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소멸이라는 무서운 화두가 해당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그 말을 실감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떠나고 쓸모를 잃은 채 남아 있는 공간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빈 건물은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쓸모를 찾는다면 얼마든지 재생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기도 하다.
지금도 지자체들은 지방소멸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주민의 편의 증진과 읍면 중심지 활성화를 목적으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또 다른 곳에 또 다른 건물을 짓고 있다. 사람은 줄지만 건물은 늘고 있는 게 현재 농촌의 역설적 모습이다.

▲용담마을진안아리랑 '용담마을'의 한 장면 ⓒ 킴스미디어무브
지난 10년 동안 전북 진안에서 마을의 경로당과 사용하지 않는 농협창고,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사라져가는 공간을 무대로 삼아 춤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공연예술 활동을 이어오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있다.
"제가 발굴했던 유휴공간들은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령면에 있는 점방(재래시장)은 그냥 액자처럼 이렇게 놔둬도 너무나 예쁜 공간이에요. 예전에 정말 사람들이 저 안에서 복작복작 그렇게 살았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그랬겠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일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 기억을 찾아가는 거죠. 저는 안무가니까 상상으로 그 안에 살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춤에다 담았습니다. 거기에 예전에 불렀던 노동요라든지 이야기들도 함께 풀어내고 싶었죠. 그것을 이미지화시켜서 저희가 그곳에서 예술가들과 춤도 추고 촬영도 했었습니다."
김선이 현대무용가, 킴스미디어무브 대표

▲2020공간 마령면 점방마령면 재래시장(점방) 아트체인지업 ⓒ 킴스미디어무브

▲2020공간 마령면점방마령면 재래시장 아트체인지업 ⓒ 킴스미디어무브
지난 11월 6일, 진안읍 사통팔달센터에서는 '10년의 기록, 다시 깨어나는 무대'라는 제목으로 현대무용가 김선이씨가 공연을 벌였다. 지난 10년간 진안의 숨은 공간에서 펼쳐왔던 공연예술과 그것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공연이었다. 김선이씨가 주목한 것은 진안의 소외된 공간들이었으며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진안읍의 농협창고도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었어요. 내부 천정의 서까래와 목조 구조물이 진짜 굉장히 멋있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그냥 한순간에 없어진 거잖아요. 그리고 마령의 그 점방도 낡았지만, 원형대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런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았어요. 왜 지저분한 것들을 자꾸 비추려고 하고 내세우려고 하느냐. 지자체에서는 그것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2020공간 아트체인지업진안읍 농협창고 ⓒ 킴스미디어무브

▲2020공간 아트체인지업진안읍 농협창고 ⓒ 킴스미디어무브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용담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철거된 마령면의 재래시장, 사용하지 않던 진안읍의 농협창고도 김선이 춤의 소재이자 무대가 되었다.
여러모로 자원이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지자체의 지원 없이(지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공공성을 띤 예술 활동을 하기엔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창작자로서 지역 주민이나 행정과 보조를 맞추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 참 너무 어려워서 뭐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관심이죠. 지자체의 관심이에요. 물론 제가 원해서 하는 거지만 그 활동이 저 혼자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단 공동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 진안의 이야기를 담은 그런 작업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지자체에서 조금 관심을 두고 함께 그런 의미를 살려냈으면 좀 더 힘이 났을 것 같아요. 그랬더라면 저도 더 많은 예술적 상상을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게 꼭 진안뿐만은 아닌 것 같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다른 농촌지역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선이의 춤 / 농가-살롱김선이의 춤 농가-살롱 공연 장면 ⓒ 이규홍
아쉽게도 김선이씨의 10년간의 노력은 이번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 같다. 지역을 주제와 소재로 삼아 창작과 공연을 이어가는 데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예술과 다양한 순수 창작예술이 지역 안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 예술인들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그 나비효과로 소멸의 위기에 놓인 농촌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