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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9 15:39최종 업데이트 25.11.09 15:39

꽃바구니 두둥실, 태국 사람들이 근심 날리는 법

11월 러이 끄라통 축제... 동네 앞 개울가에 모인 사람들

지난 5일 태국의 밤하늘 아래, 강과 호수에는 수천 개의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태국력 12월 보름(보통 양력 11월경)에 열리는 러이 끄라통(Loy Krathong)은 태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전통이자 자연에 대한 감사의 상징이다.

러이(Loy)는 '떠내려가다' 혹은 '띄우다'를 뜻하고, '끄라통(Krathong)'은 꽃과 초, 향으로 장식한 작은 배나 바구니를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배를 띄운다'는 뜻의 이 축제는 물 위에 바나나 줄기로 만든 작은 배를 띄우며 한 해의 걱정과 근심을 흘려 보내고 새로운 소망을 비는 행사다.

수코타이에서 시작된 빛의 축제

러이 끄라통의 정확한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많은 전승에 의하면 약 700~800년 전 수코타이 왕국 시대 태국 북부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태국 외교부 주도로 설립된 '태국재단'에 의하면, "물의 여신 프라 매 콩카(Phra Mae Khongkha)에게 감사를 드리고, 인간이 물을 오염시킨 죄를 속죄하는 의미"로 열려왔다고 한다. 농업 중심 사회였던 태국에서 물은 곧 '생명'과 같고 , 강과 호수는 삶의 터전이자 신성한 존재였다.

형형색색의 꽃과 잎으로 정성껏 만든 끄라통. 바나나 줄기 위에 마리골드, 카네이션, 연꽃, 난초 등 다양한 꽃이 장식되어 있다. 러이 끄라통 축제를 앞두고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끄라통들이 마을 장터의 하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형형색색의 꽃과 잎으로 정성껏 만든 끄라통.바나나 줄기 위에 마리골드, 카네이션, 연꽃, 난초 등 다양한 꽃이 장식되어 있다. 러이 끄라통 축제를 앞두고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끄라통들이 마을 장터의 하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김형순

끄라통은 바나나 줄기를 원형으로 잘라 바닥을 만들고, 바나나 잎을 여러 장 접어 둘레에 두른다. 끄라통 위에는 꽃, 향, 초로 장식한다. 태국인 친구가 예쁘게 장식된 끄라통 위에 본인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올려 띄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나쁜 운을 흘려보내려는 상징적 행위이다.

또한 동전을 함께 넣어 자선과 나눔의 의미를 더하기도 하는데, 축제 다음날 어린이들이 강가에서 동전을 건져가며 즐거운 놀이가 되기도 한다. 끄라통에 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떠내려가면, 새로운 시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방콕에서는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 파타야에서는 마프라찬 호수나 바닷가에서, 치앙마이에서는 밤하늘에 수많은 풍등이 함께 떠올라 하늘과 강이 모두 빛으로 물든다.

변화하는 전통, 지속 가능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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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바나나 줄기와 잎으로 만든 끄라통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에는 스티로폼 등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친환경 끄라통이 등장했다. 요즘은 빵이나 채소로 만든 끄라통이 인기를 끌며, 물고기가 먹을 수 있는 생분해성 재료가 사용된다. 이는 자연과 공존하려는 현대 태국 사회의 새로운 의식을 보여준다.

러이 끄라통은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태국 정부가 전통 보존과 관광 자원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오늘날 축제는 단순한 제례를 넘어 미인대회(낭 놉파맛 콘테스트), 불꽃놀이, 전통무용 등으로 확장되며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왕의 어머니 서거로 공식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끄라통이 떠다녔다. 동네 앞 작은 개울가에는 소박하게 모인 이들이 한 해의 근심을 끄라통에 담아 조용히 흘려보냈다. 나는 직접 손바느질로 만든 태국 전통 치마 파툼(Pha Thung) 을 입고 끄라통을 띄웠다. 강물 위에 비친 초의 빛이 흔들릴 때, 마음속의 걱정도 함께 흘러가는 듯했다.

그 불빛 하나하나는 누구에게는 '감사'가, 누구에게는 '용서'가, 또 다른 이에게는 '희망'이 담겨 있다. 보름달 아래 강물 위로 끄라통을 띄우며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올해 무엇을 흘려 보내고, 어떤 마음을 새로 띄우고 싶은가?'

#태국여행#러이끄라통축제#풍등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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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순 (raona) 내방

태국에서 24년째 거주하며 국제학교에서 IB Korean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언어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며, 교육과 글쓰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을 소중히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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