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심각한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마이뉴스>에
'동해안 바닷속 수백억 구조물의 정체'(https://omn.kr/2fz76)기사가 보도된 후, 강릉 남항진 해안가에 사는 한 주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산책하던 바다였는데, 그 아래에 그렇게 망가진 구조물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주민의 진심 어린 말이 전해졌다. 그 말을 듣고 13일, 다시 남항진으로 향했다.

▲강릉 남항진 해변잠제(수중방파제)가 설치된 지역을 촬영하기 위해 나가는 수중조사팀 ⓒ 진재중
보이지 않는 바닷속, 방치된 구조물… 주민들은 또다시 불안하다
해변에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2000년대 초반 마을이 심각한 침식 위기에 놓였던 일을 떠올리며 다시 찾아온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주민은 잠제(파도의 힘을 줄이기 위해 해안에 설치하는 수중 구조물)가 묻혀 있는 바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닷속 일은 우리가 알 수가 없잖아요. 공사를 한 업체든, 강릉시든, 정부든 점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게 육지 공사였다면 이렇게 방치했겠어요?"
해변을 걷던 권석봉(80)씨 부부는 드론으로 촬영된 바닷속 영상을 바라보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왜 이제서야 취재를 하느냐"며 아쉬움을 내비친 그는, 과거 해안침식으로 마을이 침수 위기에 처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했어요. 이후 여러 대책으로 모래가 복원되고 해안이 안정되는 듯했는데, 지금 바닷속 구조물이 이렇게 망가져 있다니 또 걱정입니다."

▲잠제가 설치된 바다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남항진 해변의 한 부부. 침식이 반복되는 해변을 보며 이들은 “언제 다시 무너질지 걱정된다”며 깊은 불안을 토로했다. ⓒ 진재중
파도 아래 묻힌 구조물, 그리고 드러난 문제
남항진 바다는 겉보기에는 평온했다. 해안가에서 바라보면 비췻빛으로 반짝이는 잔잔한 파도가 이어졌지만, 그 아래 숨겨진 현실은 달랐다. 해변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바닷속에는 모래에 반쯤 묻힌 잠제의 잔해가 드러나 있었다.
"이건 위험하죠. 여름에 아이들이 물놀이 하러 들어오면, 저 부서진 콘크리트에 다칠 수도 있어요."
현장에 함께한 남항진 주민 김아무개씨(67)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바닷속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중 촬영을 진행했다. 드론으로 본 해안과 달리, 물속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훼손이 드러났다.
기울어진 구조물과 모래에 파묻힌 잔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잠제(수중방파제)는 갈라지거나 부서져 해저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바닥을 살피면 돌인지 인공 구조물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모래 위로 일부만 드러난 시멘트 덩어리는 위태롭게 서 있었으며, 언제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강릉 남항진모래 속에 파묻힌 잠제와 이리저리 흩어진 바닷속 구조물. 설치 목적과 달리 해저에는 구조물 잔해만 남아 있다. ⓒ 진재중
서식처에서 폐기물로, 잠제의 민낯
한때 조개와 해조류, 전복이 자리 잡았던 구조물 위에는 생명의 흔적 대신 하얗게 말라붙은 조개껍질만 남아 있었다.
그 표면은 마치 생명이 떠난 폐허처럼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작은 물고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수중 카메라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상황은 한층 심각해졌다. 균열이 간 콘크리트 사이로 미세한 부유물이 흩날렸고, 일부 구조물은 완전히 붕괴되어 해저에 흩어져 있었다.

▲강릉 남항진반쯤 모래에 묻힌 잠제 구조물 위에는 조개껍질만 하얗게 붙어 있어, 바닷속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을 보여준다. ⓒ 진재중
녹슬고 휘어진 어초, 생명을 위협하다
무너진 틈으로 모래가 빠져나가며 해저 지형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해양생물의 서식처로 설치된 철제 잠제 어초는 녹슬고 휘어져, 방치될 경우 날카로운 철조각이 사람과 생명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이곳은 더 이상 서식처가 아니라 인간이 남긴 폐기물이 쌓인 '바다의 무덤'에 가까웠다.
수중 영상을 확인한 주민들은 심각한 현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공사를 했다면 책임을 져야지요. 설치 후 문제가 생기면 보수를 하고, 한 번에 안 되면 반복해서라도 원래대로 해야 합니다. 바로 앞에 두고도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한 주민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런 실태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말끝에는 관계 기관에 대한 항의와 분노가 묻어 있었다. 주민들의 말처럼, 한때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 믿었던 수중방파제인 잠제는 이제 그 기능을 잃고,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전락해 있었다.

▲강릉 남항진 수중방파제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연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철구조물이 부서지고 뾰족한 흉기로 돌변해있다. ⓒ 진재중

▲철근 조각이 드러나있는 잠제 ⓒ 진재중
"설치 후 방치"… 관리 부재가 만든 또 다른 침식
해안침식 전문가 김아무개박사는 잠제(수중방파제) 설치 과정의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잠제는 해류의 흐름, 해저 지형, 계절별 파랑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해야 하며, 설치 이후에도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가 필수적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러한 사후 관리의 부재가 결국 남항진 바다가 겪는 해안침식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문제는 구조물 자체가 아니라 '관리의 부재'에 있었다. 제대로 된 점검과 보수가 이루어졌다면, 잠제는 여전히 바다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로 역할했을 것이다.

▲강릉 남항진제 자리를 잃고 이리저리 흩어져 바닷속 흉물로 전락한 잠제 ⓒ 진재중
다시 시작된 기록, 바다의 진실을 향해
남항진의 바다는 겉보기에는 평화롭다. 파도는 잔잔히 밀려오고, 해안은 고요함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흩어진 철 구조물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주민의 전화는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바다를 지켜달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파도는 오늘도 밀려오고, 바닷속에는 기능을 잃은 수중방파제인, 잠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러난다.

▲강릉 남항진 해변주민들의 쉼터이면서 놀이터인 이곳이 어제 또다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