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대의 차가 공정을 시작해 최종 출고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릴 만큼, GR 팩토리는 효율보다는 한 대 한 대의 완벽에 주력한다 ⓒ 토요타
지난 10월 31일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하늘은 잔뜩 구름으로 가득했다. 흐릿한 날씨 속에 오후에는 비 예보도 있었다. 기자를 태운 버스가 향한 곳은 도요타 자동차의 심장부로 불리는 모토마치 공장. 공장 입구 주변에 도착했을 때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의 핵심 공장으로 불릴 정도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단출한 출입구에 공장 건물 외벽도 수십여 년의 시간을 견뎌온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곳은 1959년에 지어졌고,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문을 연 승용차 공장이다. 70여 년에 가까운 이 공장은 최근 들어 도요타 기술의 상징으로 떠 오르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이 곳을 방문했다. 공장 한켠에 '지알(GR) 팩토리'라는 소규모 생산 라인이 가동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알(GR)'은 '가주레이싱(GAZOO Racing)'에서 따온 말로, 도요타의 스포츠 자동차를 일컫는 말이다. 아키오 회장은 직원들을 향해 "가주(GAZOO)라는 이름은 토요타의 변혁을 의미한다"면서 "자동차의 개발뿐 아니라 차량 제조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토요타에서도 '개척자'라는 생각으로 일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가 말한 '변혁과 변화'는 GR팩토리에 그대로 적용됐다. 400명 남짓의 직원에 하루에 약 100대, 월 2000대 차량만 만든다. 차종도 GR 야리스, GR 코롤라, LBX 모리조 에디션 등 단 3개 차종만 생산한다. 도요타 최초의 스포츠카 전용 생산라인으로 대량 생산보다는 '정밀하고 세밀한 제조'에 초점을 맞춘다. 자동차 경주 전문드라이버이기도 한 아키오 회장은 "판매량과 수익만 좇던 토요타에 다시 스포츠카의 혼을 되살리겠다"고 했다(관련 기사:
해발 300미터 비밀기지, 도요타 집념 "차를 부술수록 더 완성된다").
"판매량과 수익만 좇던 토요타에..." 사람과 자동화가 어우러진 그들만의 생산 방식

▲기계가 추려낸 부품들로 조립이 이뤄지지만, 품질을 판단하는 마지막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작업자가 망치로 차체를 두드리는 타종 검사를 통해 용접 상태를 확인한다. 맑고 경쾌한 금속음이 나야 합격이고 탁한 소리가 들리면 불합격이다. ⓒ 토요타
공장에 들어섰다. 기자가 그동안 봐 왔던 세계 굴지의 자동차 생산공장과는 사뭇 달랐다. 로봇과 자동화, 무인화가 대세인 시대에 이곳엔 사람들이 보였다. 웅장한 기계 소음 대신 일정한 리듬의 금속 두드리는 소리가 공장 곳곳에서 들려왔다. 공장 천장에 매달린 채 움직이는 차체도,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바닥에서는 마치 로봇청소기와 비슷한 무인 운반차량(AGV)이 완성차 차체를 싣고 천천히 움직였다.
일반적인 공장에서 조립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AGV는 필요하면 최대 9분간 정지한 상태에서 작업자들이 일을 한다. 이 때문에 진동 없이 부품을 조립해 정밀도를 높일 수 있고, 스포츠카처럼 소량, 다품종 생산의 유연성도 확보했다. 차량 차체 용접 공정에서는 4개의 로봇 팔이 불꽃을 튀기며 차체를 붙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사람의 손끝 기술이 주도하는 '작은 공방' 같은 분위기였다 .
GR 팩토리는 이처럼 시간과 비용 면에서 어느 정도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초정밀 품질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차체 강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용 접착제를 일반 양산차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뿌린다. 4미터(m) 남짓한 GR 야리스 차체에는 약 35미터(m) 길이의 접착제가 사용되는데, 이는 일반 야리스 대비 10미터(m) 이상 길다.
차체 곳곳의 스폿 용접도 대폭 늘었다. 소형 해치백 야리스의 일반 모델 용접 포인트는 약 3700곳이지만, 고성능 GR 야리스는 약 4500곳으로 20%가량 증가했다. 이렇게 접착과 용접을 보강한 차체는 자동차 경주에 그대로 나갈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진다.
0.1mm의 편차까지 고쳐가며 조립하지만, 최종 판단은 '사람이 망치로'

▲일반적인 공장에서 조립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AGV는 필요하면 최대 9분간 정지한 상태에서 작업자들이 일을 한다. ⓒ 토요타

