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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 윤성효

한국전쟁이 터지자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군인·경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에 대한 미군정 포고령 위반죄 재심개시 결정이 법원에서 76년 만에 나와 관심을 끈다.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는 심아무개 회원이 신청한 할아버지의 미군정 포고령 위반죄 재심신청에 대해, 법원이 재심개시를 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전아람 판사는 지난 5일 심아무개(망)씨의 포고령 위반사건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 대상은 고인과 관련해 '마산치안관심판소 1949년 4월 22일자, 즉결심판 중 피고인에 대한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위반죄로 구류 20일을 선고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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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고인은 1949년 4월 22일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죄로 구류 20일의 즉결심판을 받고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같은 해 5월 형기 종료로 석방되었다. 재판부는 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인은 76년 전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구류 처분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풀려났고,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보도연맹 사건으로 다시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학살을 당했다.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가 1945년 9월 7일 발령한 포고령 제2호는 더글라서 맥아더 미국육군대장이 했던 것으로, "점령지역의 공중치안, 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한 포고"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미군정포고령 제2호는 위헌이기에, 이번에 고인에 대한 재심개시 결정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제420조)의 재심 사유에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란 재심 대상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었더라도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로서 새로 발견하였거나 비로소 제출할 수 있게 된 때를 의미하며, 형벌에 관한 법령이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되어 법원에서 위헌 무효라고 선언한 경우도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제9조)에서는 죄형법정주의에 대해 규정해 놓았고, 그 내용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재판부는 미군정포고령 제2호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1998년 7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관련해 "누구도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미군정포고령 제2호는 그 내용 자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어서,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국민이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렵고,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 역시 '사형 또는 타 형벌'로 되어 있을 뿐이어서 형벌의 종류조차도 알 수 없으므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어 위헌·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라며 "따라서 재심대상 심판에는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노치수 회장은 "국가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희생을 당했던 국민에 대해 76년 만에 재심재판을 받게 되었다. 뒤늦게 나마 고인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어 억울한 한이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 가운데 미군정포고령 위반자들이 많았으며, 앞으로 비슷한 재심신청과 개시 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고인에 대한 재심재판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군정포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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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cjnews) 내방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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