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

▲감나무 가지치기남편이 감을 수확하고 난 뒤 가지만 남은 감나무를 가지치기 하고 있다. ⓒ 이정미
"이제 겨울인데 특별히 할 일 없지 않아?"
"이제부터 감나무 가지치기 해보려고."
"맞다. 가지 많이 쳐 줘야겠더라. 키가 크게 자라면 감 따기도 힘들고, 낮게 키우자. 새로 난 가지들은 과감하게 잘라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종알종알 말이 많아진다. 농사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남의 밭 과실수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 봐 봐, 이 감나무도 가지가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뻗어 나가게 가지치기 했네. 우리도 저렇게 하자."
사과나무 밭을 보면서도 "사과가 어떻게 저렇게 주렁주렁 달리지? 우리도 내년에는 우리 밭 사과나무 제대로 한 번 키워 보자" 한다. 그러면 남편은 요구가 많은 아내가 성가시기도 할텐데 "그래, 그래" 한다.
어머님이 걱정하실까 봐 느루뜰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끔 은퇴 후에 밭을 사서 농사를 지어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어보면 어머님은 늘 "아이구, 너거는 안 된다. 몸도 약하고 요령도 없고, 농사 아무나 하는 줄 아나..." 하시며 말리셨다. 그런데 이번 추석 때 시누이가 슬쩍 느루뜰 이야기를 꺼내버렸고 우리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조그마한 거예요."
어머님은 우리 말을 의심쩍어 하시며 꼬치꼬치 캐물으셨지만, 결국 "그래, 농사 조금씩 지으면 재미나지" 하셨다. 그런데 2주 전 주말, 86세 어머님은 버스를 타고 느루뜰이 있는 지역 읍내로 가고 있는 중이라며 전화가 왔다. 남편이 읍내로 나가 어머니를 모셔 왔다. 어머님은 서툰 작은 아들네가 걱정이셨던 모양이다. 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어머님은 주렁주렁 잘 익은 느루뜰의 대봉감을 보시고는 당장 수확해야 한다며 서두르셨다.
"되는 대로 이웃과 나누고 하면 됩니다..."
남편이 얼버무렸다.
"야야, 이 많은 걸 어떻게 나눈다 말이고, 나눠 먹는 것도 한도가 있지, 농협 공판장에 내다 팔아야겠다. 얼른 농협에 전화해 봐라."
사실 대봉감이 주황으로 익어갈 때마다 아파트 이웃, 성당 이웃, 가족들, 지인들과 나눈 터라 고민이 되기도 했다. 어머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첫 수확한 대봉감을 10㎏박스에 가지런히 담아 공판장에 내다 팔았다.
겨울 동안 우리가 할 일
감이 풍년이라 헐값에 팔려가는 대봉감이 아깝기도 했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어머님도 나도, 무농약에다 이렇게 굵은데 값을 적게 쳐준다며 아쉬워했다. 우리야 소득과 상관없이 농사를 짓지만 전업 농부라면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농산물 하나 하나에 깃든 농부의 땀과 노력이 제 값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관련기사 :
시골 쉼터에 보물이 주렁주렁... 날 추워지니 더 요긴합니다).
느루뜰에는 감나무 10그루, 대추나무 2그루, 사과나무 1그루, 복숭아 나무 1그루, 배나무 1그루, 구지뽕 1그루, 어린 무화과 나무 2그루가 있다. 야생 살구나무와 석류나무도 있다. 여러 종류의 과실수가 있는데 올해는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감 외에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겨울 동안 웃자란 가지를 잘라 주고 거름도 넣어 내년에는 올해보다 열매가 잘 열리도록 해 보고 싶은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지난 주에는 조카 결혼식이 있어 느루뜰에 오지 못했다. 감기 몸살 기운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상추와 양파 모종, 시금치의 안부가 궁금하고 화단 꽃들도 보고 싶어 결국 금요일 밤에 느루뜰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손에 든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휴대폰 조명을 켜고 어둑어둑한 밭두렁으로 발길이 먼저 간다.

