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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지닌 8월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지닌 8월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해가 갈수록 가을이 짧아지면서 간절기 옷을 맞추어 입기가 쉽지 않다. 쇼핑할 때마다 가벼운 두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평소에 즐겨 입는 브랜드를 찾아 그중에서 옷을 구매하곤 한다. 시간은 없고 무엇이 최신 유행에 맞는 건지 도통 모를 때, 소비자들이 정보의 '지름길(information shortcut)'로 활용하는 것이 브랜드이다. 그 브랜드가 나의 예산과 취향에 맞기 때문이다. 최신 유행을 점검하고, 옷의 소재 비율과 색의 채도 및 제품의 완성도 등을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이러한 소비자의 행태는 정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정치 시장은 선거 경쟁에 뛰어든 정당 및 정당 후보자 중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시장이다. 경쟁하는 정당 및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과 우리 사회를 위한 비전을 꼼꼼히 살펴보는 정보 처리 과정을 거쳐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사실 굉장히 드물다. 정치 시장의 소비자인 유권자는, 대체로 정치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고, 정치효능감도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정책들을 비교·분석할 시간도 전문 지식도 없으므로, 정보의 지름길을 활용하여 투표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정보의 지름길로 활용하는 것이 '정당 브랜드(정당 상표)'이며, 그 정당 브랜드의 가치이다.

어떤 소명 의식과 비전을 갖는 집단인지 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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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무리된 국정감사를 틈틈이 보면서, 우리나라의 두 거대정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가 표상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 정당 브랜드 가치는 어느 정도나 될지 생각하게 되었다. 국민의힘은 권위주의 계승정당 브랜드에서 급기야 내란정당 브랜드로 정체성이 굳어지는 것 같다. 우리 정당 정치에 온건한 자유주의적 보수 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데, 국민의힘은 지금 봐서는 그 길을 선택할 것 같지 않다. 하여 국민의힘은 여기서 논외로 하고,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에 더 초점을 두고 말해 보자.

나는 현재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가 표상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우리 역사와 사회에 대해 어떤 소명 의식과 비전을 갖는 집단인지 그리고 민주당이 펼치는 입법과 정책 의제를 아우르는 커다란 주제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민주당이 제시한 바도 없다. 코스피 5000이 국정 목표가 될 수 없듯이, 내란 극복이 민주당 브랜드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민주당 정당 브랜드에 대해 민주당 의원 및 당원 중 몇 명이나 고민하고 논의하는지도 모르겠다.

국정감사 기간과 그 이전 동안 관찰된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 정보 제기, 피감기관 윽박지르기, 듣기에도 괴로운 표현과 어조의 남발, 성실하지 않은 국감 준비 등등. 물론 이 점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해당한다. 내게 유독 인상적으로 남는 기억은, 피감기관 관련자들은 자료와 필기구를 앞에 두고 의원들의 질의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답변 준비를 메모하는 모습이었던 반면에, 국회의원들은 본인 발언 순서가 돌아오면 예의 윽박지르기 한 판 하고, 다른 시간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알게 된다. 나는 한국전쟁 시기 남한군에 의한 남한 주민 학살에 관한 내용을 비장한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강생 100여 명 중에서 몇 명은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노트북에 설치해 놓은 카톡을 하면서 웃고 있다. 후자의 학생들은 노트북에 필기하는 척 카톡 채팅을 하는 것이지만, 그 강의 주제에 웃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나의 해석이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러한 학생들은 두 유형 중 하나이다. 내 수업에 관심이나 흥미가 없거나 내 수업을 못 따라오거나. 나 자신도 세미나에 참석해서 발표 내용이 재미없다고 느낄 때 제일 먼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도중에, 국정감사 도중에, 본회의장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주식 투자를 하거나, SNS 채팅하고 있는 의원들도 두 유형 중 하나이다. 국회 회의에 관심이나 열정이 없거나, 국회 회의 안건을 못 따라가거나.

[관련기사] '고릴라'부터 '비키니'까지... 국회의원 '딴짓'의 역사 https://omn.kr/2fuz4

국회 제도개혁을 위한 나의 작은 제안이 있다(현재 국회의장 주도로 국회제도개혁 자문위원회가 활동중이다).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할 때 핸드폰을 입구에 거치하고, 회의 후에 찾아가도록 하자. 즉, 핸드폰 없이 공식 회의 업무를 보도록 하자. 회의 안건을 미리 숙지하고, 그 내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난 이후에 회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원들의 성실성 정도 그리고 실력과 역량의 차이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4년을 다음 선거 당선을 위해 살고 있는 의원들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강성 지지층의 취향에 맞는 발언과 행태가 중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최고위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 제막을 하고 박수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최고위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 제막을 하고 박수치고 있다. ⓒ 유성호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그래서 민주당 브랜드는 누가 신경 쓰나? 정당 브랜드는 정당 소속 의원과 관계자에게는 하나의 공공재이다. 소속 의원과 관계자들은 정당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든 아니든 높아진 정당 브랜드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비배제성). 한 명이 높아진 정당 브랜드 효과를 누렸다고 해서, 다른 한 명이 그만큼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비경합성). 따라서 민주당 의원들은 무임승차의 인센티브가 있다. 각자 다음 선거 공천 및 당선을 위해서는, 지금 정당 조직 구성과 작동 방식으로 봐서, 강성 지지층의 취향에 맞는 발언과 행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171명의 의원이 비슷한 인센티브로 움직이면, 모두 무임승차하게 되고, 민주당 브랜드 형성은 진행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집단행동 문제이다. 이때 교과서적인 해결책은 당 지도부에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지도부도 민주당 브랜드와 관련하여 굉장히 열심히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사회를 위한 비전과 대안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입법과 정책 의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 승리만을 위해 활동하는 선거 기계가 될 때 "공허한 정당(hollow parties)"이라 지칭된다. 국민의힘은 논외로 치고, 민주당은 분명히 "공허한 정당"의 모습을 보인다. 공허한 정당일 때 외부의 이념적 설계자·기업가(ideological entrepreneurs)가 나타나서 그 공허한 정당의 이념과 비전을 제공한다. 최근 글로벌 현상인 민주주의 위기와 정당 정치에 관한 논의에서 제시된 내용이다. 그런데 왠지 민주당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지 않았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국감#민주당국감#공허한정당#권혁용#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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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cshr) 내방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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