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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썸네일주짓수 대회 당일의 유튜브 썸네일 ⓒ 양민영
처음으로 주짓수 대회에 출전했던 동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보통은 주짓수를 시작하고 초보를 겨우 면할 때쯤에 경험 삼아 대회에 출전하는데 나에겐 대회가 금기였다. 처음 주짓수를 배운 도장에서 스포츠화된 주짓수를 지양했던 게 이유였다.
그런데도 굳이 혼자 경기를 하러 간 건 주짓수 칼럼을 일 년 넘게 쓰면서 소재가 고갈된 탓이었다. 몸을 움직여 글을 쓸 소재가 필요했고 경쟁에 뛰어들어 패하고 경기장에서 얻은 감상을 글로 옮겼다.
영상을 만들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소재에 접근했다. 영상은 글보다 훨씬 많은 행동을 요구한다. 글을 쓸 때처럼 관념으로 적당히 때울 수 없다. 그래서 주짓수 대회라는 행동에 도쿄 여행이라는 행동까지 더했다. 마침 운동과 여행이 결합한 콘텐츠들, 예를 들면 여행지에서 달리는 런 트립이나 해외 마라톤 대회 참가가 유행이었다. 주짓수 트립은 새롭기도 하고 내가 다룰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일단 행동하는 나에게 모든 걸 맡겨 보자. 주짓수 대회든, 여행이든 바쁘게 행동하면 사건이 생길 것이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위주로 영상을 만들면 될 일이다. 이기고 싶긴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도 없다. 3박 4일 동안 계획한 일을 하면서 적당히 즐기는 거다.
그런데 이 '적당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차라리 전적으로 매달리는 게 덜 힘들 정도로 어떤 일을 적당히 하는 건 쉽지 않다. 쉬운 예로 여유 자금으로 적당히 투자하기, 요요 현상이 오지 않게 적당히 감량하기는 얼마나 힘든가. 보통 사람의 시간, 노력, 자금은 한정돼 있고 날려버린 기회비용은 항상 실체보다 크게 보인다. 적당히 하고 싶은 일 앞에서도 어쩔 수 없이 여유를 잃고 진지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승부 앞에서는 누구나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적당히'라는 부메랑
지난 3월 주짓수 대회의 스태프를 자원해 선수들을 관찰했다. 그날 체육관에 깔린 6개의 매트에서 경기가 쉬지 않고 이어졌고 나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선수들을 호출해 데려갔다. 우연히 퍼플 벨트 이상의 상급자 그룹을 맡았는데 예상대로 다른 매트에 비해 크게 주목받았다. 유튜브 중계 카메라가 상급자 경기를 촬영했고 해설 위원들까지 와있었다(이런 분위기에서 진지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주짓수를 하는 대부분은 초급자인 화이트와 블루 벨트 단계에서 그만두기 때문에 상급자인 퍼플, 브라운, 블랙 벨트는 어느 도장에 가도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다. 소수의 상급자 가운데 꾸준하게 대회에 출전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그들은 프로가 되려거나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이거나 하다못해 대회 메달이라도 수집하려는 사람들이다.
매트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와 다른, 동떨어진 사람들…. 그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모두 이기는 데 자신 있고 이겨본 경험이 많아서 나름의 노하우도 있었다. 나처럼 적당히, 소재 따위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는 치열했고 몇몇은 다치기도 했다. 호기심에 구경이나 할 요량이었는데 상급자들의 경기가 왜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지, 이유를 똑똑히 알게 됐다.
국내에서 열리는 사설 대회도 이런데 국제 대회는 어떻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다니는 도장의 관장님이 만든 국제 대회에 관한 영상이 유튜브에 있었다. 한 편의 현장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에서 체중 감량을 위해 음식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는 식당에 가서도 혼자 밥을 먹지 않았고 그런 채로 경기 전날까지 가볍게 훈련하며 경쟁 상대들의 영상을 돌려봤다. 경기가 열리는 날 아침, 원하는 만큼 감량이 됐을 때 그제야 그는 호텔방에서 즉석밥을 먹었고 몇 시간 뒤에 있을 경기를 준비했다.
아무래도 나는 '적당히'라는 부메랑에 맞은 것 같았다. 누구도 나처럼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적당히'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시도하는 걸 재미있어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내 이야기를 도전으로 포장할 수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저 도전으로만 끝나는 서사에 별다른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구상할 때만 해도 아마추어로서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여행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차라리 경기장에 온 유명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찍어 올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3월에 관찰한 선수들이나 관장님을 흉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감각
나는 초보 유튜버들이 많이 행하는 실수, 즉 순전히 내가 좋을 대로 막연하게, 감에 의지해서 영상을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보면 주짓수 트립은 내 생활과도 너무 동떨어진 소재였다. 남보다 더 잘 알고 실제 생활에 밀착된 소재를 선정해야 콘텐츠를 오래 만들 수 있다. 이건 크리에이터가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행동에 심취해서 나로서도 생판 처음 해보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 하다못해 나는 이기기를 좋아하고 대회장의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감에 의지해서 느리게 한 발짝씩 떼는 느낌, 가야 할 길은 먼데 꽉 막힌 듯 답답한 기분. 나는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그런 막연함에 익숙했다. 지금도 초고를 쓸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어떨 때는 며칠에 걸쳐 4000자를 쓰고도 그 4000자를 몽땅 버리기도 하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 처절한 원고 말이다.
그런 막연함을 업고 작정도 없이 초고를 쓰는 까닭은 그 안에서만 온전하게 주인공일 수 있어서다. 사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내가 주인공이라는 자각조차 없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새삼스럽게 의식할 것도 없었다. 주인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내가 본 것을, 머릿속에 있는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 그건 내가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삶의 특권이었고 어른이 돼서도 그보다 더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일은 찾지 못했다.
나는 지금 블루 벨트에 스트라이프가 네 개다. 다음번 승급에서 퍼플 벨트를 받을 차례다. 그렇게 되면 초급에서 중급의 대열로 들어서는 셈인데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다. 처음 주짓수를 시작할 때 절대 관두지 않겠다고 각오하거나 끝까지 해보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특히 팬데믹 시기에는 주짓수를 그만두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때도 원고를 쓰기 위해서 도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돌아보면 주짓수가 소재가 되어 나를 주인공으로 세워주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주짓수를 하고 있다.
나를 위화감에 얼어붙게 한 선수들, 그들이라고 해서 다를까? 스포츠에서 실력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실력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순 없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감각이 그들을 치열함과 도전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쓰고 보는 초고처럼 주짓수 트립으로 구독자를 모으고 조회수를 올리겠다는 기대를 버렸다. 대신 나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영상을 만드는 일에 전념해 보기로 했다. 나 좋을 대로 만든, 혼자만 재밌는 영상이면 어떤가. 재미도 없는 일을 힘들게 할 이유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