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해의 10월은 유난히 비가 잦았다. 가을의 상징인 단풍놀이는 고사하고, 맑은 가을 하늘조차 보기 어려웠다. 모처럼 화창한 일요일, 미뤄왔던 가을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처음에는 설악산 주전골을 생각했으나, 꾸물대다가 시간이 애매해졌다. 예전에 늦은 시간에 도착해 사람에 떠밀려 다니다 온 기억이 떠올라 목적지를 강릉 소금강으로 바꾸었다.
좋다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지만 소금강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서에 살았을 때는 주로 오대산 선재길을 찾거나, 대관령을 넘을 때는 설악산 주전골을 찾았다. 국립공원 야영장도 설악동이 소금강보다 넓어 예약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제 동해에 살게 되었으니,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영동 지방의 숨은 명소들을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단풍놀이발길을 붙잡는 소금산 단풍 ⓒ 박영호
소금강의 단풍은 기대 이상이었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붐비지 않아 제1주차장에 수월하게 차를 댈 수 있었다. 안내소를 지나자마자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든 단풍이 발길을 붙잡았다.
구룡폭포까지만 다녀왔는데,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더니 세 시간쯤 걸렸다. 출발 지점의 이정표에 따르면 구룡폭포까지는 2.2km 거리다. 오대산 선재길과 비교했을 때 붉은 단풍은 드물어서 조금 아쉽다. 하지만 붉어야만 단풍이냐 노란 단풍도 제법 운치가 있다.

▲붉지 않아도 좋아 ⓒ 박영호
이 길은 율곡 이이(李珥) 선생이 외할머니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잠시 벼슬을 내려놓고 강릉에 머물 때 거닐었던 곳이라 '율곡 유산길'이라고도 불린다.
"율곡은 1569년 4월 14일에 아우 이우와 이모부 권화, 유생 박대유, 생원 장여필 등과 함께 소금강을 탐방하였고 하산길에 권신이 추가로 합류하였다." — 안내 표지판에서
계곡에는 군데군데 집채만 한 바위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저기 홀로 선 바위는 율곡 선생도 분명 보았을 것이다. 흐르는 세월만큼 조금 더 둥글어졌을 뿐이다.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저 바위는 변함없이 저 자리에 있겠지. 백 년도 못사는 인간이 자연에 저지르는 잘못이 차고 넘친다. 저 바위가 인간을 어떻게 볼지 생각하니 두렵다.

▲돌은 왜 구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까? ⓒ 박영호

▲단풍 속으로 ⓒ 박영호

▲산사의 단풍 ⓒ 박영호

▲단풍이 완연한 산사 ⓒ 박영호

▲대웅전 ⓒ 박영호

▲열매만 남은 가지에서 겨울 느낌이 난다 ⓒ 박영호

▲식당 바위 ⓒ 박영호

▲구룡폭포 ⓒ 박영호

▲단풍 ⓒ 박영호

▲100여명이 앉을 수 있다는 너럭바위인 식당암 ⓒ 박영호
식당암은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너럭바위인데 율곡이 1569년에 찾은 가장 깊은 지점이다.
율곡은 당시까지 식당암이라 부르던 바위를 비선암으로 고쳐 부르고 식당암 서쪽의 가장 높고 모양이 특이한 봉우리를 촉운암이라 하고 주변의 계곡을 천유동이라 하였으며 그 아래의 못을 경담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산 전체를 청학산이라 명명하였다. -안내 표지판에서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한 장 더 ⓒ 박영호
나이 탓일까. 요즘은 무거운 줌렌즈는 멀리하고 가벼운 단렌즈만 챙긴다. 인생처럼 렌즈도 딜레마이다. 단렌즈를 챙기면 줌이 아쉽고, 줌렌즈를 챙기면 쓸 일이 없다. 오늘은 혹시나 해서 줌렌즈를 가져와서 좋았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계곡은 너무 깊어서 다가서기 어려웠고, 그늘이 짙어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이 수두룩하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절대로 눈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다음 주말이 지나면 금세 겨울이 느껴질 듯하다. 가을 끝자락에 마지막 남은 단풍을 즐기고 싶다면 서둘러 소금강을 찾아보자.