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2025년 10월 출간)를 출간한 윤병옥 작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졸업 후 문과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원에 가서 교육 심리학과 카운슬링을 공부했다고 한다. 저자는 예순이 되면서 의미 있는 노년을 살고 싶어 방법을 찾던 중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영화 리뷰와 에세이를 쓰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나도 예순 즈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기에 그 마음이 공감됐다.
이 책에는 '노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넉 장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계절별로 다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김형석 교수님이 <백년을 살아보니> 책에서 언급하신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다"라는 말씀이 공감될 거다. 나도 60대 중반이지만, 60대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가장 좋은 나이란 걸 알게 된다. 퇴직했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아 여유 있고, 자식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그동안 일하느라 자식 키우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
나도 예순이 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꾸준한 글쓰기가 출간으로 이어졌다. 60대는 인생을 계절로 비유했을 때 가을이라고 할 수 있다. 단풍이 들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숙연해지고, 추수의 계절이라 늘 수확이 있는 풍요로운 계절이기도 하다.
예순, 온전히 자기를 만날 시기

▲책표지 ⓒ 미다스북스
나이 들어 보이는 징후 중 한 가지가 노안으로 휴대폰이 잘 안 보이는 증상이다. 돋보기를 써야 뿌옇게 보이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돋보기를 쓰고 거울을 보면 안 보이던 주름이 눈에 확 들어와 가끔 우울해진다. 그럴 땐 돋보기를 벗고 희미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게 오히려 낫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노인들의 심정이 무디어지는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날카로운 비판의 감각이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어 뾰족하게 구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이가 많아진다, 나이를 먹는다'보다는 '나이가 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철이 들고, 단풍이 들고, 봉숭아 물을 들이는 것처럼 나도 '나이가 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노년에는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 자신을 바라보고, 온전히 자기를 만날 시기이다. 저자는 60대는 노년의 초입이지만, 온전히 자기를 만나는 여정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새해에 나이 든 내가 원하는 것은 돈도 미모도 명예도 아닌,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지혜와 글을 쓸 수 있는 건강이다.
60세 이상의 아버지 세대는 많이 일하면 가정에 돈을 많이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을 하다가 가족과 친해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퇴직 후 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실망하고 멀어진 사람들은 그들을 잘 끼워주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한 60대 남편이 퇴직 후 아름다운 본연의 얼굴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남편방을 꾸며 선물하고, 옆에서 기다리며 응원해 주었다. 그런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배우자는 평생의 파트너이다.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노년에는 자기 완성을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저자와 나는 같은 60대이고, 자매가 없고 아들만 둘이란 공통점이 있다. "우리 엄마는 비싼 꽃 안 좋아해"라고 말하는 아들에 비해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라고 말해주는 며느리가 고맙다. 나도 그랬다. 가족이라도 나와 성별이 다르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어떤 때는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편할 때가 있다.
예순, 자기의 색을 향해 떠나는 여정
저자는 심리학자 융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분석 심리학을 공부하며 영화와 꿈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기에 글 속에 꿈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심리학자 융이 "인생에서 중년 이후에는 에너지를 안으로 돌려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듯이 내향인인 저자도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것이 좋고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향인이라도 아예 소통을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글이나 작품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다. 나도 내향인이지만, 시민기자를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으니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글쓰기란 이제는 힘이 생긴 자아가, 힘들었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힘들었던 나를 보듬는 작업이다.
저자는 자기의 색을 찾기 위해 오전 9시 정각에 문을 여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는 나이 들어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와 탁구를 즐기고, 영화를 보며 자기만의 색을 찾는다. "책을 읽으면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고, 다른 시대에서 살아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살 수 있다. 심지어 미래에도 가 볼 수 있다"며 내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를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노년기 내과 정희원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지금 건강에 투자하는 돈은 나중에 누워서 쓰는 치료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돈을 투자해 탁구 레슨을 받는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저자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영화에 대한 글과 에세이에 이어, 부모님과 이별하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요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을 기록하면 일상이 일종의 예술 작업 비슷한 것이 된다. 개인의 작은 역사에서 중요한 일들을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글을 쓰면 시간을 멈추고 그때를 바라보며 사라지는 것들을 잡을 수 있으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 된다.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노년의 길목에 접어든 당신,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백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예순'이라는 나이는 더 이상 저물어가는 노년이 아닌, '제2의 인생'을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의 시기로 인식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글쓰기를 시작한 '시니어'가 많다. 문학회에 가 보면 젊은 사람보다 60대 이상 시니어 분들이 많은 이유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는 60대를 맞이하며 글쓰기의 기쁨을 새롭게 알게 된 저자의 사유를 담은 에세이이다. 노년의 길목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 다가올 노년을 현명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이 궁금한 분들에게 이 책은 건강하면서도 단단한 한 권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동 세대에게는 공감을, 젊은 세대에게는 지혜를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글 말미에 있는 '마음의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교훈이 되기에 따로 필사해 두어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