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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며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며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갑작스러웠고 이례적이었다. 지난 3일 오후 5시 1분 기획재정부 기자들에게 일제히 문자와 함께 자료가 배포됐다. 문자에는 '정부 자산 매각 전면 중단 지시'라는 제목만 나왔다. A4 용지 한 장짜리 보도자료의 제목에는 '대통령 긴급 지시'라는 문장이 큼지막하게 씌어 있었다.

정부 정책에 '긴급'이라는 문구도, 대통령실 대변인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물론 정부 대변인도 겸하고 있다) 이름으로 자료가 나온 것도 그렇다. 자료 배포되자, 일부 통신과 온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속보'가 올라왔다. 하루 기사 마무리를 준비하던 기자들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야 했다. 기재부 등의 관련 부처 대변인실과 해당 부서의 전화는 말 그대로 '불이 났다'고 할 정도였다. 여파는 4일(오늘)까지 계속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대통령은 왜 '긴급'하게 정부 자산 매각 금지를 지시했을까.

우선 지난 3일 이 대통령은 별도로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한 이 대통령은 오늘(4일) 예정된 현 정부 첫 번째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내용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국유재산 헐값 매각'에 대한 부분도 언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인 이 대통령의 '긴급' 지시사항 "정부 자산 매각 보류하거나 중단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이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국정감사 기간에) 공공 자산 매각이 무원칙하게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어제 전면 중단과 보류하고 꼭 (정부 자산 매각이) 필요하거나 해야될 것이 있다면 국무총리 재가해서 처리하되, 기본적으로 (정부 자산의) 매각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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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지시 사항은 자료 문구에도 그대로 실려 있었다. 대신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가로 공기업 민영화를 꺼내 들었다. 과거 정부가 국민 여론에 반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된 사례를 들어가며, "제가 당 대표로 있을 때도 공기업 민영화를 못하게, 절차적으로 통제하는 제도를 만들려다 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민이 불안해하시니까 국회와 충분히 협의하든지,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서 하도록 제도로 만드는 것을 검토해 달라"고 이 대통령은 강조했다.

정부의 국유재산 헐값 매각 논란은 국감 때마다 단골 메뉴였다. 이번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 국유 부동산 매각이 급증했고, 이중 상당수가 헐값으로 매각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국감에서 제기한 내용을 보면, 부산과 울산 등의 정부 부동산이 절반에 못 미치는 값에 팔려 나갔다. 올해 7월까지 매각 국유 재산의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액 규모가 477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캠코 상대로 한 국감에서 "2022년까지 감정가 대비100% 이상이던 낙찰가가 올해 상반기에 73%까지 떨어졌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헐값 매각의 수익이 누구에게 갔는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작년 국유재산 매각 규모가 77조 원이었는데, 역대 최고였다. 지난 2023년 45조 3000억 원에 비하면 31조 7000억 원이나 늘어난 것. 이상민 책임연구위원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국유 재산 처분 때는 국회의 사전 심의와 함께 매각 리스트와 사유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침묵과 당혹' 기재부, 용산 대통령실 눈치보며 기자설명회도 없던 일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국유자산 관리를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겉으론 평온하면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관련 부서 담당자와 간부 등은 일제히 언론 접촉을 피했다. 기자도 수차례에 걸쳐 문자와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변인실은 지난 3일 오후 5시 45분께 기자들에게 별도 공지를 통해 "4일 오전 10시에 관련 배경 브리핑을 하겠다"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당일 오후 6시 55분께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언론 공지를 통해 "국감 등에서 제기된 국유재산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한 조치로 대통령의 긴급지시가 내려진 것"이라며 "담당부처는 신속하게 국유재산 헐값 매각과 관련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의 공지 내용은 이후 대통령실 발로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이후 저녁 9시 28분께 기재부는 4일 예정된 기자 브리핑을 돌연 연기했다. 별도의 날짜를 잡지도 않아 사실상 취소한 셈이었다. 기재부 차원에서 언론을 상대로 준비했던 브리핑이 용산 대통령실의 추가 공지가 나온 후 '없던 일'로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과 기재부 사이에 언론 브리핑에 대한 별도의 소통 과정이 있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에 기재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용산 대변인실의 추가 공지 내용을 듣고 알고 있었다"라면서 "이번 긴급 지시사항에 대한 기자들의 문의가 많아서 배경을 설명하려는 차원에서 (브리핑을) 준비했었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로부터 브리핑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국유재산 관리 주무부처 기재부 '또' 패싱?... 내란 구속심사 앞둔 '추경호' 부총리 재소환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 사무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 사무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행법상 국유재산 관리와 처분 업무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괄하도록 돼 있다. 국유재산 관리와 처분은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이 대통령의 '긴급 지시 사항'이 내려오기까지, 기재부 내부에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름 공개하기를 꺼린 기재부 관계자는 "국유재산을 담당하는 부서뿐 아니라 간부들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사전에 듣지 못한 것으로 안다"라면서 "오늘 아침 발표된 관계부처 합동의 산업경쟁력강화 방안과 대통령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 등 여러 현안을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언급 자체를 꺼리면서도, "(이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국유자산 처리에 사전 재가를 받으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특히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정정훈 사장도 기재부 세제실장 출신이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박민규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초부자 감세를 설계한 인사가 캠코 사장으로 있으면서 국유지를 대대적으로 싸게 팔았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논란 과정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지난 2022년 추경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유재산 매각, 활용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국유재산 헐값 매각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긴급 정부 자산 매각 전면 중단' 지시를 내렸던 지난 3일, 내란 특검팀은 추 의원을 상대로 내란 공모 혐의로 조사를 벌였고 4일(오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재명대통령#정부자산매각금지#구윤철부총리겸기획재정부장관#김남준대변인#추경호국민의힘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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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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