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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5 09:28최종 업데이트 25.11.05 17:59

정책은 종이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행정의 언어가 시민의 삶에 닿을 때, 성평등은 현실이 된다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는 '센터 내실화와 양성평등센터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는 '센터 내실화와 양성평등센터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2025년 11월 4일 오후 1시 30분, 대전테크노파크 디스테이션 10층 라운지. 대전사회서비스원(원장 김인식)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는 '센터 내실화와 양성평등센터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인천·부산·전남·광주 등 각 지역 센터장들이 모여 성주류화 정책의 실행 경험과 협력 방안을 나눴다.

늦가을 햇살이 라운지의 유리창을 스치고, 둥근 탁자 위에는 빽빽한 서류 대신 사람들의 숨소리가 쌓였다. 종이보다 오래된 고민들이, 마이크 앞에서 하나씩 말을 얻었다. 그날의 대화는 단순한 행정 개선을 넘어, '성평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성주류화 정책은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의 약속에서 출발했다. 정책의 모든 단계에 성평등 관점을 통합하자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지만, 행정의 언어는 여전히 딱딱했고, 현장의 목소리는 종종 문서 밖에 머물렀다. 오늘의 포럼은 그 간극을 좁히려는 작은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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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성별영향평가센터 정현지 센터장은 말했다.

"성주류화는 제도가 아니라 거버넌스입니다."

인천은 돌봄과 안전처럼 성평등 지수가 낮은 영역을 중심으로 시민 모니터링단이 직접 개선안을 냈다. 지하철 수유실, 도서관 홍보물, 공공도서관의 불균형한 이미지까지 시민들이 발로 조사했다.행정은 그 결과를 회신하며 "내년엔 고치겠다"고 답했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였다.

광주의 임현정 광주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전 전북 지역 거점형 양성평등센터장)은 성별영향평가센터와 양성평등센터가 함께 여는 공동 포럼을 소개했다. 공무원, 시민, 컨설턴트가 한자리에 모여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자리. 그는 말했다. "정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만나야 자랍니다."

부산(센터장 임애정)은 우수사례집을 점자·큰글자본으로 만들어 배포했다. 정책이 행정 문서를 넘어 '누구에게나 닿는 언어'로 번역된 셈이다.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는 '센터 내실화와 양성평등센터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는 '센터 내실화와 양성평등센터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전남의 지희정 센터장은 "전문 인력과 예산의 부족이 늘 첫 번째 벽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역 단체, 청년 모니터단, 공무원과의 협력으로 조금씩 벽을 허물었다. 그 느림이야말로 현장의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

이날 포럼을 주관한 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박란이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성주류화 제도는 시민의 시각과 일상의 목소리를 반영할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그 말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의 결론처럼 들렸다. 성평등은 먼 목표가 아니다. 공무원 한 사람의 문서 수정, 시민 한 사람의 참여, 그리고 서로의 경험을 듣고 배우는 협력 속에서만 현실이 된다.
정책은 종이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서로의 손끝에서, 말과 말이 닿는 자리에서 자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행정은 인간의 언어를 배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책이밥주식회사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이은하씨는 논픽션 작가·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컨설턴트입니다.


#성주류화#성별영향평가#성평등#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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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anti01) 내방

책이밥 주식회사 대표이사 이자 논픽션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전)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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