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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8일 재심에서 약 40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정진태씨(오른쪽)와 최정규 변호사(왼쪽) [촬영 박수현]
지난 10월 28일 재심에서 약 40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정진태씨(오른쪽)와 최정규 변호사(왼쪽) [촬영 박수현] ⓒ 연합뉴스

1983년 봄, 서울의 한 대학 독서실. 대공수사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이 찾아낸 건 단 한 권의 책이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당시 21세였던 대학생 정진태씨는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영장도, 변호사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공산주의 서적을 읽은 자, 곧 사상의 적"이라는 그 시절의 법이 그의 청춘을 가뒀다.

그랬던 그에게, 2025년 10월 2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영장 없이 장기간 구금하고, 위법하게 압수한 자료에 근거한 수사는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법의 이름으로 뒤집혔다. 하지만 같은 사건으로 함께 연행된 이동섭, 고(故) 박광순 두 사람은 여전히 '기소유예'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다. 주범격 인물은 무죄인데, 주변 인물들은 '유죄에 준하는 기록' 속에 방치되어 있는 모순.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직 풀지 못한 법적 역설이다.

"기소는 유예됐지만, 죄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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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유예란 검찰이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지만 참작할 사정이 있을 때,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고 판단하는 제도다. 즉, 법원 재판으로 넘어가지 않지만, 그 결정은 "죄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는 피의자 입장에서 보면 '선처'가 아니라 '유보된 유죄'다.

수사기록에는 '범죄 혐의자'로 남고, 행정기록상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유예자'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따라서 기소유예는 시간이 흘러도 자동으로 삭제되지 않는다.

정진태 사건에서 검찰은 당시에 "주요 피의자(정씨)는 기소, 주변 인물들은 기소유예"라는 결정을 내렸다. 40년이 흘러 재심을 통해 정씨가 무죄로 밝혀졌지만, 같은 수사로 엮인 두 사람의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재심의 효력은 법원 판결에만 미치기 때문이다. 검찰의 결정은, 검찰만이 고칠 수 있다.

검찰의 '종결 통지서'가 말해주는 것

정씨는 2024년 초, 대검찰청과 서울남부지검에 자신의 사건 기록을 정보공개청구했다. 그 과정에서 돌아온 문서는 단 세 장짜리 통지서였다.

'정보 부존재', '기록 이송', '종결'...

대검은 사건을 남부지검으로, 남부지검은 다시 대검으로 이송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남부지검은 "2024년 1월 29일 이미 동일한 내용의 청구가 있었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재청구된 정보공개'라며 종결 처분을 내렸다.

40년 전의 부당한 수사기록은 여전히 봉인된 채였다. 이것이 바로 '과거사 사건 재심'의 또 다른 벽이다. 재심으로 무죄가 인정되어도, 그 수사에 함께 연루된 사람들의 기록은 검찰이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영원히 닫혀 있는 서류철 속에 묻힌다.

사라지지 않는 기록, 사라진 사람

기소유예자 중 한 명인 고(故) 박광순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여전히 검찰 기록에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로 남아 있다. 유족이 '명예회복'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 그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유족이 대신 재심을 청구할 수도, 검찰에 처분 취소를 강제할 수도 없다. 죽은 자는 항변할 수 없고, 국가는 침묵한다.

또 다른 인물 이동섭씨는 다행히 아직 생존해 있다. 그 역시 정진태 사건의 공동 피의자였고, 그의 기록에는 "이적표현물 소지, 기소유예"라고 적혀 있다. 그는 변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재판도 안 받았고, 무죄도 아니에요. 그냥 '죄는 있지만 봐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주범이 무죄가 됐다면, 그 죄는 누구의 죄입니까."

재심의 벽, 제도의 공백

재심은 '유죄 확정 판결'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기소유예자나 불기소처분을 받은 사람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 그들은 제도 밖의 존재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법원은 "기소유예는 판결이 아니므로 관할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답은 검찰로 돌아간다. 검찰이 과거 스스로 내린 기소유예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정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례는 거의 없다.

법조계에서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사건군에 포함된 기소유예자에 대해서는 검찰이 일괄 직권 취소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이 그렇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검찰, 명예회복은 없다"

정진태씨의 재심 판결은 단지 한 개인의 명예회복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검찰의 잘못된 수사와 국가폭력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과거의 기록을 '개인 사건'으로 분리한다. "당시 상황에 따라 판단했다"는 말 한마디로, 국가폭력의 구조적 책임은 사라지고 개별 사건으로 쪼개진다.

법무부는 2021년 이후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과거사위원회가 권고했던 '기소유예자 명예회복 절차'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공백 속에서, 과거사 피해자들은 여전히 "기소유예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다.

기소유예를 취소하려면 검찰이 스스로 "당시의 혐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즉, 스스로의 수사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법적 절차나 내부지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피해자들은 다시 민원을 내거나 진정을 넣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종결된 사건", "기록 부존재"라는 답변을 반복해서 받는다.

검찰이 자기결정에 대한 '사후 검증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결과, 기소유예는 법적 사각지대이자 "국가가 스스로를 심문하지 않는 제도"가 되었다.

제도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이제 법무부와 대검은 단순히 "개별 민원에 대응"할 단계가 아니다. 과거사 사건, 특히 국가보안법·간첩조작·사상검증형 사건에서 재심 무죄 이후 남은 기소유예자·불기소자 명단을 전수 조사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기구는 단순 조사에 그치지 않고, '직권 취소'와 '기록 말소' 권한을 가져야 한다. 또한 검찰청법에 "기소유예 취소 및 재검토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지금은 검사가 마음먹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은 검사의 재량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정진태씨의 무죄 선고 이후, 각종 과거사 피해자들은 "기소유예 철회 청원운동"을 준비 중이다.

피해자들은 검찰과 법무부에 다음과 같은 요구를 담았다.

1. 재심 무죄가 확정된 사건군의 기소유예자 전수조사
2. 검찰총장 명의의 직권취소 절차 마련
3.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 및 기록 말소 조항 신설
4.법무부 산하 '기소유예 명예회복 위원회' 설치

이들은 "이제 검찰이 스스로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 혐의가 허위였다면, 그 기록은 국가의 책임으로 지워야 합니다."

"무죄를 넘어, 무기소의 정의로"

정진태씨는 이제 자유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죄 판결을 받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조사받았던 친구들이 아직도 기록에 묶여 있으니까요."

그의 말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제도적 고발이다. 무죄 판결은 사법부의 몫이지만, 그 뒤의 명예회복은 행정부의 몫이다.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사과는 반쪽짜리다.

기소유예는 국가가 만든 제도의 그림자다. 그 속에는 "법이 인간을 완전히 구제하지 못하는 구조"가 담겨 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도, 그 옆에서 함께 고통받은 사람들은 여전히 죄의 기록 속에 있다.

이제는 피해자들이 다시 진정을 내고, 다시 싸우고, 다시 증명할 차례가 아니다.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기록을 열고, 잘못된 기소유예를 철회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무죄이며, 그것이 국가가 인간에게 져야 할 마지막 책임이다.

(참고문헌: 「1983 형제 10793호 사건 기록」,한겨레·경향신문·뉴시스·JTBC 재심 보도,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문 등)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재심#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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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뒷이야기 :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백브리핑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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