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복도를 지나 중앙 게이트로 들어섰다. 지난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세 개의 문이 모두 열린 채 로비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 회당 50명 남짓의 밀도가 극장의 공기를 낮게 짓누른다. 문 앞에 줄지어 놓인 붉은 링의 차음용 헤드폰을 건네받아 끼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낮은 진동이 먼저 몸을 자극한다. 무대 안은 거의 진공 상태에 가깝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기둥과 바닥을 통해 극장의 미세한 뒤틀림이 온몸을 뒤흔든다.
어두운 객석을 통과하면, 무대 중앙에는 작은 거울에 비춘 하나의 빛줄기가 낮게 드리워져 있다. 세 명의 무용수는 그 불빛의 가장자리에 서서 서서히 몸을 여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사방으로 둘러앉은 관객들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은 채 관람하는데, 때로는 일어나 통로를 따라 이동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오늘의 극장은 '앉아서'도, '움직이면서'도 볼 수 있는 구조로 일상적인 극장의 통제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관객의 자유도가 감상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리를 누르자, 다른 감각이 부풀어 올라

▲공연 <감각의 분모> 공연 사진 ⓒ 한국문화예술원회 제공 @옥상훈
김영찬 안무가의 신작 <감각의 분모>는 의도적으로 청각을 제한한다. 그는 한 감각을 눌러 다른 감각을 풍선 효과처럼 극대화한다. 음악과 설명이 비워진 자리에 남은 것은 빛의 잔재와 바닥과 벽을 타고 번지는 진동, 그리고 세 무용수의 몸짓까지 최소 단위 뿐이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 어깨의 수축, 발목 각도의 편차만 느껴진다. 세 무용수는 말 대신 몸의 문장으로 서로에게 신호를 보낸다. 한 명이 바닥에서 파문을 채집하면, 다른 한 명이 발끝으로 그 진동을 멀리 밀어 보낸다.
무대 한편에는 움직이는 돌(감각을 제한하려는, 또한 분모의 숫자와도 같은 오브제)이 놓여 있고, 어느 순간 두 무용수가 그 위에 함께 올라 손을 잡는다. 서로 다른 무게로 중심을 당기고 밀어낸다. 때로는 흔들리는 받침 위에서 균형을 붙들려는 노력이 눈앞에서 증폭된다.
중심을 잃을 듯 말 듯 흔들리는 그 장면에서, 관객의 호흡도 따라 흔들린다. 장면 전환을 알리는 효과음은 없지만, '진동의 문턱'이 회차마다 다른 경계선을 그린다. 조명은 이야기 대신 그림자의 두께로 시선을 경유시키고, 기술은 스펙터클의 무기가 아니라 관계 조율의 공구로만 남는다.
무대 바깥의 풍경 역시 작품의 일부다. 사방으로 둘러앉은 관객들의 들숨, 벽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통로를 건너는 발의 압력까지 하나의 스코어가 된다. 무대 주변 플로어에는 청각 장애 관객들도 여럿 보였다. 그들은 공연 시작 전 수어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나눴고, 막이 오르자 누구보다 먼저 진동의 방향을 읽어냈다. '도움'의 제스처를 과시하기보다, 같은 방의 질서가 아닐까 보인다. 마치 다르게 듣는 몸들이 편안히 머물 수 있는 환경으로 말이다.
끝내 남는 것은 '몸의 소리'

▲공연 <감각의 분모> 공연 사진 ⓒ 한국문화예술원회 제공 @옥상훈
공연 초반의 침묵은 낯설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바로 그 공백 덕에 이전 공연의 제목인 '감각의 분모'가 드러난다. 긴 정지 끝에 한 무용수가 팔꿈치의 각도만 미세하게 바꾸는 찰나, 객석의 집중이 한 점으로 응축 되며 파문이 퍼진다. 그때 깨달았다. 리듬은 시간의 분할이 아니라 감각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무대가 노린 것도 정확히 그 지점이라 생각한다.
"청각을 덜어 다른 감각을 증폭 시킨다."
그 해상도 위에서 무용의 몸짓 자체를 오롯이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커튼콜이 끝났지만 세 문은 그대로 열려 있다. 몇몇 관객은 다시 들어와 바닥의 잔향을 손끝으로 확인했다. 누군가는 중앙의 불빛이 남긴 원(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헤드폰을 벗은 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몸 안의 낮은 파동이 늦게 사라지며 질문 하나가 남았다.
"감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가."
전통춤을 축으로 창작을 병행해 온 김영찬 안무가가 오래 다듬어 온 지향(제한을 통해 증폭을 얻고, 그 증폭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는 일)이 오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시작된 관람의 끝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다음 번, 또 다른 분모로 이 작품을 다시 '들을' 것이다. 그때는 움직이면서 귀가 아닌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무용 창작자들의 예술적 성장과 터닝 포인트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아르코 댄스&커넥션>에서 출발해, 올해 그 취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아르코 댄스 UP:RIS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아르코 댄스 UP:RISE>는 창작 초연 작업을 지원하는 스테이지1과 그 초연작을 1시간 분량의 완성작으로 발전시키는 스테이지2로 나뉜다. 올해 스테이지1에는 5월 공개 모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김영찬, 정찬일, 박유라, 민희정 네 명의 안무가가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