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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4 17:35최종 업데이트 25.11.04 17:35

야간 노동 사회, 편리함의 대가를 묻다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 쿠팡

새벽 3시, 칠흑 같은 골목길을 누군가 손수레를 밀고 지나가거나, 거대한 트럭이 물류 하역장의 불빛 아래 짐을 부지런히 쏟아낸다. 우리의 아침 식탁에 오를 신선한 재료나 문 앞에 놓일 박스 하나를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밤의 시간을 자신의 삶과 맞바꾸고 있다. 이 '야간 노동 사회'의 풍경은 너무나 익숙해졌지만, 우리는 이 편리함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노동이 정말 '생존을 위한 필수'인지, 아니면 '편리함을 위한 기호'가 만들어낸 결과인지 성찰해야 한다.

물론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의료, 안전, 긴급 대응 영역의 야간 노동은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지는 사회보장 체계 안에서 관리된다. 그러나 새벽배송이나 심야 하역은 생존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충족하고자 하는 다양한 소비자 및 이용자의 욕구가 만들어낸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의 수요는 1인 가구의 생계형 소비뿐 아니라, 맞벌이부부, 신선도와 재고 관리를 위해 새벽 물품을 구매하는 자영업자와 중소 규모 기업의 절실한 필요성에서도 비롯된다. 이들의 편리함과 생계 유지 역시 중요한 경제 활동의 일부임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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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새벽배송과 같은 야간 물류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사회적 필요라면, 우리 사회는 그 필요에 걸맞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수 노동 영역과 달리,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 특수고용형태가 주를 이루는 물류 야간 노동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기업들은 이 구조를 악용하여 산업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위험과 비용을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한다. 반면, 소비자 및 이용자들은 편리함에 취해 이 구조를 방관하고 있으며, 정부마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 문제를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 노동은 본질적으로 시장에 던져지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다. 노동자의 선택은 생계, 부채, 미래 불안이라는 생존의 압박 위에서 이루어지기에 이는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불안이 강제한 협상에 불과하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노동자의 일할 자유를 침해하고 절박한 돈벌이 기회를 외면한다'는 비판의 기저에는, 이 절박한 현실에 대한 마땅한 사회적 대안이 없다는 답답함이 깔려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그 어떤 절박함이나 경제적 논리보다 우선하며, 단기적인 금전적 보상으로 그 가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 절박함의 원인을 개인 자유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실패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개인의 노력이나 기업의 도덕성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조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우리의 편리함은 '타인의 고통을 보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우리를 길들이는 시장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모두가 이 속도 경쟁에 동참하고 있을 때, 사회는 공동체가 아닌 파편화된 개인들의 흩어진 집합이 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위험과 비용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공정한 분담이다. 국가는 플랫폼·물류 노동자에 대한 근로자 지위를 적용하여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개선하고, 전국민 고용보험 체계를 구축하여 생존 불안이 야간 노동을 강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야간·새벽 노동을 전면 금지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노동 총량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야간,새벽 노동 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휴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과 소비자의 사회적 편리함의 속도를 건강과 존엄의 범위 안으로 되돌려야 한다.

폴라니는 진정한 자유를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혼자만 살아남는 속도 경쟁이 아닌,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자유다. 노동과 위험 분담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기능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그 핵심은 "나는 타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연대감이다.

우리는 정말로 이 속도가 필요했는가?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은 것은 함께 살아갈 자유는 아닌가. 기술이 아닌 관계, 속도가 아닌 존엄을 중심에 둔 사회로 돌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모두의 밤을 지키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새벽배송#야간노동#칼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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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정의롭고 공정한 금융시스템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금융과 미래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모 경제교육과 청년 금융을 아우르며, 다원적 경제관과 사람 중심의 경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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