▲조립 공정의 순서는 파격적이다. 대부분 자동차 공장은 중간 공정에 엔진과 서스펜션 등 파워트레인을 탑재하지만, GR 팩토리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차체와 동력계를 결합한다. ⓒ 토요타
정밀 조립을 위한 데이터 활용도 인상적이다. AGV가 각 작업 공정으로 이동하는 동안 로봇 센서는 차체 하부 볼트의 구멍 위치를 0.1밀리미터(㎜) 단위까지 측정해 편차를 분석한다. 그 오차까지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부품을 1만 가지 조합 중 자동 선정해서 조립한다.
이렇게 기계가 추려낸 부품들로 조립이 이뤄지지만, 품질을 판단하는 마지막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작업자가 망치로 차체를 두드리는 타종 검사를 통해 용접 상태를 확인하는데, 맑고 경쾌한 금속음이 나야 합격이고 탁한 소리가 들리면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기계의 정밀함과 인간 장인의 감각이 조화를 이뤄 품질을 담보하는 것이다.
조립 공정의 순서는 파격적이다. 대부분 자동차 공장은 중간 공정에 엔진과 서스펜션 등 파워트레인을 탑재하지만, GR 팩토리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차체와 동력계를 결합한다 . 다른 부품 장착 과정에서 중요 부위가 간섭받지 않도록 하려는 설계다.
특히 서스펜션 등 하부구조의 경우, 일반 라인처럼 공중에 떠있는 차체에 부품을 끌어올려 조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닥에 서스펜션과 구동계를 미리 정렬해 두고 위에서 차체를 내려 결합하는 방식을 쓴다. 이는 모터스포츠 경주차 조립에 착안한 방법으로, 차체 자체 무게가 실린 실제 주행 상태 그대로 부품을 연결함으로써 조립 오차를 최소화한다 .
'빠르게 많이'가 아니라 '정확하게 한 대'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실험

▲공장 천장에 매달린 체 움직이는 차체도,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도 없다. 그 대신 바닥에서는 마치 로봇청소기와 비슷한 무인 운반차량(AGV)이 완성차 차체를 싣고 천천히 움직였다. ⓒ 토요타
마지막 검수 과정도 양산차 공정에선 보기 힘든 세심함이 돋보였다. 완성된 차량에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75킬로그램(㎏)씩, 트렁크에 25킬로그램(㎏)의 추가 중량을 실어 성인 2명과 연료 탱크의 무게를 가정한다. 이 상태로 차량 전반에 걸친 안전성을 다시 점검한다.
이렇게 모든 부품과 치수를 오차 없이 통과한 차량은 주행 테스트가 기다린다. 일반 양산차가 몇 대 중 한 대꼴로 품질 검사를 위해 도로 주행을 할 뿐이지만, GR 팩토리에서는 출고되는 모든 차량을 직접 주행 테스트한다. 전문 평가 드라이버와 검사원이 투입되어 차선을 급변경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고속도로 주행을 가정한 최고 시속 120~140킬로미터까지 가속과 제동을 해보는 등 혹독한 시험을 거친다.
한 대의 차가 공정을 시작해 최종 출고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릴 만큼, GR 팩토리는 효율보다는 한 대 한 대의 완벽에 주력한다. 사실 이 같은 정밀 생산 방식은 초기에 수익성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하루 100대 생산으로는 수익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스즈키 세이지 GR 팩토리 매니저는 "초창기에는 숙련자 위주로 운영되어 수익을 내기 어려웠지만, 표준화 등으로 생산 효율을 높여 현재는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공정까지 돌아본 뒤, 공장 밖으로 나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 창 밖으로 내리는 빗속의 공장을 보면서 기자의 뇌리에 박힌 장면들이 다시 떠 올랐다. 바닥을 따라 조용히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차체, 컨베이어벨트 없이 사람과 AGV가 만들어내는 정밀한 조립 과정 등이다. 이어 그렇게 만들어진 차량이 급격한 경사와 오르내리막을 여유 있게 질주하는 모습까지…
70여 년 전 아시아 최초의 승용차 공장이던 이곳, 작은 한 켠에선 새로운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빠르게 많이'가 아니라 '정확하게 한 대'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실험이다. 이는 단순히 빠른 차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장인 정신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노력이다.

▲한 대의 차가 공정을 시작해 최종 출고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릴 만큼, GR 팩토리는 효율보다는 한 대 한 대의 완벽에 주력한다. ⓒ 토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