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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센트럴파크 동쪽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센트럴파크 동쪽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장소영

미술에 큰 흥미가 없더라도 미국 뉴욕에 오면 들리게 되는 곳,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다. 규모 면에서 국립 중앙박물관의 3배가 넘는 큰 건물이 센트럴파크를 뒷마당처럼 끼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박물관은 약 200만 점의 유물과 미술품으로 연간 6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는다.

건물 내 이집트 피라미드 전시관을 지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중세 유럽 교회의 실내를 옮겨 놓은 듯한 전시실이 나온다. 제단과 제단화 앞쪽으로 피에타를 비롯한 동상과 중세 예술품을 감상하다보면 반나절은 지날 듯한데,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몇 있었다.

대부호이자 기업가 록펠러 주니어(John D. Rockefeller Jr.)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업을 경영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환경 보호와 예술 지원, 자선 단체와 기부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뉴욕에서 유럽을 느끼게 만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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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도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 서쪽을 따라 한참 북쪽으로 달려 190번가 역에서 내리면, 허드슨강 곁의 한적한 동네를 만난다. 지하철역 왼편으로 성 프랜시스 카브리니 성당이 보인다. 최초의 미국인 성인이자, 이민자의 수호성인인 카브리니 수녀의 유해가 유리관에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지난 여름 끝자락, 성당 쪽에서 방향을 바꿔 오른편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 갔다. 잘 관리된 정원과 산책로 너머로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언덕 꼭대기, 고풍스런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관만 보면 오래된 고성 같지만 사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박물관이다.

1938년 개관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분관, 클로이스터스다. 클로이스터스는 오직 중세를 위한, 중세 작품만의, 중세를 옮겨온 박물관이다. 5천 점에 이르는 전시물 뿐 아니라 건축물도 중세의 유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유럽 수도원 다섯 곳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수도원 건축물은 해체 작업을 한 후, 클로이스터스 부지에서 세밀하게 다시 조립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기둥과 벽들, 두 개의 예배실(Chapel), 오래된 수도원의 문과 벽돌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뉴욕이 아닌 유럽의 어느 동네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도원 뜰을 뜻하는 클로이스터스 박물관에는 유럽 수도원 뜰을 재현한 네 곳의 회랑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최고의 정원사를 고용해 유럽 수도원에서 길렀던 식물을 식재하고 가꿔 유럽 수도원 회랑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정원사가 정원을 돌보는 모습.
수도원 뜰을 뜻하는 클로이스터스 박물관에는 유럽 수도원 뜰을 재현한 네 곳의 회랑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최고의 정원사를 고용해 유럽 수도원에서 길렀던 식물을 식재하고 가꿔 유럽 수도원 회랑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정원사가 정원을 돌보는 모습. ⓒ 장소영

수도원의 뜰(Cloisters 회랑)을 부르던 말 클로이스터스는 이름에 걸맞게 네 개의 회랑을 품고 있다. '클로이스터(단수)'가 아니라 '클로이스터스(복수)'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최고의 정원사들은 수도사들이 실제 키웠었다는 식물들로 유럽 수도원 정원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클로이스터스는 미국의 조각가 버나드로부터 시작되었다. 조각가 로뎅의 제자였던 버나드는 가치를 잃은 채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팔리는 유럽 중세 예술품과 수도원을 안타깝게 여겼다. 작품 수집가이자 판매상이기도 했던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유럽에서 모은 그의 소장품으로 작은 박물관 클로이스터스를 열었다. 버나드가 노년에 클로이스터스를 매물로 내놓게 되자, 평소 유럽 고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뉴욕의 대부호 록펠러 주니어가 이를 매입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

