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북콘서트지난 10월 18일, 종로 ‘문화공간 온’ 북콘서트 현장. 왼쪽부터 진행자 이명권 철학 박사, 발언 중인 이대식 작가, 패널 손정목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 행사는 출판사 열린서원이 주최했다. 다른 패널로 이명춘 변호사(법무법인 정도), 이현휘 전 가톨릭대 교수가 참여했다. 후원으로는 코리안아쉬람, K-평화통일연대, 나봄명상예술원, 정지훈에버스튜디오가 있다. ⓒ 이향림
지난달 18일 북콘서트 무대 위에는 이대식 작가가 있었다. 간첩 사건으로 19년을 복역했고, 출소 뒤 삶과 근현대사의 결을 따라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2025년 4월 출간)를 써냈다. 말투는 조용했지만 문장은 단단했다. "5천만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분단의 세월만큼 더 달라졌겠다"라고 했다. "통일은 내 주장만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포용할 때 대단결이 가능했다"라고 했다. 북을 향한 경청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원칙이 서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음을 믿고 있었다.
이야기는 과거로 잠시 건너갔다. 1967년, 그는 중국 명대 화가 왕몽의 산수화를 팔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유학과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때였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언어와 신분의 벽 앞에서 굴욕을 겪었다. 일본 골동품 상인들의 저평가를 버텼고, 오래된 지인의 도움으로 마침내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도쿄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조선대학에서 재일동포들이 기숙사 중축 낙성식을 여는 장면도 보았다. 무허가였으나 자존의 깃발이었고, 억압 받은 정체성의 고요한 존엄이 거기 서 있었다. 국적은 달라도 뿌리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공동체의 상징으로 남았다.
"억울함은 어떻게 해소했는가"라는 질문이 객석을 지나 무대로 건너갔다. 그는 "해소되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그 일은 시대의 상황이었고 공권력의 불법이 있었다"라고 했다. 1972년에 체포되었고, 증거 없이 이어진 고문과 폭력을 견디다 사형선고가 무기로 감형되었다고 밝혔다. 특별사라 불린 수감동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매일 전향 강요를 받았고, 거부자는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정부가 전향률을 정치 성과로 포장했고, 생각마저 국가가 통제하려 했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하게 생을 마친 동지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다"라고 적었다고 했다. 신념에도 자유가 있고, 국가가 폭력으로 생각을 꺾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7.4 공동성명이 통일의 약속처럼 빛났다가 이행 의지 앞에서 흐려졌다고 회고했고, 훗날 남북 교류의 의미도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정리했다. 2012년에 다시 찾은 구치소에서 생활이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고 "세상은 변했다"라고 했다. 그래서 "반드시 변한다"라는 문장을 책 제목으로 올려두었다고 했다.
객석에는 평양 시민 김련희씨가 앉아 있었다. 2011년, 마흔셋. 브로커의 말에 속아 남쪽에 닿았다고 했다. 입국 직후 "북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밝혔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었고 법 질서 준수 서약서를 썼으나, 15년째 귀향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열일곱에 헤어진 딸이 서른둘이 되었다고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산의 숨소리가 객석 어딘가에서 가늘게 흘렀다. 현재의 상처가 과거의 결정과 얽혀 있었다. 개인의 사연이 구조의 역사와 맞닿아 있었다.
행사 뒤 책장을 넘겼다. 서울대 초대 총장이 미군 대위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미 군정청은 이 국대안 반대 투쟁을 폭압으로 억눌러 마침내 김태준 총장을 축출하고 미군 대위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서울대학을 결국 미군정청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순응하는 어용 지식인을 양성하는 대학으로 만들었다."
순수해야 할 학문마저 미군의 입김과 남의 나라 손에 좌지우지되었다고 느꼈다. 대학은 지성의 최후 보루여야 했지만, 그날의 결정은 지성을 권력에 예속된 제도로 낮추었다고 보였다. 엘리트와 권력의 낡은 결탁은 오늘까지도 잔향처럼 이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외풍에 흔들리는 학문, 눈치 보기에 길든 제도, 책임을 유보하는 지식인의 자세가 반복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또 다른 문장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비록 이승만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라는 권좌에 올랐을지언정, 분명히 우리 대통령이며, 따라서 그를 쫓아내는 처벌도 우리 국민이 결정해야 했다."
4.19의 이면에 미국의 권고가 비쳐 있었다. 내부의 힘으로 매듭지었다고 믿었던 기억이 조금씩 수정되었다. 자주와 통일이 본래 한 뿌리였는데, 어느 지점에서 서로가 떼어졌는지 질문이 생겼다.다. "돈은 없어도 가오(자존심)는 지키자"라고 말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풍요가 늘었는데도 자존은 서툴렀다는 자각이 따라왔다. 모르면 느끼지 못했고, 느끼지 못하면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배우기로 했다. 자존을 세우기로 했다. 배움이 체온을 얻는 일임을 믿었다.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책표지 ⓒ 열린서원
역사적 사실 외에도 간송 전형필과 얽힌 따뜻한 가족의 기억, 전쟁터의 흙냄새와 함께 인민군 부상병과 나눈 대화와 눈물, 민간인까지 구분하지 못한 미군 폭격으로 죽을 뻔한 이야기 등 생생하게 살아온 체온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개인의 서사가 역사를 드러내고, 세계사까지 증언 한다는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마지막 박수가 잦아든 뒤에도, 무대의 얼굴과 객석의 숨소리가 오래 머물렀다.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다는 고백과 과거에 묶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한 장면에 겹쳤다.
국내 밖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안에서는 분단의 그림자가 여전하다. 그럼에도 변화를 믿는 마음이 조용히 모인 시간이었다. 변화는 거대한 구호에서만 오지 않았다. 사실을 직면하려는 용기와 서로의 생각을 포용하려는 마음, 아주 작은 선택들이 방향을 조금씩 돌렸다. 이대식 작가의 상처가 언어를 얻었고, 언어가 길을 만들었다. 오늘의 걸음이 내일의 평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끝내 이렇게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변하게 하는 주체는 결국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