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출발은 한국계 미국인 캐시디 조가 자신의 틱톡 계정에 직접 찍어 올린 동영상 하나다. LA의 유명 식당을 찾은 조는 "식당이 아시아인과 유색 인종 고객을 한 쪽 구석에만 앉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식당 중앙부가 아닌 소외되고 번잡한 발코니 자리로 안내 받은 그녀는 '제가 있는 쪽엔 전부 아시아계가, 안쪽엔 백인들이 앉아 있다'며, '새로 난 옆 테이블로 안내 되는 손님을 보면 제 가설을 확인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엔 여지없이 아시아계로 보이는 손님들이 안내 된다. 7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의의 이 동영상은 대단한 화제가 됐다. 일파만파 퍼져나간 영상은 200만 조회수를 넘어섰고,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까지 이뤄졌다.
급기야 영상을 본 해당 식당의 전 직원들이 나서서 양심 선언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현지 뉴스 인터뷰에 응한 직원들은 "매니저가 아시아계 손님은 야외 자리에 앉히라고 말했다"는 등의 증언을 쏟아내 공분을 자아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시안을 비롯한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있단 사실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위 사례와 같이 식당 중앙부나 창가 자리와 같은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앉는다거나, 백인 고객에 비하여 주문이나 계산 처리에서 불편을 겪는 사례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사람, 장소, 환대책 표지 ⓒ 문학과지성사
모든 사람을 환대할 책무
이들과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지 않는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이 식당 테이블 배치에서 받는 차별 아래 깔린 근본적 원인과 맥락을 정밀하게 잡아내긴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떠오르는 건 60여 년 전 흑인들의 '앉아있기 시위(Sit-in Movement)'다. 1960년 2월 1일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학교 흑인 학생 4명이 그린즈버러 울워스 백화점 백인전용 벤치에 나보란 듯 앉았던 사건으로, 또 한 번의 전국적 흑인 인권 저항 운동을 촉발시켰다.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란 운전기사의 부당한 요구를 무시한 로사 파크스의 사례로부터 비롯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있었던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앉아있기 시위는 적극적으로 흑인들이 축소된 사회적 자리를 쟁취하려는 적극적 저항이었다. 흑인 자리까지 내주라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에서 벗어나, 백인 자리로 지정된 좌석 또한 흑인에게 앉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변혁의 시도였다. 앉아있기 시위를 사상적 견지에서 흑인 인권운동사의 주요한 지점으로 이해하는 건 이 때문이다.
김현경의 저술 <사람, 장소, 환대>(2015년 3월 출간)는 자리를 둘러싼 차별과 쟁취의 역사를, 또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의 의미를 알도록 한다. 인간과 사람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하는 책은 사람에게 장소가 갖는 가치를 확인케 하고, 마침내 사회가 모든 사람을 환대할 책무가 있음을 논증해 나아간다. 그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환대하지 않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LA 유명 식당에서 빚어진 일련의 차별이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그저 미국만의 일이 아니란 것도.
환대가 재분배를 포함한다는 점을 확인하기로 하자.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3p
김현경에 따르면 사람이란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획득되는 사회적 개념이다.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과 달리, 사람은 그를 사회적 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공간에서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 매매의 대상이자 명예가 없는 존재라 여겨졌던 노예, 또 죽고 죽이는 대상이자 사회적 사물로써 다뤄지는 군인 등과의 대비를 통하여 논증은 발전해 나아간다. 저자는 사람이 타인의 환대를 통해 사람으로 존중받게 되므로, 자연히 다른 성원을 환대할 의무 또한 갖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이 제가 터 잡은 장소에서 환대에의 의무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사람의 자격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중추를 이룬다.
사회 안에 인간이 들어오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바깥에서 옮겨오는 것이다. 전자가 언제 사람의 지위를 얻느냐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 왔다. 사람의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이로부터 일종의 승인을 받는 의례가 있던 사회도 언급된다. 그 승인이 없다면 막 태어난 아이를 죽인다 해도 사회 안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시공간이 있었다. 멀지 않은 일이다. 이와 같이 여러 사례를 통하여 저자는 우리 시대 막 태어난 아이가 사회의 성원으로 존중 받고 권리 능력의 주체로 인정받는 일이 결코 당연하거나 자연발생적이지 않음을 설득해나간다.
