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 이미지 ⓒ 픽사베이
최근 <기울어진 교실>(가랑비에 옷 젖듯 극우화되는 아이들)을 출간하며 요즘 10대들의 극우화를 우려했더니, 답글과 메일로 반박하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대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거나 침소봉대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기우'라면서, 자극적인 표현으로 글의 조회수를 올리려는 얄팍한 술수라는 질타도 받았다.
'극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족주의와 보수주의에 경도된 극단적 이념 성향을 나타내는 정치적 용어를 일부 아이들의 정서와 치기 어린 행동에 대입하는 건 맞지 않다는 의미였다. '극우'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고 토론하자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반론이지만, 단어의 개념에 대해 왈가왈부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라 부르든 중요한 건 '개념'이 아니라 '현상'이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에 길들어진 요즘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했다간 그가 말하는 사전적 의미의 '극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박하는 주장들에 일일이 답하진 않지만, 모르는 척 넘기려니 적이 답답하고 찜찜하다. 학교에서 단 하루만 아이들과 생활해 보면 수긍하게 될 것이다. 굳이 학교까지 올 것도 없다. 길 가는 10대 남학생 아무나 붙잡고 대화 몇 마디만 나눠 보면 깨닫게 된다.
'도박'에 빠진 아이들, 공정함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다
당장 요즘 아이들의 가치관이 급속하게 획일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고의 획일화가 극우화의 첫 번째 징후라고 생각한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당연시하고, 정글 같은 사회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돈뿐이라고 확신한다. 대학이든 직업이든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돈이다.
누가 하나 예외가 없다 보니 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은 나날이 겉돌고 급기야 '학교 무용론'까지 제기된다. 물신주의를 배격하라고 가르치고, 시험에선 또 그렇게 답하지만, 현실은 아예 딴판이다. 마약의 범람과 함께 최근 학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박이다.
주위에 주식을 하지 않는 어른이 드물 듯이 인터넷 도박을 하지 않는 아이가 드물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에게 인터넷 도박은 이미 놀이이자 10대의 문화가 됐다. 어른들이 만나면 주식 이야기하듯 아이들도 모이면 서로 '승률' 정보를 나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취업한 뒤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는 기성세대의 '인생 루틴'이 이미 깨졌다는 건 아이들이 더 잘 안다. 더는 평범하지도 않을뿐더러 극소수 최상위권에게만 그 길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의사의 자녀가 의사가 되고, 교수의 자녀가 다시 교수의 자리를 꿰차는 현실을 너무나 자주 봐 온 탓에, 이른바 '부모 찬스'에 이젠 대들 힘조차 없다. 지금의 10대는 공정함에 대한 관점부터 다르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는 말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지금의 10대는 학교가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지금 교실은 하루에도 몇 개씩 에너지 음료를 마셔가며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소수와 수업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다수로 확연히 구분된다. 이든 저든 학교와 사회가 각자도생의 전쟁터라고 여긴다.
학교는 자신의 상대적 서열을 '공인'하는 곳일 뿐, 더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원에서 연마한 문제 풀이 비법을 테스트해 순위를 매기는 곳일 따름이다. 학원에서의 공부가 공부일 수도 없지만, 학교에서의 교육도 미래 아이들의 삶과 유리된 채 껍데기만 남은 형국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대입 실적에 매몰된 학교에서도 배움에 대한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여유가 없다. 결국 학교는 '학교를 빛낼' 소수만 이끌고 다수는 그들의 들러리가 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사실무근의 주장이 또다른 주장의 근거가 된다

▲중국 혐오 발언을 입에 달고 사는 한 아이가 주장의 근거라고 보여준 사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기성세대는 드물 테지만, 무지한 아이들에겐 쉽게 사실로 받아들여 진다. ⓒ 서부원
발달 단계에 맞는 경험과 지식을 배워서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게 아니라, 학제 상 연한이 되었으니 졸업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에 적힌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기초적인 인수분해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있다.
그들에게 수업은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시간이고, 시험 기간은 방학 못지않은 즐거운 시간이다. 엎드려 자는 걸 탓해 봐야 헛일이다. 깨워 봐야 5분 뒤면 다시 쓰러진다. 시험 문항의 단 몇 줄짜리 지문도 읽어내지 못하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차라리 조롱이다.
그렇듯 학교 교육에서 배제된 아이들에게 유튜브는 학교를 대신한 배움터이자 놀이터이며 가장 친한 친구다. 그들은 유튜브를 통해 무력감을 해소하고, 호기심을 채우며, 덩달아 생채기 난 자존감을 회복한다. 하루 중에 유튜브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10대 아이들의 유튜브 중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문제다. 형해화한 학교 교육과 맞물려 유튜브에 활개 치는 온갖 거짓 정보에 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어서다.
적어도 기성세대에겐 삶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필터'가 작동하기 마련이지만, 아이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 내용의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교차 검증을 요구할 순 없다. 한 아이는 "거짓과 진실이 유튜버의 '말발'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10대 아이들의 극우화는 '완전체'가 되어 가고 있다. 물신주의와 반복된 좌절로 인한 열패감, 공공연히 차별을 일삼는 무기력한 학교 교육 등이야말로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뒤틀린 가치관에 길들어진 토양이다.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의 범람은 교실 극우화에 날개를 달아준 '화룡점정'이었다.
"미국은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중국은 민주당 편이다."
"중국 공산당이 페미니즘을 확산시키고 있다."
"중국인들이 잠입하여 장기 매매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인 입국 비자 면제로 동남아 범죄 조직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졌다."
오늘도 아이들 사이에서 중국 혐오 발언들이 나돌고 있다.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내용들이지만, 사실인 양 떠들어댄다. 질문도 잦고 묻지도 않았는데 근거라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는 아이도 있다. 사실무근의 주장이 다른 주장의 근거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란 고작 이런 것들이다.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다"고 강조한 마오쩌둥의 어록. 그리고 캄보디아 국제 범죄 조직의 수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유튜브에는 온갖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무지한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믿고, 이를 바루어야 할 교사는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순 없지만, 거짓이 진실을 이기기란 쉽다. '사필귀정'을 말하긴 쉬워도, 그것에 이르는 길은 고단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