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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킥보드 탄 사람들 편도 4차로를 가로질러서 오는데… 그것도 두 명이 타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위험하니까 무리하게 추격하지는 말자."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경고 방송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내가 할게. 킥보드 탄 학생들 멈추세요. 위험합니다. 정차하세요."

단속 쉽지 않은 도로 위 킥보드

대치동 학원가 10대 청소년이 킥보드를 타고 대치동 학원가 인도를 주행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10대 청소년이 킥보드를 타고 대치동 학원가 인도를 주행하고 있다. ⓒ 박승일

결론부터 말하면, 단속하지 못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온 학생들을 향해 순찰차 확성기로 여러 차례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순찰차가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을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골목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솔직히 나는 이런 경우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는 편이다. 동료들에게도 늘 그렇게 말한다. 단속이 목적이라기보다 '계도'의 의미로 멈춰 세워야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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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중학생 두 명이 탄 킥보드에 30대 여성이 치여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어린 딸의 솜사탕을 사서 나오던 엄마였다. 인도로 달리던 전동킥보드가 빠른 속도로 딸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몸으로 막아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도로교통법상 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 킥보드는 16세 이상이면서 원동기 면허나 자동차 면허를 소지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당연히 면허가 없으면 탈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킥보드 운영 업체의 허술한 면허증 인증 제도 때문에 16세 이상이라도 원동기 면허가 없으면서 킥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사회적 문제로 크게 떠오르고 있다.

경찰에서 적극적인 예방 활동과 엄격한 단속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단속하는 데 겁이 나고 심적인 부담이 크다. 물론 무서워서 겁이 나는 건 아니다. 청소년이 변수가 발생해 다치는 상황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성인들을 대상으로 단속하는 과정에서도 돌발 상황은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청소년은 어떨까. 청소년들이 단속하는 경찰관을 보고 받을 심리적 압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요즘 10대들이 킥보드를 타는 걸 보면 막긴 해야겠는데 쉽지 않네요"
"그래도 너무 무리해서 단속은 하지 마. 나는 솔직히 흉악한 범인을 검거하다 내가 다치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거든. 그런데 킥보드를 단속하다 경찰관이든 청소년이든 누구라도 다치게 되면 엄청나게 부담스러울 듯해."

함께 근무하는 동료와 나눈 대화다. 이런 이야기를 요즘 자주 한다. 그만큼 현장에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크다.

지난 6월 인천 부평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고등학생을 단속한 경찰관이 있었다. 당시 킥보드에 두 명이 타고 있었고 안전모를 쓰지 않은 채 인도로 주행하는 것을 보고 멈춰 세우려고 운전자의 팔을 잡았다. 그러다 운전자인 학생들이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며칠 전 해당 경찰관은 직무를 수행한 것은 맞지만 단속 행위와 부상 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법리적 판단으로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이 뉴스는 나를 더욱 위축시켰다. 내부적으로도 말들이 많다. 물론 경찰관이 법적 책임을 회피해선 절대 안 된다. 당연하다. 그러나 아쉬움은 분명히 있다.

"눈감고 쳐다도 보지 마세요."

과거 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 경찰관이 통화 중에 내게 한 말이다. 사실 나는 현장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편이다. 그런 나를 잘 알고 있어 걱정돼서 해준 말일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청소년들의 전동 킥보드 단속에는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경찰관이 단속하는 건 기본 업무고 당연한 일이다. 그게 경찰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배가 오죽 했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 싶다.

실제 통학로, 학원가 가보니

고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전동킥보드 공간 많고 많은 곳중에 왜 하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통학로에 설치했을까?
고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전동킥보드 공간많고 많은 곳중에 왜 하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통학로에 설치했을까? ⓒ 박승일

최근 전동 킥보드 대여 업체 간에 홍보와 관련한 통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대화는 면허가 없는 청소년이 킥보드를 타다가 사고를 내도 업체는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보험에 적극적으로 가입하지 않는다. 현재는 보험 가입이 의무가 아닌 자율 가입이기 때문이다. 설령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무면허 운전자가 사고를 냈을 때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결국 무면허 청소년이 사고를 내면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 청소년들의 킥보드 이용과 관련해서 다양한 법 개정이 논의 중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 제대로 된 법이 시행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던 중에 서울시는 지난 5월부터 마포구 홍대와 서초구 반포 학원가에서 정오부터 밤 11시까지 전동 킥보드 통행을 제한했다. '킥보드 없는 거리'를 시범 운행한 것이다.

그 결과 대다수의 시민이 확대 운영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했으면 한다. 중·고등학교 주변과 학원가는 반드시 '킥보드 없는 거리'에 포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3일 집 근처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1시간여 동안 걸어 봤다. 그곳에서 본 킥보드는 수십 대에 달했다. 어느 대형 학원 정문 앞에는 여러 대의 킥보드가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로 불리는 픽시 자전거도 여러 대 있었다. 단속을 피하려고 앞바퀴에만 브레이크를 부착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치동 인근 어느 고등학교 후문 쪽 담벼락에는 구청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개인형 이동장치(PM) 주차 공간도 설치되어 있었다. 굳이 학생들의 통학로에 설치해야 했나 싶다. 청소년들이 킥보드를 이용하는 때는 주로 학원을 가거나 등하교 때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들이 자주 왕래하는 주변에 주차할 수 없도록 하면 청소년들의 손에서도 멀어지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킥보드는 분명 그렇다.

킥보드를 타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워서', '빠르니까.' 하지만 그 선택의 대가가 위험한 사고라면, 아무리 빠르더라도 멈추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킥보드를 타는 건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허술한 면허증 인증 제도, 무책임한 업체의 운영,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느슨한 법의 틈이 만든 결과다. 냉정하게 보면 어른들의 돈벌이에 그들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청소년들의 킥보드를 단속하는 일에 걱정과 부담이 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건, 무책임의 중심에 경찰관인 내가 서는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엄격한 단속으로 법 위반을 줄이려는 제도는 마지막으로 써야 할 방법이다. 그 대상이 누구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 금요일 연재에도 실립니다.경찰관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다 죄인이 되는 지금. 단속의 기준보다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법이 먼저 세워졌으면 합니다.


#학원가#서울경찰청#송파경찰서#킥보드#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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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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