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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소삼도의 일출 ⓒ 이완우
지난 6~7일, 임실 학력인정 인화초중고등학교의 중학교 3학년 학생(평균 나이 72세)들의 테마형 현장체험학습이 1박2일 여정으로 진행되었다.
첫날은 해남 대흥사, 진도 울돌목, 진도 운림산방을 견학하고 진도의 남쪽 바닷가 쏠비치 진도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둘째날은 신안 퍼플섬과 화석광물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었다(관련 기사:
60,70대 학생들이 첫 수학여행을 떠나기까지).
7일 여명의 새벽, 학생들이 바닷가로 나왔다. 일출과 일몰 때 바닷가에 바라본 수평선 풍경에는 보라색 색조가 평화로운 느낌으로 피어났다. 여명의 아침, 희망의 밝은 기운이 바닷물에 출렁이고 있었다.
소삼도로 연결되는 신비의 바닷길 500m가 열리고 있었다. 바닷길을 건너서 소삼도로 올라갔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소나무 언덕길을 지나 섬 정상에 올라섰다. 해돋이 풍경을 바라보며, 조선 시대 후기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東溟日記) 해돋이 묘사가 떠올랐다.

▲진도 소삼도 신비의 바닷길 일출 ⓒ 이완우
▲진도 소삼도 신비의 바닷길 일출
이완우
진도에서 신안 퍼플섬까지 관광버스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관광버스 이동 시간에 학생들은 자기의 칠십 평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발표하였다.
새벽에 걷고 버스 두 번 타며 학교 다니는 S(69)씨 이야기
S(69)씨는 전주 서학동에서 새벽에 30분을 걷고, 시외버스 타고 임실 관촌으로 온다. 학교 버스 타고 2시간 넘게 걸려서 학교에 도착한다. S(69)씨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린 시절에 일은 힘들고, 밥은 굶는 때가 많았다.
학교 교사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일찍 했다. 시댁에서 시부모 모시고, 남편 형제 8남매를 돌보아야 했다. 어려서 힘들게 살았는데, 결혼해서도 힘든 삶은 여전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남편이 승진도 하였다. 가족이 많으니 기쁜 일도 많았고 슬픈 일도 참 많았다.
시댁 식구들을 보살피느라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남편 공무원 봉급으로는 살림이 어림없었다. 식당도 뛰어보고 공장도 다니면서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생활 기반이 잡혔다.
남편이 정년퇴직하고 1년 후에 폐암 4기 판정받았다. 10년을 남편 간호 수발하였고, S(69)씨의 품에서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고 7년 된 때, 막내동생이 오수에 인화학교가 있다고 알려줬다. 이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 행복이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교과서를 구해서 공부한 H(77)씨 이야기
H(77)씨는 어머니가 13살에 시집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 아홉 낳고, 마지막에 딸을 낳았다. 아버지는 "나도 딸 낳았어"라며 동네에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갈 때가 되었는데,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다. 섬진강이 학교 사이에 있고 다리도 없어서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기도 하였다. 교과서를 구해서 혼자 공부하였다. 10살 때 학교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험을 보면 줄곧 1등이었다. 선생님이 "너 학교 다니다 말았냐?"라고 하였다.
H(77)씨는 1965년 무렵의 섬진강 옥정호의 운암댐 수몰민이었다. 추석 때 비가 많이 와서 논에 물이 다 들어찼다. 수몰민들에게 보상금이 얼마씩 나왔다. H(77)씨는 농사지으며, 돼지를 키우고 있다.

