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파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옥과천 풍경. 이파리를 다 떨군 도로변 나무가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 이돈삼
지난 3일 전남 곡성 옥과천을 따라간다. 도로(월파로) 변에 줄지어 선 벚나무가 이파리를 다 떨쳤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겼다. 오가는 차량 없는 도로가 한산하다. 누렇게 채색된 들판도 어느새 황량해졌다. 볏짚을 저장하고 발효하는 곤포사일리지(공룡알)만 눈에 들어온다. 벌써 겨울맞이에 들어간 모양새다. 겨울맞이는 곧 새봄 기약이니, 자연의 순환이고 섭리다.
곡성 합강(合江)으로 가는 길이다. 합강이란 지명은 여기저기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두 갈래 이상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형을 일컫는다. 곡성 합강도 매한가지다. 곡성 합강은 옥과천과 순창에서 흘러 내려온 섬진강 물이 만나는 곳이다.

▲합강마을 앞 들녘. 벼 수확을 끝낸 들녘이 휑해졌다. ⓒ 이돈삼

▲합강마을 풍경. 가을일을 끝낸 경운기와 어우러진 마을이 한적해 보인다. ⓒ 이돈삼
곡성 합강마을은 옥출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옥과천이 흐른다. 배산임수 지형 그대로다. 마을 앞에 있는 둥글고 작은 독메산 이름을 따서 '도리산(道裡山)'으로도 불린다. 옥과군 수대곡면, 창평군 수면을 거쳐 지금은 '골짝나라' 곡성군의 옥과면에 소속됐다.
예부터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인다고 했다. 음양이 어우러지면 생기가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 자리는 명당으로 통했다. 곡성 합강은 명당이기도 하지만, 의미도 남다르다. 군계(郡界)이면서 도계(道界)를 이루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의 경계다.
산 깊고 물 좋은 고장에서 태어난 인물

▲옥과천과 어우러지는 합강마을.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합강마을에서 만난 감말랭이. 가을 햇볕과 바람이 맛있는 주전부리를 만들고 있다. ⓒ 이돈삼
산 깊고 물 좋은 마을에 빼어난 인물이 없을 리 없다. 월파 유팽로(1554∼1592)다. 유팽로는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성균관에 머물던 유팽로는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로 의병을 일으켰다. 동래성이 일본군한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시야가 좁은 탓에 일상이 불편했지만, 의병으로 나서는 데에 1분 1초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가던 유팽로는 순창읍성 앞에서 장정들을 설득, 의병의 깃발을 함께 들었다. 4월 20일이었다.
옥출산 자락 창고에 숨겨둔 병기와 군량미도 꺼냈다.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한 유팽로가 마련해 둔 것이었다. 유팽로는 의병을 동악산 청계동에서 훈련시켰다. 이종사촌 형인 남원의 양대박도 이때 합류했다. '전라도의병 진동장군(鎭東將軍) 유팽로'라고 쓴 대청기를 든 군사는 임진왜란의 첫 의병이 됐다. 홍의장군 곽재우보다도 이틀 빨랐다고 한다.

▲마을 담장 벽화. 의병대장 유팽로를 주제로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이돈삼

▲합강마을 전경. 말무덤으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이다. ⓒ 이돈삼
유팽로는 전라도의 다른 의병장들과 힘을 합쳐 담양 추성관에서 호남연합의병을 출범시켰다. 의병 숫자가 60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합군이었다. 총대장에 고경명을 추대하고 유팽로는 좌부장, 양대박이 우부장을 맡았다. 이름하여 '담양회맹군'이다.
6월 11일 담양을 출발한 호남연합의병은 크고작은 싸움에서 이기며 북쪽으로 달렸다. 곡창지대를 염두에 두고 전주 침공을 준비하던 고바야카와군 본진을 금산성에서 맞닥뜨렸다. 1차 금산전투다. 이 싸움에서 유팽로는 고경명 등과 함께 순절했다.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유팽로는 고경명, 김천일 의병장과 함께 '호남 3창의'로 불린다. 금산전투에서 호남의병은 큰 희생을 치렀다.
의병장 유병로를 담은 마을 벽화
금산전투 이후 호남에서 의병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호남을 차지하려던 일본군의 계획도 무산됐다. 호남의병의 창의와 희생은 임진왜란의 흐름까지 바꿔 놓았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맘 놓고 싸울 수 있는 토대도 제공했다. 그 선봉에 유팽로가 있었다.

▲합강마을에 있는 도산사. 월파 유팽로의 위패를 모신 사우다. ⓒ 이돈삼

▲도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출입금지' 통제선. 시설물 안전점검 때문이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 이돈삼
합강마을에 유팽로를 모신 사우 도산사가 있다. 유팽로가 나고 자란 자리에 역사촌으로 만들어졌다. 충신 유팽로와 열부 원주 김씨에게 임금이 내려 준 정려도 여기서 만난다. 지금은 시설물 안전점검을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언제까지, 어떤 점검을 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곡성군의 조금 더 친절한 행정이 아쉬운 대목이다. 유팽로의 묘는 남원시 대강면 직동마을 앞산에 있다.

▲합강마을 풍경. 월파 유팽로를 주제로 한 마을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이돈삼
마을 담장에 유팽로를 주제로 한 벽화도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린 지 10여 년 됐지만, 의병대장 유팽로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금산에서 달려온 그의 애마, 옥출산 앞들에서의 군사 훈련, 절의를 지킨 부인, 금산전투와 유팽로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은 낡고 추레해졌지만,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입면 송전리에 '의마총(義馬塚)'도 있다. 말 모형과 함께 커다란 묘가 만들어져 있다. 유팽로를 태우고 온 말의 무덤이다. 말이 유팽로의 목을 물고 300리를 달려와 장사를 치르게 한 다음 죽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1986년 옥과 유림들이 말 무덤을 보수하고 비석도 세웠다.

▲의마총(義馬塚). 말 모형과 함께 만들어진 묘가 유팽로를 태우고 온 말의 무덤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