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강릉항 여객터미널. 한때 울릉도로 향하던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활기를 띠던 이곳은 지금 고요하다.
터미널 입구의 자동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매표창구 유리문에는 '2025년 운항 종료'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 한 장이 남긴 공백은 생각보다 깊다. 매표소 안에는 불 꺼진 조명과 덩그러니 놓인 의자만이 남아, 한때의 북적임을 잊은 듯했다.
강릉항은 단순히 여행객들의 출발지가 아니었다. 울릉 주민들에게는 수도권으로 향하는 가장 편리한 관문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이 끊기며, 항구는 늦가을의 쓸쓸함 속에 멈춰 서 있다.
14년 동안 271만 명이 오갔던 바다길

▲굳게 닫힌 강릉항 여객터미널 출입문유리문에는 ‘2025년 운항 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고, 한때 울릉도로 향하던 여행객들로 붐비던 터미널은 늦가을의 쓸쓸함만 남아 있다. ⓒ 진재중
강릉과 울릉도를 잇는 여객선은 2011년 첫 항로를 열었다. 14년 동안 약 271만 명이 이 항로를 이용했다.
강릉항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고, 관광 수요도 많아 울릉 항로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뱃길이 이제 사실상 멈춰 섰다.
여객선 운항시에 꽉 메우던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이른 아침, 터미널을 찾은 한 여행객은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강릉에서 출발하는 울릉도 여객선이 가장 편했는데, 운항이 중단된다니 아쉽네요"라며 발길을 돌렸다.
"조건 이행 안 했다"… 강릉시, 사용 연장 불허

▲강릉항 주차장울릉도 여객선 운항 당시 차량들로 붐비던 강릉항 주차장이 지금은 텅 비어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 진재중
문제의 핵심은 '터미널 신축과 이전'이다.
선사 측은 2011년 강릉–울릉 항로 개설 당시, 강릉항 내 여객터미널을 신축·이전하겠다는 조건으로 어항시설 사용 허가를 받았으나,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강릉시에 따르면 선사 측은 당시 터미널 이전 계획을 제출했지만, 이후 아무런 개발이나 공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2015년 해양수산부 감사에서는 해당 부지가 월파(越波) 위험이 높아 공공시설로 부적합하다는 지적까지 받았으나, 시정 조치 없이 지금까지 방치돼왔다.
강릉시는 지난 6월 24일 종료 예정이던 어항시설 사용 허가를 울릉군과 울릉군의회의 요청에 따라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연장했다.
그러나 연장된 4개월 동안에도 선사 측은 터미널 신축이나 이전 등 약속한 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11월 11일 청문회에서 어항시설 점용·사용 허가 불허 방침을 확정했으며, 연장 불허 처분과 함께 선사 측이 사용 중인 시설에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강릉항 여객터미널은 행정적으로 '폐쇄 절차'에 들어갔고, 강릉–울릉 항로는 사실상 운항 중단 단계에 접어들었다.
동해안 관광 타격 불가피

▲강릉항강릉항 선착장에 어선과 여객선이 함께 정박해 있다. ⓒ 진재중
강릉항 울릉도 노선이 끊기면서 강원 동해안에서는 동해시 묵호항만이 울릉도 항로로 남게 됐다. 이에 따라 북부 동해안과 수도권 여행객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고, 지역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여행업 종사자들은 "강릉항은 수도권 관광객에게 가장 가까운 울릉도 관문이었기 때문에 노선 중단은 지역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근 음식점 상인들도 "코로나 이후 경기가 어려운데 울릉도 항로까지 중단되면 영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강릉항 인근 횟집 내부가 손님 없이 텅 비어 있어, 한때 활기찼던 바닷가 상가의 쓸쓸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 진재중
울릉도 주민 다시 복원 원해
울릉도에서 수도권을 오가던 울릉군 주민들은 강릉~울릉 여객선 노선의 복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12일 홍성근 울릉군의회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강릉 노선은 울릉도 관광객의 약 20%가 이용하는 중요한 노선으로, 운항이 중단될 경우 울릉도 관광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강릉시와 선사 측이 원만한 합의를 통해 노선 운항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강릉항은 단순한 여행 항구가 아니라 수도권을 이용할 때 가장 편리한 관문이었다"며 "노선이 폐쇄되면 울릉 주민들에게는 단순한 관광 불편을 넘어 교통과 생활 전반에 큰 불편이 따른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울릉도“강릉과 울릉을 오가던 여객선과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던 섬, 그러나 여객선 운항 중단으로 관광 위기에 놓였다. ⓒ 울릉도의회
끊어진 바다길, 신뢰의 균열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항로 중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행정과 민간의 협약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울릉군의 요청과 지역사회의 호소, 강릉시의 여러 차례의 유예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바다 위를 달리던 배는 멈췄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신뢰의 균열'이었다.
한때 북적이던 강릉항 대합실 한켠에는 여객선사가 붙인 '강릉항 여객선터미널은 2025년 운항을 종료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 그 문구는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강릉항어선과 요트, 여객선이 정박해 있는 한적한 항구 전경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