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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통일애국청년회(이하 민애청)는 2025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를 진행한 바있습니다. 이 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자세하게 알려질 계기가 더 필요하다는 의지를 모아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프로젝트 '목소리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 언론 기사에서는 알 수 없었던 피해자들의 아픔과 진실을 찾고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양심수 후원회가 함께합니다. 해당 기사는 1부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의 진실과 2부 피해자의 아픔과 목소리로 발행됩니다. |
2018년, 그때 당시 4월에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이 있었고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며 어쩌면 한반도에 다시 없을 장미빛 미래가 그려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뉴스에서 학생운동 출신의 남북경협사업가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사이버 테러를 기획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언론에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김호씨는 2007년부터 평양의 코리아 인공지능센터에서 김일성종합대학 IT 기술자들이 개발한 인공지능형 영상인식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세계 시장의 석권을 노렸던 한 명의 남북경협사업가였다. 그러나 김호씨는 남북관계에 전면적인 발전을 약속한 4.27판문점선언 발표 이후 국가보안법에 의한 첫번째 구속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남북관계의 장미빛과 남북경협사업가에서 덧씌워진 간첩이라는 굴레. 어쩌면 아이러니 했던 당시 상황은 7년이 지나 남북관계가 사실상 파탄난 상황을 암시했을지도 모른다.
11월 9일 일요일 민족통일애국청년회(아래 민애청)과 (사)양심수후원회 주최로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의 첫번째 시간 연사로 김호씨가 초청됐다. 민애청 사무국장인 필자가 진행한 이번 대담은 서울시 종로에 위치한 강경대 기념관에서 열렸다.
강경대 열사는 1991년 노태우 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백골단의 폭력으로 그해 4월 26일 사망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생 1학년이었고 김호 대표는 강경대 열사와 함께 투쟁했던 유일한 동기였다.
"강경대의 불의의 사건 이후 제 인생은 '스트레이트'였습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목소리들' ⓒ 김태중
"돌고 돌아 이제 이 자리(강경대 기념관)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경대와는 과 동기였습니다. 제가 당시 과 학생회 사회부 차장이었는데 이제 시위가 발생하면 서로 앞장서고 돌 던지고 그랬던 유일한 동기였습니다. 4월 26일 노태우 정권 규탄과 학원자주화 투쟁 과정에서 불의의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었죠. 타살도 있고 자살도 있고, 당시 김지하씨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공을 거치면서 제가 지켜봤던 것은 이념이라든가 이런 건 아니었고 어쨌든 같은 공간에 있던 그 친구(강경대)가 어느 순간 생을 달리한 것에 대한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스스로 죽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서총련 투쟁국장도 하게 됐었고 진짜 제 목숨을 내 걸 정도의 그런 절박함도 마주했던 게 20살 제 경험 때문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학생운동 출신과 인공지능 기반 얼굴인식 분야 IT사업가. 매칭이 잘 안되는 이 두가지 간극 사이에서 김호씨는 청년 시절을 넘어 중년 시절로 접어 들고 있었다. 20대 시절 한 차례의 구속 이후 삶의 다음 단계를 모색하며 남북 경제협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예측할 수가 없고 97년도의 불의의 사건으로 구속이 된 후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90년대까지만 해도 교도소에 난방이 없었으니까 진짜 방 안에 얼음이 얼거든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책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었는데 우연치 않게 그때 세계일보 기자가 썼던 <북한을 움직이는 테크노크라트>라는 책을 읽었어요.
책에는 북한의 인공지능과 로켓 기술이 나오는데 흥미롭게 보고 있는 와중에 감옥에서 한 5분 정도 정오의 뉴스가 나오거든요? 그때 북한이 광명성 로켓을 쏘아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게 제게 운명적으로 다가왔었던 거 같아요. 이후 북한과 관련된 사업을 일관되게 했었는데 제가 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해서 무작정 인천에서 훼리호를 타고 단둥으로 갔어요. 거기서 중개인들을 통해 IT 인력을 소개받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7년 그렇게 설립한 회사가 HB이노베이션. 당시는 제조업 중심 경제협력인 개성공단도 운영되던 시기였고 인기 만화 뽀로로 초기작도 남북합작으로 만들어져 남북경협 자체가 특별했던 때는 아니지만 IT협력은 흔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개성공단은 제조업에 대한 안정적인 매출이 있고 신용이 보장된 업체에 한해서만 입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김호씨가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2000년대 당시에는 수학을 잘해야 알고리즘을 잘 짤 수 있었기 때문에 수학을 잘했던 북한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다. 통일부가 합법적으로 승인하고 국정원의 인지 하에서 김일성 종합 대학의 박두호 연구소장과의 기술 협력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투자도 받게 되고 2015년에는 미국 상무성 NIST에서 세계 3위의 기술력을 인증받기도 하며 사업이 안정화 초입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쩌면 청년시절부터 꿈꿔왔던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교와 함께 평양 인공지능 센터를 만드는 꿈에도 한 걸음 다가가는 시기였다.
