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한영 교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전하는 것을 즐긴다. 물론, 목이 쉬도록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 곽한영 교수
원더독스의 리베로 구혜인이 코트 끝까지 달려가 왼팔로 공을 받아내던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점수를 주고받을 때마다 선수들이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나도 그들과 같은 공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MBC <신인감독 김연경>은 지난 23일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야구만 보던 내가 배구와 사랑에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엔 리베로의 역할도, 유니폼 색이 왜 다른지도 몰랐지만, 모르는 것을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무엇보다 김연경 감독이라는 강력한 원동력, 선수·코치진의 서사, 그리고 다시 꿈을 향해 뛰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배구는 공이 땅에 닿아선 안 되는 일종의 '묘기' 같은 스포츠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개인의 기량보다 팀 전체의 호흡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버티기보다 소통과 협력으로 한 포인트씩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는 점을 배구가 가르쳐준다."
배구 해설서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저자 곽한영 부산대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구를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찾다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법교육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라는 그의 직함보다 '찐팬', '배구덕후'라는 말이 더 먼저 떠올랐다. 일반 팬의 시선으로 쓴 이 책은 입문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지점을 짚어주며, 전문용어보다 애정 어린 팬의 언어로 경기의 숨결을 전한다.
지난 13일과 26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곽한영 교수는 배구가 가진 깊은 매력과 함께 큰 호응 속에 종영한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이 남긴 의미와 아쉬움을 전했다.
언더독,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저자 곽한영 교수. 그냥 봐도 재밌고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종목으로 단연 배구를 꼽는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묘기 같은 플레이, 서로 다독이며 코트를 누비는 모습은 우리 인생과도 같다고 말했다. ⓒ 곽한영 교수
- 소위 '열린 결말'로 많은 관심 속에 <신인감독 김연경>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예전 JTBC <최강야구>처럼 배구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등장해 대중의 관심을 얻기를 바라왔다. <신인감독 김연경>의 성공은 배구 팬으로서 무척 반갑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프로그램은 규칙과 작전의 묘미를 넘어 배구의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게 하고, 선수들의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타미라 선수가 서브 에이스를 넣는 장면도 그냥 보면 '서브를 강하게 잘 넣는구나' 정도로 보이지만, 몽골에서 온 선수의 고군분투 서사를 안다면 서브가 꽂히는 순간의 감동과 쾌감이 배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신인감독 김연경>은 훌륭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이다."
- '필승 원더독스'는 프로팀 방출·은퇴 선수, 프로팀이 꿈인 실업팀 선수 등 '언더독'의 서사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가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여자배구 자체가 '언더독 서사'의 출발점이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여자부가 남자부보다 더 큰 인기를 얻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는 스포츠 세계에서 언더독 취급을 받아온 여성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원더독스'는 그 서사를 더욱 진하게 보여줬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한번 트랙을 벗어나면 재기하기 힘든 현실 속, 이들의 도전은 더욱 값지다. 이들이 모두 프로 선수가 되는 것만이 '재기'는 아니다. 원더독스와 함께한 시즌 자체가 이미 그들의 삶에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불꽃을 피워 올릴 기회는 있어야 한다. 지금 시청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환호하는 이 순간 자체가 '원더독스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른 종목에서는 보기 힘든 배구만의 문화다.
"정말 좋은 문화다. 배구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이어야 하는' 종목이라 순간 집중과 긴장도가 높다. 플레이 직후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모습은 이런 긴장을 유대감으로 풀어내며 하나의 팀으로 묶이는 과정이다.
특히 최근 7~8년 사이 한국 여자배구에서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았고, 그 형성에는 GS칼텍스의 팀컬러가 영향을 줬다. 지금은 대부분의 팀이 이러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어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놓쳐서는 안 되는 관전포인트
- 김연경 감독은 선수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교육자로서 바라본 '신인 감독 김연경'의 리더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김연경 선수는 강한 승부욕만큼 자신과 동료에게 엄격하다. 초반엔 그 성향이 선수들을 위축시키는 장면도 있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감정적 반응보다 필요한 점과 부족한 점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체계적 리더십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모호한 분노가 아니라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지도자로서의 성장 속도도 매우 빠르다고 느꼈다."
