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4일, 구례 석주관에는 묵직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짙은 단풍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칠의사와 의승병의 넋을 기리는 추향제(秋享祭)가 경건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석주관 칠의사 ⓒ 임세웅
정유재란의 혼돈 속, 이곳 석주관은 전라좌도의 마지막 관문이었습니다. 1597년 9월과 11월, 일본군이 섬진강을 따라 구례, 남원, 전주 등을 점령하고 백성들의 귀와 코를 베어가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자, 칠의사(七義士)와 구례의 의병, 그리고 화엄사 승병들이 온몸으로 맞섰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구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왕득인, 왕의성, 양응록, 오종, 고정철, 한호성 이정익 등의 의병들로 나라를 지켜낸 숨은 이들입니다.

▲당시 의병들과 승병들의 신위 ⓒ 임세웅
하지만 기록에는 남지 못한 이름 없는 의병들, 그리고 묵묵히 염주 대신 창을 들었던 화엄사 승병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이 고장은 오늘도 나라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날 추향제는 구례군과 지역 유림, 칠의대대 군인들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되었습니다.

▲추향제에 참석한 군민들과 군인들 ⓒ 임세웅
향과 제수가 오르고, 헌작과 분향이 이어지자, 한 줄기 바람이 산문을 지나 제단을 스쳤습니다. 마치 그날의 함성이 다시 석주관 골짜기에서 메아리치는 듯했습니다.

▲석주관 칠의사와 의승병 추향제 ⓒ 임세웅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저마다 고개 숙여 묵념 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누군가는 반드시 일어선다.'
그 믿음과 용기의 이야기가 이 가을에도 우리 곁을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석주관 칠의사 묘역 ⓒ 임세웅
석주관 전적지는 지리산 자락의 맑은 계곡과 푸른 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단풍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마음에 남는 것은 조국을 향한 충의의 숨결입니다.
가을은 언제나 '기억'의 계절입니다.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를 다짐합니다. 오늘 석주관에서 열린 칠의사와 의승병 추향제는 단순한 제례가 아니라 민족의 혼을 잇는 약속의 자리였습니다.
그들의 넋이 머무는 석주관에 서면, 우리 마음속에도 하나의 불씨가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