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봉길 의사매헌기념관 현관에 모신 윤봉길 의사 동상 ⓒ 매헌기념관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거행된 천장절(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탄생일) 경축과 상하이사변 승전 기념식장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빳빳이 선 채 해군 군악대 주악에 맞춰 일본 국가 '키미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를 천재일우의 기회로 판단한 윤봉길 의사는 수통 형 폭탄의 안전핀을 뽑아 단상 한복판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 폭탄은 며 힘차게 날아가 단상 중앙에 떨어졌다.곧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소리와 함께 일본 국가의 남은 부분도 폭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숱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육군대장, 일본인 거류민단장 카와바다를 그 자리에서 절명케 했고, 일본 해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 육군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을 중상케 했다. 일제의 관헌들은 곧장 윤 의사의 팔 다리는 붙잡았을지언정, 그의 입은 막지 못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윤 의사의 부르짖음은 민족 항쟁의 태풍이요, 포효였다. 우리나라 독립 투쟁사에 길이 남을 '상하이사건' '홍구공원 의거' '4·29 분화(噴火)'로 일컬어지는 이 의거는 윤 의사의 살신성인으로 장엄하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당시 장개석(蔣介石)주석은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젊은이가 능히 했으니 장하다"고 격찬했다. 이 의거는 그 무렵 일제의 간악한 조·중 두 민족 간의 이간책으로 꾸며낸 만보산 사건(1931년 7월 중국 길림성 만보산 지역에서 관개수로를 둘러싼 조·중 농민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사건) 때문에 악화되었던 조선인에 대한 중국인의 감정을 일변시켜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 당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재정지원뿐 아니라, 중국 군관학교 뤄양[洛陽〕분교에 한인 특별 훈련반을 설치하여 독립군 장교를 양성토록 했다.

▲루쉰 공원상하이 시내 루 공원 정문 현판 ⓒ 박도
그날 나는 루쉰공원(전, 홍구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월홍교 돌바닥에 주저앉아 윤 의사 의거를 되새겼다. 나 같은 졸장부가 어찌 위인의 큰 뜻을 읽을 수 있으랴. 인공 호수 위에는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상하이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 박도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했다. 나는 오늘의 우리는 윤봉길 의사를 어떻게 모시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지난 9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매헌로 99 소재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강원도 촌로가 청량리 역 열차에서 내려 더듬더듬 지하철 매헌 역을 찾아간 뒤, 지상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졌다.
마침 행인 한 분이 같이 우산으로 쓰자고 하여 기념관까지 가자 직원이 건물 앞에서 우산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기에 큰 빗줄기는 피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 몰골이 비 맞은 생쥐 꼴이었다. 그 분 안내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명로승(明魯昇) 회장님과 수인사를 나누는데 필자가 당신보다 연장임을 알고 "연로하신 분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순국 애국지사의 유적지를 탐방하시는 모습이 무척 숭고해 보인다"는 덕담을 잊지 않으셨다.

▲매헌기념관장명로승(明魯昇) 매헌기념관장 ⓒ 박도
애국 교육의 장
전시관 관계자의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로 제1, 제2 전시관을 두루 돌아보았다. 기왕 오신 길에 윤 의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가라는 권유에 응하자 곧 윤 의사 곁에 나란히 선 즉석 사진을 뽑아주셨다.
다른 순국 애국지사들과는 달리 매헌 윤봉길 의사의 현충 시설은 비교적 잘 돼 있기에 열차로 귀가하는 내내 흐뭇하였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이곳을 많이 관람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드높였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경향 각지의 부모님들에게 두루 전한다. 이보다 더 좋은 애국 교육의 장이 어디 있으랴.
'순국(殉國) :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 국어사전의 풀이 말이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거룩한 말이 어디 있으랴.

▲윤봉길 의사 유족과 김구 주석광복 후 윤봉길 생가를 찾은 깁구 주석 ⓒ 매헌기념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25년 11월 월간 <순국> 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