 클로이스터스는 수도원의 뜰을 지칭하는 말이다. 기증되고 수집된 예술품 전시관 역할 뿐 아니라, 클로이스터스는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문화 유품을 충분히 느끼고 정서적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언덕을 부지로 매입하고 주변을 산책로와 야외 조경 공원으로 가꾼 이유다.
클로이스터스는 수도원의 뜰을 지칭하는 말이다. 기증되고 수집된 예술품 전시관 역할 뿐 아니라, 클로이스터스는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문화 유품을 충분히 느끼고 정서적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언덕을 부지로 매입하고 주변을 산책로와 야외 조경 공원으로 가꾼 이유다. ⓒ 장소영

록펠러 주니어는 자신의 중세 애장품 40점도 함께 내놓았다. 지금도 클로이스터스의 인기 높은 전시품 유니콘 태피스트리(Tapestry 카펫처럼 그림을 짜 넣어 벽에 거는 대형 직물 예술)들도 그의 기증품이다. 박물관의 부지가 된 언덕, 포트 트라이언 공원도 통째 구입해 기증했고, 프랑스를 위시한 5개의 유럽 수도원에서 건축물을 옮겨 올 수 있도록 후원했다.

덕분에 버나드가 구매한 프랑스 생길랭 수도원의 벽과 기둥을 비롯해 12~15세기 유럽 수도원의 예배실과 구조물을 거닐며 스테인드글라스, 고딕과 비잔틴 예술품, 종교용품과 제단, 제단화, 태피스트리 등을 남다른 분위기 속에서 관람할 수 있다.

클로이스터스의 풍광에 숨은 뜻

 클로이스터스에서 바라본 허드슨 강과 뉴저지. 록펠러 주니어는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 박물관에서의 풍광을 헤치지 않도록, 강건너 뉴저지 일대의 수백 에이커를 따로 구입했다.
클로이스터스에서 바라본 허드슨 강과 뉴저지. 록펠러 주니어는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 박물관에서의 풍광을 헤치지 않도록, 강건너 뉴저지 일대의 수백 에이커를 따로 구입했다. ⓒ 장소영

그러나 클로이스터스의 백미는 클로이스터스에서 바라보는 풍광이다. 유유하게 흐르는 허드슨강과 지평선처럼 펼쳐진 거대한 숲이 어우러져 사계절 언제 찾아가 보아도 장관이다. 수년 전, 나를 데리고 처음 클로이스터스에 와준 지인이 그랬었다.

"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눈이 닿는 강 건너 대지까지 박물관에 포함시켜 구입을 했대요. 놀랍지 않나요?"

테라스에서 만난 한 도슨트에게 물어보았더니 사실이란다. 박물관에서 구입한 건 아니고 기증을 받았다며 내용을 상세히 일러 주었다. 거기서 또 록펠러 주니어의 이름이 나왔다. 그녀는 친절하게 관련 내용을 담은 안내지와 책들, 박물관 홈페이지도 알려주었다.

록펠러 주니어는 박물관 부지가 될 공원 언덕만 매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허드슨강 너머의 뉴저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단순히 예술품을 구경하다가는 게 아니라, 도심에서부터 벗어나 자연과 예술에 매몰되어 쉼을 얻길 바랐다고 한다. 때문에 클로이스터스에서 바라 보이는 풍광에 현대식 건축물이 눈에 걸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부지 매입에 착수했다. 누군가 땅을 사서 숲을 뚫고 올라오는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박물관의 조망권을 확보한 셈이다. 수백 에이커에 달하는 뉴저지 펠리사이드 파크가 지금까지도 평범한 숲 그대로 보존되고, 고즈넉한 허드슨 강변의 풍경이 클로이스터스의 품격을 더해주는 건 모두 록펠러 주니어의 높은 안목 덕분이다.

최근 사적지 종묘 인근에 최고 142m 고층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생겼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씁쓸하게 읽었다. 강 건너 풍광까지 박물관의 일부로 보았던 100년 전 한 사업가의 식견을 언제 쯤 따라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조망권#크로이스터스#록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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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u1i1) 내방

의미있는 한 줄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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