- 만약 '필승 원더독스' 구단주가 된다면, 가장 먼저 투자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최상의 조건에서 훈련할 수 있는 구단 훈련장을 만들고 싶다. 현대캐피탈의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처럼 멋진 클럽하우스를 갖춰 명문팀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연고지 경기장은 배구라는 테마와 팀의 환상을 중심으로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센터로 꾸밀 것 같다.
팀 운영 철학은 'No One Left Behind(아무도 소외되지 않는다)'다. 승리에 치우친 '몰빵 배구'가 아닌 모든 선수가 성장하며 팀으로서 감동을 만드는 구단을 꿈꾼다."
- 숨겨진 관전 포인트를 꼽는다면.
"배구를 볼 때 '공이 없는 곳의 움직임을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공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다른 선수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보면 팀이 어떻게 플레이를 준비하는지 보인다.
예를 들어 빈 공간으로 공격이 들어가는 순간, 그에 맞춰 뛰어드는 선수들, 약속된 토스·공격 위치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보면 준비된 팀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 공만 따라가면 이런 포인트를 놓치게 된다."
범실과 성공의 결정적 차이

▲길이 18미터, 너비 9미터의 직사각형 배구 코트 안에서 펼쳐지는 눈물과 웃음, 기쁨과 좌절, 실패와 성공의 순간들을 담은 곽한영 교수의 책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 ⓒ 곽한영 교수, 사이드웨이
- 해설을 들어보면 '범실'이 자주 들린다. '찐팬'의 입장에서 선수들의 범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듯하다. 그런 점에서 배구의 실수와 회복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배구는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연결하는 것이 '묘기'라고 할 만큼 어려운 스포츠다. 이 묘기는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팀 전체의 호흡으로 가능하다. 배구는 공이 머무를 수 없는 스포츠라 아주 짧은 순간 내 손에 머물다 다른 선수에게 전달된다. 만약 그 순간이 길어지면 '캐치볼 반칙'이 된다.
결국 내가 잘 받아도 팀원이 제 위치에 없으면 범실이 되고, 반대로 힘들게 올린 공도 팀원이 잘 처리하면 성공이 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다. 배구처럼 소통과 협업으로 한 포인트씩 쌓아 올려야 한다."
- 아직 배구의 묘미를 모르는 분에게 '당신이 배구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설득해야 한다면.
"바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일상에서는 반복된 루틴 때문에 내 존재감이 흐려질 때가 많다. 배구를 보면 공이 떠 있는 짧은 순간에도 선수들이 집중하며 쉼 없이 움직인다. 하이파이브하고, 환호하고, 서로 감싸주고, 웃고 우는 모든 순간을 보다 보면 '살아 있음'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절로 느껴진다."
- 한국 여자배구의 지속적 성장과 팬덤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여자배구는 터키나 이탈리아 리그처럼 아시아 유망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우수 선수들이 모여야 메이저리그가 완성되는 것처럼, 국내 선수풀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리그 구조를 통해 더 수준 높은 리그로 성장할 수 있다. 최근 도입된 아시아 쿼터도 성공을 거두었다.
또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된 팀 배치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김연경 선수가 꿈꾸는 제8구단이 부산에 창단된다면 엄청난 팬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땐 나도 '연간회원권'을 끊어 응원할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으로 온 남자배구 OK저축은행 팀의 결단에 감사하다. 기업의 관심 역시 필요하다."
곽한영 교수는 "배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재미있으며, 재미있는 만큼 애정을 갖게 되는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으면 활력 넘치는 분위기에 반하게 된다며,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인터넷으로 언제든 시청 가능하니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번엔 당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