더욱 중요한 건 두 번째 방식을 통해 들어온 이들이다. 다른 사회에서 건너온 이들, 그 피부 색깔이나 문화적 배경이 달라 쉽게 기존 주류 구성원과 구별될 수 있는 이들이 사회 안에서 자리를 얻는다는 건 현대사회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서두에 적은 사례가 보여주듯 아시아계 미국인도 차별을 겪을 수 있다. 환대 받지 못할 수 있다. 동등한 자리를 얻지 못할 수 있다. 1960년대 흑인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이는 한 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환대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이며, 사회의 결속을 저해하고 스스로의 성원으로서의 권리마저 약화 시키는 일이다.
한국은 환대하고 있는가
이 같은 문제는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을 통해 들어온 이들의 상황을 돌아보자. 2020년 12월 캄보디아에서 온 31살 여성 누온 속헹이 자신이 일하던 깻잎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추위로 숨졌을 때를 기억한다. 2018년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당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경찰에 체포돼 무려 123회나 "거짓말하지 말라"는 압박 수사를 받았던 사실 또한 떠올린다. 베트남 등에서 온 아내를 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하는 한국 남편들의 끊이지 않는 사례는 또 어떠한가. 과연 한국 사회는 이들을 환대 하고 있는가.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가. 사회적 성원으로서의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가.
계산원이나 조립라인 작업원처럼 한곳에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여성들에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근무하게 하는 것(바버라 에런 라이크에 따르면,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고안된 이 기발한 방법이 미국의 여러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등등. 이런 사례를 '신분주의'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회사의 방침과 관련된 문제일 뿐, '지위 남용'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방침으로 말하자면, 노동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노동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간주된다. (중략) 제도가 사람을 모욕할 때 그것은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분주의든 아니든, 이런 관행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165p
책은 그저 동료 시민이 다른 성원을 환대하지 않는 상황을 나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가, 그를 유지하는 제도가 제 책무를 저버리는 상황으로 논지를 펼쳐나간다. 인간 본연의 약함 탓으로, 혹은 질서 그 자체를 위한다는 명분에 잡혀서 사회적 성원을 환대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경우를 논한다. 때로는 난민과 이주 노동자, 그리고 결혼 이민자가, 또 때로는 가난한 노동자나 걸인, 심지어는 범죄자가 제도로부터 핍박 받는 경우가 탁상 위에 오른다.
제도가 인간을 모욕할 때 그것이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통찰은 읽는 이를 절로 감탄케 한다. 로자 파크스 사건으로부터 앉아있기 시위까지가 무려 5년이 걸렸단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흑인 의자에서조차 비켜나야 했던 문제엔 즉각적 저항이 가능했으나 백인 전용 의자가 주는 모욕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명한 모욕임에도 그것이 모욕이란 사실조차 논하는 이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 장소, 환대>는 보기 드문 통찰로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제 요소를 점검한다. 한국 사회 안에 실재하는 잘못을, 심지어 법과 제도가 돌보지 않아 허물어져 가는 공동체의 건강을 살피게끔 한다. 철학과 사상이 부재한 세상에선 오로지 법과 제도만이 인간을 규율하는 법이다. 그 질서가 공정하지 못할 때 주변부의 사람들이 무너진다. 김현경이 적고 있듯, 환대란 재분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누군가의 붕괴는 곧 우리 모두의 약화가 된다. 사회는 그렇게 허물어져 간다.
미국 어느 레스토랑의 사례로부터 이주해 온 한국에서 매 맞는 아내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이 책 <사람, 장소, 환대>가 나를 이끌어준 덕택이다.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것을 나는 이 시대 시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철학과 사상이라 여긴다. 환대하고 환대받으며 내가 발 딛고 선 장소를 가꾸어나가는 것, 그것이 인간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일임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