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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최고'라 인증한 복지시설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의 한 A등급 장애인 거주시설. 정부가 '우수 시설'로 지정한 이곳에서 직원이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 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사건 이후에도 이 시설이 여전히 'A등급 우수 시설' 타이틀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폭력이 드러나도 등급은 바뀌지 않았다.

악몽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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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시설 내부에서 한 여성 장애인이 울먹이며 사회복지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직원이 나를 만졌다"는 말로 시작된 신고는 경찰에 접수됐고, 수사 결과 일부 사실관계가 확인됐다.

경찰은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입건했고 지방자치단체도 현장 조사를 했다. 하지만 시설 운영은 중단되지 않았고, 그해 연말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평가 결과표에는 이 시설의 등급이 여전히 'A'로 표시되어 있었다.

사회복지시설평가는 3년 주기로 실시된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노인·아동·장애인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운영, 인력, 안전, 인권 등 100개 내외 지표를 평가해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긴다. A등급은 평가점수 90점 이상을 의미한다. 복지부의 공식 지침에는 "서비스 품질이 우수하고, 타 시설의 모범이 되는 기관"이라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A등급은 곧 정부가 보증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상징이다.

하지만 이 상징은 그 해 여름, 한 신고로 무너졌다.

제도의 맹점

국회 정기 감사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사회복지시설평가는 3년 단위로 실시되는 정기 평가이기 때문에 중간에 사건이 발생해도 결과에 즉시 반영되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시설 내에서 학대나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평가 주기가 돌아오기까지는 등급이 그대로 유지된다. 사건 발생 후 평가가 갱신되기까지 3년이 걸린다. 그 사이 시설은 여전히 '정부 인증 우수시설'로 홍보할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복지시설 근무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가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서류예요. 인권 침해가 발생해도 바로 반영되지 않아요. 복지부가 요구하는 서류만 잘 정리돼 있으면 점수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지자체가 지도 점검을 나가지만, 시설 폐쇄나 등급 강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해명

보건복지부 측은 "사건 발생 시 지자체가 별도로 행정조치를 취하고, 평가 제도는 정기적 관리 기능을 수행한다"며 "향후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반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대응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제도의 구조가 '사건이 나도 즉각적인 조치가 불가능한 시스템'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관련 변호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최정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A등급은 정부가 부여한 일종의 면허처럼 작동합니다. 사회복지시설의 실제 환경보다 정부의 신뢰도만 보호합니다. 피해자는 그 등급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제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만든 '우수 시설'의 타이틀은 현장의 인권 침해를 가리는 장막이 되어 있었다.

A등급의 장막을 걷어야

피해자는 아직도 시설 외부의 보호시설에서 생활 중이다. 아니, 다시는 시설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시설은 여전히 운영 중이며, 웹사이트에는 "정부 인증 우수시설" 문구가 그대로 걸려 있다. 폭력이 일어나도 등급은 유지되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제도 속에서 지워진다.

"진짜 복지는 점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한 사회복지사의 말처럼, 제도의 중심이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또 다른 피해자는 언제든 'A등급의 장막' 속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 2편(https://omn.kr/2fx2y)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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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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