▲겨울 채소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애호박, 가을 가지, 상추를 가득 수확하니 기쁘고 행복하다. ⓒ 이정미
"상추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네. 양파는 모종 심었을 때 그대로야. 하나도 안 자랐어. 화단에 꽃들도 잘 있구나! 기특해라. 추웠을텐데..."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밭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애호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갑자기 추워지면 얼어버릴 수 있으니 적당한 크기로 자란 애호박을 몽땅 땄다. '11월 애호박은 귀하니까 이웃들이 좋아하겠지' 생각한다. '늦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 가지는 맛도 영양도 풍부하다.
'이 보물도 이제 마지막인가' 아쉬워하며 남김없이 수확했다. 참 감사하게도 벌레들은 상추 잎은 갉아먹지 않는다. 상추 잎이 복실복실하게 잘 자랐다. 이번 주는 실컷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쁘다. 지난 주 내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조금은 우울했는데, 느루뜰에 와서 채소를 따고 몸을 움직이니 거짓말처럼 몸도 기분도 나아졌다. 땅이 주는 기쁨, 에너지에는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이웃과 나누는 겨울 시금치,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언니, 여기 애호박."
"어머나, 잘 먹을게."
"시금치도 솎아가세요. 부드러워서 살짝만 데쳐서 나물 해 먹었더니 맛있더라구요. 아니면 전 부쳐 먹어도 맛있고..."
"샐러드 해 먹으니까 맛있던데..."
농막 이웃집에는 오도이촌 생활 선배 언니가 있다. 벌써 8년이 되었다. 주말 이웃인 우리는 내 밭 네 밭 할 것 없이 서로 나누며 한 식구처럼 지낸다. 지금 느루뜰에는 겨울철 대표 채소인 시금치가 잘 자라고 있다. 남편은 이장님이 시금치 씨앗과 거름을 주셨다고 했다.
이장님이 시키는 대로 시금치 씨앗을 뿌렸다는데, 보는 사람마다 씨를 너무 촘촘하게 뿌렸다며 웃고 난리다. 덕분에 우리는 매주 어린 시금치를 솎아 나물도 해 먹고 전도 부쳐 먹는다. 아마도 내년 3월까지 시금치를 이웃과 나누느라 바쁠 것 같고, 질리도록 먹을 것 같다.

▲시금치솎기이웃 농막 언니가 느루뜰 시금치를 솎아 내고 있고, 밭 구석에는 늦깎이 무화과가 익어가고 있다. ⓒ 이정미
이전 밭 주인이 사용하던 겨울 난방용 펠렛난로(압축된 나무 조각을 연료로 사용하는 난로로, 시골 쉼터에서 겨울 나기 용으로 인기가 있다)가 설치된 컨테이너 농막을 창고로 사용하면서 내심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내 마음 속 겨울 낭만은 난롯불이 발갛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구마가 익어가는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멍하니 시간을 잊는 장면 안에 있었다.
"저녁은 난롯불에 고구마 구워 먹자. 냄비 올려 라면 끓여 먹어도 맛있겠다."
난롯불에 군고구와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으로 창고 청소도 하고 펠렛난로도 점검했다. 남편은 펠렛 연료를 넣고 불을 지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고구마를 씻어 불기가 없는 난로 판에 얼른 올렸다. 불이 발갛게 피어오르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별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연료에 불을 덧붙였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던가. 난로는 차갑게 식은 채 맹숭맹숭 반응이 없는 것이다.
궁리 끝에 펠렛난로는 굴뚝 끝에 공기를 공급하는 팬이 없으면 불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컨테이너 농막을 옮기는 과정에서 굴뚝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래 저래 초보 티가 팍팍 난다. 다음 주에는 팬을 달아 제대로 겨울 낭만을 즐겨볼 요량이다.

▲겨울 낭만을 채워줄 펠렛 난로. ⓒ 이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