"지금 돌아보면 공안 탄압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목소리들' ⓒ 김태중
2018년 8월 보안수사대는 김호씨가 가족들과 자고 있던 새벽 시간 집에 들이 닥쳤다. 공안당국이 제기했던 혐의는 군사기밀 제공과 사이버 테러 기획. 대공분실에 끌려간 김호씨는 수사관들의 입에서 사이버 테러라는 말이 나오자 굉장히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현대인들에게 매우 가까운 '사이버'공간에 '테러'가 접목되자 이성이 마비되기 싶겠다는 생각. 당시 언론에서는 '학생운동권 출신, 북한 공작원의 지령으로 사이버테러 기획'이라는 뉴스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특별한 증거도 없이 통일부에 신고된 북측 IT기술자 박두호 소장을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사이버테러에 노출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이버테러의 근거인 메일과 악성코드가 깔려있다는 첨부파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북측 기술자들에게 보고를 한다거나 지령이 있었다거나 결론적으로 그런건 존재하지 않았어요. 공안당국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지령에 관련한 근거를 제시한 적이 재판과정 통틀어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군사상의 기밀이 노출되었고 그 시기에 제가 북측 기술자로부터 사이버 테러 관련 악성코드가 담긴 메일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공안당국은 그 메일 원본도 제시하지 못했고 전체 프린트된 메일 중 그 메일만 '아웃룩(outlook)'형태로 수작업 된 메일을 제시한 거에요. 그 메일에 포함되있다는 파일도 당국이 분석했다는 파일과 법정에 제시된 파일이 달랐어요. 소위 바꿔치기를 한 겁니다"
김호씨와 변호인단은 1심에서 원본도 제시되지않은 그 파일이 증거로 인용될 줄 몰랐고 결국 1심 4년 구형 후 법정 구속되게된다. 이후 2심에서 민간 사이버 테러 관련 업체에게 파일을 의뢰했고 애초에 파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결과로 2심은 무죄가 나오게 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일로 김호씨는 2심 무죄가 나올때까지 1년 여간을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심 재판부도 저에게 계속 '실제 지령이 있었는지 김일성종합대학 박두호 연구소장에서 물어볼 수도 없고'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죠. 물어볼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렇게 조작을 해도 우리가 그 사람의 증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조작이 행해지는 거거든요. 분단 상황을 악용해서 국가보안법 칼날을 휘두르는 겁니다."
김호씨는 조작을 일삼은 보안수사대원들이 아직도 처벌을 받지 않고 지금도 공직 생활을 하면서 국가의 녹을 받고 있다며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국가보안법이 문제라는 구호를 넘어서 조작을 일삼는 실행자들을 처벌해야 진정으로 재발방지에 나설 수 있다고.
또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군사기밀 유출도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군사 기밀이 아니라 군사상 기밀. 방위산업청 관련 사업을 하던 한 기업이 기술 의뢰를 해왔으나 의미없는 기술 분야였고 이에 대해 피드백을 해준 정도였다고.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하는데 그 기업이 우리에게 자료를 준게 아니라 우리가 일종의 피드백을 준 거예요. 그리고 그 업체는 대단한 기술 안보, 보안 쪽 업체도 아니고 단순한 SI(시스템 통합)업체였요. 그들이 애초에 군사 기밀을 가지고 있지도 않죠. 그리고 군사 기밀과 군사상 기밀은 아예 다른 개념이에요. 법원에서도 자기들이 군사 기밀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왜 기사가 군사 기밀로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군사상 기밀이라는 건 형법에는 없고 전두환 시절 판례에만 있는 개념이에요. 이것이 군사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임의로 지정하면 서울 사진 한 장도 군사상 기밀이 될 수 있죠. 이런 개념을 전두환 시절 이후 저한테 최초로 휘두른 거에요. 집행유예 자체가 없고 최하 처벌 조항이 7년이랍니다. 법원도 너무했는지 3년을 감형해 4년 형을 선고했죠. 당시 이 내용이 군사 기밀이 아니라고 한 것은 방위사업청 담당자를 인터뷰한 <중앙일보> 조차도 인정하는 거예요."
이 뿐만 아니라 김호씨는 북측 직원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도 국가보안법 상 회합 통신 위반, 사업 관련 물품과 개발비, 자료가 제공된 것은 금품수수 위반 등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김호씨의 사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일부의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국정원 역시 그 당시 김호씨가 북한 측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아니라 강압적으로 협조 요청까지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통일부와 국정원이 수년간 김호씨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동조했다는 것인가? 2018년 남북합의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4700억 원의 사업비를 편성하고 남북 철도연결 등을 북측과 합의했고 많은 국민들이 이를 지지했다. 검찰의 논리라면 문재인 정부도 북측에 대남공작비용으로 4700억 원을 지급한 것이며 북측이 침략하기 쉽게 철도 연결을 시도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야 한다. 이렇듯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은 동전의 양면이며 이를 악용해 공안당국은 간첩 조작 사건을 손 쉽게 일으킨다.
*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