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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https://omn.kr/2fx2y)에서 이어집니다.

인천 강화군의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사회복지법인 A시설. 이곳은 복지부 평가에서 C등급 시설로 분류되었지만 홈페이지에는 인권지킴이단, 인권교육, 윤리규정 등이 갖춰져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 거주 장애인들이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해(2025년) 9월 이 시설에서 여성 중증장애인 여러 명이 시설 관계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곧바로 이 시설을 압수수색 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긴급진정을 접수했다.

이름은 있지만 역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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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시설의 홈페이지 들어가보면 여러 메뉴 중 '인권지킴이단'이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 제도에는 인권지킴이단의 운영과 구성, 신고방법 등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심지어 긴급 구제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강화경찰서, 신고 전화번호까지 정리돼 있다. 비단 이 시설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가혹 행위 사건에 휘말렸던 장애인 시설 등에도 같은 내용들이 있다.

그럼,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제도가 있는데 왜 막지 못했느냐.

하지만 실제 운영 내용을 살펴보면, 외부위원 명단, 회의 일정, 조치 결과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

경기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건희 국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주인들은 인권지킴이단이 뭔지도 모를 겁니다. 신고하는 절차도 마찬가지구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구였어요."

복지부의 2025년 평가지표를 보면, '인권지킴이단 구성 및 운영' 항목의 배점은 2점. 회의가 열리지 않아도, '구성되어 있다'면 점수를 받는다. 실제 위 단체의 구성원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얼마나 자주 정기적으로 열리고, 시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인권지킴이단은 존재 자체로 점수를 채우는 제도적 장식이었던 셈이다.

평가위원, 감시자가 아닌 동료

복지부의 시설평가에서도 역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다지만, 그 외부는 사실상 '타 시설의 동료들'이다. 사회복지사·시설장 출신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감사원은 2022년 감사 결과에서 "평가위원 중 15%가 동일 시설·지역 평가를 반복했다"라고 밝혔다. 즉, 몇 년째 같은 지역 시설끼리 서로 평가하는 구조다.

시설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평가위원에게 항의 전화가 오기까지 한다고 한다. 결국 같은 시장에서 얼굴을 서로 오랫동안 봐야 하는 평가자는 시설의 문제가 발견되어도 무난하게(?) 통과시킬 수 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조에서는 '인권침해 시설'이 '낮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사회, 책임의 끝이 아니라 보호막의 시작

법인 이사회는 시설 운영의 최종 책임자다. 그러나 앞선 인천 강화 A시설의 경우,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도 이사 전원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사 중 일부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내 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협회 측은 "법률 검토 결과, 수사 중인 사안은 인사 조치가 어렵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말은 피해자가 '수사가 끝날 때까지 가해자가 자리를 지킨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사이 피해자는 평생 시설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부 인권 체계의 침묵

복지시설에는 인권지킴이단, 윤리위원회, 평가위원회, 이사회가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기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인권지킴이단은 보고서를 이사회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 평가위원은 사건 발생 여부를 알 수 없다. 제한된 정보와 사건 발생 여부를 가늠할 서류나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해당 지자체는 점수만 검토할 뿐 그 이상의 개입에 제한이 있다.

결국 제도는 다층적이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실제 감시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 화려한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는 하나의 실효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감시기구가 아니라, 침묵의 네트워크죠."
-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건희 국장

'동료 평가'가 만든 윤리적 공모

평가위원이 시설장을 평가하고, 다음 해엔 그 시설장이 평가위원이 된다. 이런 순환 구조 속에서 비판은 사라지고, 동정심만 남는다.

"우리 다 어려운 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 평가위원 교육 중 실제 발언(복지부 교재)

이른바 '온정주의'는 평가 제도의 뿌리 깊은 관성이다. 서류가 아무리 완벽해도 거주인의 눈물은 그 표 안에 없다.

복지시설 평가는 결국 '제도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으로 변했다. 평가위원도, 이사회도, 복지부도 모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반복한다.

"평가는 존재의 증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증거가 됐다."
- 시민사회 '장애와인권21' 관계자 발언 인용

"감시자가 감시받을 때 비로소 복지가 시작된다"

인권지킴이단은 감시받지 않는다. 평가위원은 평가받지 않는다. 이사회는 책임지지 않는다.

복지의 이름으로 포장된 제도적 침묵을 깨려면 이제 감시자들이 감시받아야 한다.

-인권지킴이단 외부위원 의무 참여제
-평가위원 명단 공개 및 순환제 도입
-학대·성폭행 발생 시 자동 감점 제도 도입
-법인 이사회 직무정지 및 임시관리 제도 강화

이 네 가지는 단순한 행정개선이 아니다. 그저 폭력을 덮지 않는 복지의 시작점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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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뒷이야기 :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백브리핑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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