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 ⓒ 변상철
1974년 봄, 보안사는 '통일혁명당 재건을 모의했다'며 전국 각지에서 수십 명을 체포했다. 당시 이들은 '유신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이들을 조사했던 보안사는 조사 과정에서 폭력과 고문, 불법구금을 동반했다. 잠을 재우지 않고, 자백을 강요하며, 가족까지 협박했다. 이른바 '통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재판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 국가가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통혁당을 재건해 북한과 내통했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그 중 일부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고 김태열씨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판결문마다 '주동적 인물'로 등장했고, 검찰과 중앙정보부는 그를 '남한 내 혁명조직의 중심인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뒤, 법원은 그 모든 것이 조작이었다고 선언했다. 박기래, 박석주, 진두현, 이동현, 그리고 김태열. 이 다섯 사람은 모두 사형 또는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재심 끝에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에 의해 허위자백이 이끌어졌다"고 명시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결국 국가의 법정에서 뒤집혔다. 그러나 그 정의는 절반만 도달했다.
주범은 무죄, 공범은 여전히 유죄
김태열의 아내 정순례, 그리고 함께 기소된 장사랑, 이성호, 최익성은 여전히 '공범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
공소장에는 "김태열 등과 공모하여 통일혁명당을 재건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검찰이 제시한 '공모관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조서에는 이름만 바뀐 채 같은 문장들이 복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심이 개시된 것은 김태열을 포함해 박기래, 진두현 등 주동자에 한정됐다.
법률상 재심은 '청구주의'에 따라 피고인이나 그 가족이 직접 신청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기래, 진두현, 김태열 등은 모두 가족들의 끊임없는 진실규명 의지로 시민단체와 민변 등의 도움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김태열의 아내 정순례씨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 역시 통혁당재건위 사건의 재심 대상자이지만, 정작 남편의 재심무죄를 위해 자신의 순서를 뒤로 미뤘던 것이다.
마침내 남편 김태열의 무죄가 증명되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나서려 했지만, 여든을 훌쩍넘겨버린 그의 몸과 정신은 재심을 신청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벽이 존재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받기위해 서울까지 다녀간다는 것이 그녀의 나이와 체력으로는 이미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문 후유증과 고령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고, 법률 서류를 스스로 작성하기도 어렵다.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평생을 짓눌려 살았지만, 국가는 그녀에게조차 '당신이 직접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 말은 결국, "당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범으로 함께 기소됐던 장사랑, 이성호, 최익성 역시 생존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생사여부는 물론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사건이 무죄가 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청구주의'라는 벽 앞에 멈춘 정의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법원 독립과 절차 보장을 위한 조항이지만,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오히려 '두 번째 벽'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만든 조작사건인데, 그 피해를 바로잡기 위해선 피해자가 스스로 다시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구조다. 이 제도는 개인 범죄 사건에서는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체계적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허위자백을 만들어낸 사건에는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재심의 요건을 갖추기 위한 1차 과거 수사기록을 모두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라면 개인의 재심 신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50년이 지나 피해자들이 대부분 노인이 되거나 사망했다면, 그들의 침묵을 '의사 없음'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의의 포기다.
정의는 청구로 시작되지만, 구제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
검찰이 나섰던 다른 사건들, 그리고 통혁당의 침묵
검찰은 이미 다른 국가폭력 사건들에서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적이 있다. 제주 4·3사건에서는 1500명 이상의 수형인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일괄 무죄를 선고했다. 여순사건에서도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직권으로 재심을 제기했다.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도 검찰이 인권수호의 기능을 발휘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면, 피해자가 다시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다는 원칙을 앞선 사건들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그러나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서는 그 원칙이 멈췄다. 이미 김태열 등 주범이 무죄를 받았고, 법원은 고문과 조작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여전히 "피해자들이 각자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듯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국가의 잘못은 '시간'이라는 이름 아래 묻히고 있다.
이건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태도 문제다.
반성의 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2023년 프락치 강요 피해자 배상 판결 직후 "대한민국을 대표해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여순사건 메시지에서 "다시는 국가폭력이 없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019년 "검찰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을 걸러내지 못했다.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검찰은 여전히 과거사 재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고,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두 번째 상처를 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권'을 외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억울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 속에 묶여 있다. 말로는 반성하지만, 행동은 여전히 침묵이다.
결국 법무부와 검찰이 국가폭력사건이나 과거사 사건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수동적이고 고압적이다. 재심의 과정에서 과거사에 대한 검찰의 책임이나 성찰을 느껴보기 어렵다.
다시,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재심 문제가 아니다. 그건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이 국가폭력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다. 주범이 무죄를 받았는데 공범이 여전히 죄인으로 남는 현실은 법의 형식 뒤에 숨은 비겁함을 드러낸다.
이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피해자들이 고령이라 스스로 재심을 신청할 수 없다면, 그건 '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 부재다. 국가폭력의 피해는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침묵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또 다른 폭력이다.
국가가 만든 불의, 국가가 직접 풀어야 한다
이제 검찰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남은 공동피고인들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반성의 시작이고, 인권국가로 가는 최소한의 길이다.
국가가 만든 불의는 국가가 직접 풀어야 한다. 주범이 무죄인데 공범이 여전히 죄인으로 남는 나라, 그런 모순은 더 이상 정의의 나라가 아니다. 시간은 피해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제는 검찰이, 그리고 국가가 그 문을 다시 열 차례다.
다음 표는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직접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주요 사례들을 정리한 것이다. 각 사건별 시기, 관할, 법적 근거, 결과 및 의의 등을 비교하여, 향후 김태열 사건과 같은 과거사 재심 논의에 참고가 될 수 있다.

▲검찰 직권재심 주요 사례 정리 ⓒ 변상철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 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