목은 책의 첫인상이자 마지막 인상이며, 그 책이 세상과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책과 제목을 연결하는 감각을 곱씹었다. 과거 제주에서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가게 이름을 단 '한 글자'로 정했다. 그 한 글자가 가진 상징성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손님들은 "네? 뭐라고요?" 하고 되묻기 일쑤였고, 검색창에서는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온라인 기록에도 제대로 남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름은 의미만큼이나 '기능'도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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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 제목은 단순히 멋있는 문구가 아니라, 독자가 책을 손에 들기까지 도착해야 하는 통로다. 너무 길면 흩어지고, 너무 짧으면 방향을 잃는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이야기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나는 다시 제목 후보를 적기 시작했다. 짧은 것, 조금 긴 것, 의미가 즉각 와닿는 것, 여운이 남는 것… 단어 하나하나를 붙잡고 굴리며, 종일 씨름했다. 제목은 단순한 글 위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기억 속에 남도록 만드는 힘이 있어야 했다.

이름을 기다리는 순간 제목이 이야기를 세상으로 불러낼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름을 기다리는 순간제목이 이야기를 세상으로 불러낼 순간을 기다립니다. ⓒ 이효진

개인적인 이유로 제목에 예민한 마음이 있다. 아이 이름을 지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께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버지는 여러 의미와 생년월일을 따져 이름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그 이름은 부르기가 자연스럽지 않았고, 화가 났을 때 터져 나오는 소리와 닮아 있어 자꾸만 어색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다시 이름을 지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이름의 힘을 배웠다. 부를 때 기분이 좋아야 하고, 자연스럽게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책 제목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짧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이름, 읽는 사람에게 궁금증을 주고 마음에 남는 이름을 기준으로 여러 후보를 정리해 보냈다. 다음날 출판사에서 답장이 도착했다.

쉽고 간단하게 기억되는 이름, 유사성이 없고 독창적인 이름을 기준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기억되기 쉬워야 한다. 소개하기도 편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쉽다고 해서 기존 작품과 비슷하면 안 된다. 유사성을 피하고, 독창성을 담아야 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같은 이름의 아이가 두 명 있으면, 결국 '키 큰 진이', '키 작은 진이'처럼 다른 이름을 붙여 불러야 했다. 책 제목도 똑같다. 이름이 겹치면 온전히 그 책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신선하고 독창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출판사의 답변을 보며, 나는 그 고민에 충분히 공감했다.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앞으로 책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에서 출판사도 함께 안고 가야 할 고민이었다.

책 제목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은 어쩌면 나의 명함이 될 수도 있다. 첫 책이니까, 누군가에게 "이 책의 작가는 누구입니다"라고 소개될 때 바로 이 제목으로 나를 불러주게 된다. 제목은 독자와 나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글 속 이야기를 밖으로 전하는 첫 마중물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후보군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며 기다린다. 어떤 이름이 최종적으로 선택될지, 그 이름이 책 속 이야기와 어떻게 어울릴지, 그 기대와 설렘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 책의 이름을 세상에 소개할 날을,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숨을 쉴 책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그 순간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제목짓기#아동문학작가#전환의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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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작가로 가는 길목에서


이효진 (297green) 내방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제주MBC, 아리랑국제방송, 제주 TBN교통방송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아동문학 작가이자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며, 유튜브 채널 '작가의식탁TV'를 통해 초·중등생의 글쓰기와 학습 성장을 돕는 교육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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