▲신안 천사대교 ⓒ 이완우
이름과 주소 쓸 줄 아니 동생 공부시키라고 학교 그만둔 J(74)씨 이야기
J(74)씨는 곡성 석곡면에서 인화중학교에 다닌다. 8살 되었을 때 아버지가 '학교에 가야 한다'라며, 집 마루에서 차려 자세와 인사를 가르쳤다. 행복한 추억이었다. 그런데 2학년을 마칠 때, 학교를 그만 다녔으면 하는 부모님의 눈치가 보였다. 육성회비 등 수업료와 책값이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어린 J(74)씨: 학교 안 다닐래요.
아버지: 왜 학교를 안 가냐?
어린 J(74)씨: 아버지, 저는 이제 이름도 집 주소도 쓸 줄 알아요. 이제 안 가도 돼요. 동생들을 학교 보내야죠.
어린 시절을 부모님 따라 논밭에서 일하며 생활했다. 18살 때, 친구 따라 서울로 갔다. 조그만 회사에 들어갔는데, 기숙사도 있었다. 그러나 객지의 회사 생활이 쉽지 않았다.
광주에서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기술자라는 남편을 만났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에 일을 열흘도 안 해서 월급이 시원치 못했다. 생활은 힘들었고, 큰딸이 태어났다. 새벽부터 식당에 나가서 일하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J(74)씨는 자기가 못 배운 한이 남아서, 자식들은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다. 이제 생활도 자리 잡았다. 그런데 가방 들고 중학교 가고 싶었던 소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꿈속에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임실의 인화학교 다니던 이순남 언니가 학교에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신안 천사대교 ⓒ 이완우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20년 동안 함께 모신 H(67)씨 이야기
H(67)씨는 이남 일녀의 외동딸로 컸다. 신랑 얼굴 세 번 보고, 선본 지 몇 달 만에 결혼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약 20년 동안 함께 모시고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연로하신 두 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H(67)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잘 못해 드린 것이 마음에 남네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H(67)씨는 배움의 한이 남아서 이곳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 입학하는 첫날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몰라요. 입학 첫날이 제일 추억에 남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소풍 가는 길이라며 웃음 가득한 K(67)씨 이야기
K(67)씨와 함께 졸업 여행을 온 K(66)씨는 사촌 자매이다. "동생이 학교에 가자고 했어요. 이 나이에 무슨 학교를 가냐? 그러고 있다가 2년 전, 이제야 왔어요."
K(67)씨는 학교에 다니니까 너무 재미도 있고 좋다며, 늘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하다. 농사일이 바빠서 학교에 못 가는 날은 '이 시간에 학교에서는 뭘 하겠다, 지금쯤은 어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겠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공부가 잘 안 되고, 많이 알지는 못해도 좋아요. 학교 가는 건 소풍 간 것처럼 설렙니다." K(67)씨의 '학교 가는 길이 소풍 가는 길'이라는 진심은 긴 울림을 주었다.
학생들은 아프고 힘들었던 칠십 평생의 이야기를 학우들에게 들려주었고, 서로 눈시울 붉히다가 이내 웃으며 떠들썩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인생 역정은 그대로 우리 사회 지난 시대의 생생한 역사였다.

▲신안 퍼플섬 박지도의 사진 명소 ⓒ 이완우

▲신안 퍼플섬 ⓒ 이완우
관광버스가 신안 압해도를 지나 천사대교를 건넜다. 암태도 쉼터에서 바라본 압해도 쪽 천사대교 풍경은 수평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퍼플섬으로 가는 도중의 팔금도와 안좌도의 보랏빛 들판과 마을이 따스한 정취를 띠었다.
퍼플섬에 도착하였다. 안좌도에서 반월도로 건너고 박지도를 거쳐서 다시 안좌도로 돌아오는 퍼플교(Purple Bridge) 1km를 걷기로 하였다. 마을마다 보라색 향연이었다. 열다섯 소녀로 돌아간 듯, 신안의 보랏빛 바다 앞에서 70대 학생들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신안 퍼플섬 반월도에서 하의도(사진 중앙 나란한 두 봉우리 섬) 조망.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섬. ⓒ 이완우
반월도에서 작은 셔틀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계속 펼쳐졌다. 셔틀 차량을 운전하는 마을 주민이 한 곳에 멈추었다.
바다 멀리 남서쪽으로 희미하게 두 봉우리가 다정하게 솟은 섬 하의도(荷衣島)를 찾아 주었다. 이 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생한 고향이다. 신안 퍼플섬과 하의도는 평화의 이미지가 공통 분모로 잘 어울려 보였다.

▲신안 세계화석광물박물관 시조새 화석 ⓒ 이완우

▲신안 세계화석광물박물관 화석 ⓒ 이완우
세계화석광물박물관에 도착하였다. 화석에 담긴 시조새가 날개 깃털까지 선명하여 날아오를 듯하였다. 시조새 화석이 다윈의 <종의 기원>(1859) 발표 직후에 발견(1861)되어 진화론을 뒷받침했다니 다시 살펴보게 된다. 암모나이트, 삼엽충, 식물 규화목과 고래 뼈 화석 등이 눈길을 끌었다.
자수정과 마노 등 광물이 이채로웠다. 이들 광물은 겉은 투박하지만, 속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이들 광물의 색은 불순물(철, 크롬, 망간 등의 원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불순물의 미학'이라 부른다.

▲신안 세계화석광물박물관 자수정 광물 ⓒ 이완우

▲신안 세계화석광물박물관 광물 ⓒ 이완우
칠십 평생 처음 졸업여행을 다니고 있는 학력인정학교 학생들이 이 보석 광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아픔과 고난을 잘 이겨내고, 그 녹록지 않았던 인생 역정을 승화시켜 아름다운 만학도의 열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열다섯 소녀 시절로 돌아가자. 70대 학생들의 첫 수학여행이 퍼플섬 보랏빛 색조와 화석광물박물관 보석 같은 광물의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찼다.

▲신안 세계화석광물박물관 마노 광물 ⓒ 이완우
어느덧 오후 세 시를 훌쩍 넘겼다. 신안에서 임실까지는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압해도의 김대중대교를 건너서 무안 들녘을 관광버스가 달렸다.
칠십 평생에 처음 졸업여행에서, 학생들은 자기들의 숨은 인생 이야기를 드러냈다. 이제 뒤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립고, 다시 돌아가 사랑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1박2일의 졸업여행으로 70대의 학생들은 열다섯 소녀처럼 밝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