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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 기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딱 10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뜨셨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로는 기일이든 명절이든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새 10년째 부모님 기일이 자연스럽게 우리 삼형제 만남의 날이자, 고향 방문의 날이 됐다. 이번에도 부산에 사는 형님을 모시고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고향 마을 근처에 사는 누나도 만나서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고향 찾는 마음이 착잡한 이유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추모공원, 여기에는 큰형님도 모셔져 있다.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추모공원, 여기에는 큰형님도 모셔져 있다. ⓒ 곽규현

부모님을 모신 추모공원에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오래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큰형님도 모셔 있다. 누나가 간단하게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부모님부터 차례대로 술을 따라 올리며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은 생전에 형제들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걸 제일로 여기시고 말씀도 자주 하셨다. 그런 뜻을 받들어 우리 형제들은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챙기며 부모님 기일에는 온전히 하루를 함께한다. 성묘를 하고 나면, 고향 마을을 둘러보고 친척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추억담을 나누며 부모님을 추모한다.

그런데 이번 고향 마을 방문은 예년과 다르게 마음이 심란했다. 그동안 고향 마을에 갈 때마다 찾아뵀던 작은어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셨다. 지난날 작은어머니는 어머니와 함께 집안 대소사를 챙기셨고, 우리가 찾아뵐 때마다 반겨주셨다. 그런 작은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시니 흐르는 세월이 덧없다. 고향 토박이로 살아온 육촌 형님도 올봄에 돌아가셨다. 부모님과 같은 시대를 사셨던 친척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시니 고향을 찾는 마음이 쓸쓸해진다.

 남해~여수 해저터널 공사 현장, 마을 앞 바닷가 들녘이 공사로 파헤쳐져 있다.
남해~여수 해저터널 공사 현장, 마을 앞 바닷가 들녘이 공사로 파헤쳐져 있다. ⓒ 곽규현

더욱 마음을 착잡하게 한 건 고향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바닷가 들녘 풍경이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정겹게 맞아주던 이전의 낯익은 풍경이 아니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와 농작물로 어우러진 주변 들녘은 크게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외지인들이 하나둘 들어와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어도 전체적인 경관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그랬던 마을 들녘이 누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모님 밑에서 철 없이 자라던 어릴 때의 바닷가 주변 들녘 모습이 송두리째 바뀌는 중이었다.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에 떠오르는 옛 추억

나의 고향은 경남 남해, 내가 살았던 마을은 바로 전남 여수시 맞은편이다. 지금 남해-여수 해저터널 공사가 시작되어 마을 바닷가 주변은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마을 가까운 해안에서 해저터널이 뚫린다는 소식은 벌써 듣고 있었으나, 막상 마을 코앞 해변이 변한 광경을 목격하니,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식처 같았던 고향 마을 바닷가 풍경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를 어쩌나. 예전에 부모님과 힘들게 살았지만, 정겨웠던 모습들이 머리를 스친다.

 고향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과 공사 중인 바닷가 풍경
고향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과 공사 중인 바닷가 풍경 ⓒ 곽규현

예전 우리 고향 마을은 70여 가구가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작은 동네였다. 마을 앞 바다와 해안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해안에는 마을 주민들의 배가 정박하는 작은 선착장이 있고, 선착장 주변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조그만 모래밭이 있었다. 모래밭 옆으로는 부채꼴 모양의 몽돌 해변이 적당히 이어지고, 몽돌 해변 옆으로는 갯바위 해변이 좀 더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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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변에서 아이들은 수영하고, 물장구치고 자맥질하며 놀았다. 마을 어른들은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조개를 캐거나 갯바위에서 파래나 미역을 뜯으셨다. 갯바위에 붙은 고둥이나 홍합도 채취하셨다. 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로 고기를 잡거나 바닷가에서 낚시로도 고기를 잡으셨다.

본가의 마당이나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잔잔한 바다에 유유히 고깃배가 떠 있고, 이따금 여객선이나 커다란 유조선이 지나가기도 했다. 때로는 성난 파도가 심하게 요동치며 해안으로 밀려와 자연의 매서움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밤이 되면 바다 건너 맞은편 여수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아름다웠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는 여수 밤바다는 예전에도 예뻤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다를 바라보며 외지에 나간 자식들 걱정에 눈물 지으시고, 시름을 달래셨다.

고향 풍경 사라지는 모습 아쉬움 커

 부모님과 함께 농사짓던 밭, 마을 이장님이 시금치를 심어 가꾸고, 맞은편에 여수 지역도 보인다(위), 고향 마을 바닷가, 선착장도 보이고 공사 현장도 보인다(아래)
부모님과 함께 농사짓던 밭, 마을 이장님이 시금치를 심어 가꾸고, 맞은편에 여수 지역도 보인다(위), 고향 마을 바닷가, 선착장도 보이고 공사 현장도 보인다(아래) ⓒ 곽규현

눈앞에 보이지만 쉽게 갈 수 없었던 곳, 여수는 어릴 적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미지의 도시였다.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던 여수는 지금도 고향 마을에서 차로 이동하면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 마을 앞에 해저터널이 뚫리면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부모님 생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획기적인 변화다.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조용했던 마을 앞이 관광 명소로 부상하면서 관광객들이 붐빌 것으로 예상된다. 타지에 살고 있지만 고향 마을이 개발되고 발전 된다는데 왜 반갑지 않겠나. 당연히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지 기대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추억 속 고향의 바닷가 모습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자연 그대로의 고향 바다와 들녘,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자취가 남아 있는 조용하고 포근한 모습이 좋았는데. 부모님을 기억하는 친척들도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의 장소들도 사라져간다. 고향 마을과의 직접적인 연줄을 끊고 싶지 않아 여전히 붙들고 있는 밭 한 뙈기, 부모님이 일구시던 밭에도 접도 구역 표지석이 박혀 있다.

그래도 밭에서 바라본 고향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사라져가지만 부모님과의 추억 서린 고향의 모습들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부모님기일#고향마을#고향추억#남해여수해저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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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끔 글로 표현합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살맛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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